1부 산태극수태극 영남알프스 18경 - (20)영남알프스 둘레길

▲ 영남알프스 둘레길 2구간을 걷는 둘레꾼. 한 마리 백로가 운무로 뒤덮인 고헌산을 향해 다가가는 풍경이다. 영남알프스학교 제공

◇신의주로 이어진 삼남 땅 지나다. 둘레길 1구간

영남알프스 둘레길은 자연, 힐링, 이야기를 끌어안은 탐방로이다. 울산, 양산, 밀양, 청도, 경주 5개 시·군으로 이어지는 총 255㎞의 둘레길 길이는 지리산 둘레길(274㎞)과 휴전선(250㎞)과 엇비슷하다. 탐방대원들은 올 장마 기간을 이용해 울산 둘레길 전 구간을 걸어보기로 했다.

 

탐방대가 둘레길 문을 연 곳은 영축산, 신불산, 간월산으로 이어지는 중건네길이었다. 먼발치서 올려보면 마치 부처가 아득하게 누워있는 형상을 하고 있는 이 삼형제봉을 주민들은 신화 같은 존재로 믿고 산다. 통도사 지산고개에서 영축산 청룡등과 백호등 산자락을 끼고 가달고개를 넘는 중건네길은 까까머리 승려들이 다녔던 옛길이다. 숭유억불정책으로 스님들이 백주를 활보할 수 없게 하자 산 밑으로 숨어 다니는 길이 생겼는데, 길이 험하고 좁아 남의 눈에 잘 띄지를 않는다.

1구간에서 유독 눈에 띄는 것은 신불재 들머리에 있는 송태관 별장. 대가천 저수지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언덕바지에 들어선 위압적인 이 붉은 벽돌 건축물은 친일세도가의 말로를 여실히 드러내 보인다. 탐방대는 솔바람이 무섭게 소리 내는 비탈진 가달고갯길로 접어들었다. 장대비를 흠뻑 맞고 오롯이 두 발로 오른 눈물고개는 남달랐다. 이어 명승지 작천정 수류계곡을 지나 영남알프스의 베이스캠프로 빛을 발하고 있는 등억(登億), 간월(肝月), 화천(花川)을 지나 광대고개를 넘어섰다. “비 맞고 어딜 가는교?” 빗속을 행진하는 탐방대를 본 명촌마을 촌로가 말을 건네 왔으나 하염없는 빗방울은 그 안쓰러움을 앗아갔다. 첫날 1구간 16.8㎞는 5시간이 소요되었고, 만보계에는 2만5000보(步) 라는 제법 적잖은 걸음보가 나타났다.

울산·양산 등 5개 시·군 이어진 255㎞의 탐방로
삼형제봉·우만마을 등 곳곳에 신비한 전설 가득
자욱한 운무 춤사위 속 고개 내미는 경치는 일품
조성 3년 지났지만 홍보·관리 안돼 이용객 적어

◇마을과 마을을 잇는 둘레길 2구간

이튿날도 장대비는 그칠 줄 몰랐다. 며칠간 내린 장대비로 둘레길은 잘 헹군 구포국수처럼 노글노글해졌다. 비 때문인지 마을과 마을을 잇는 골목길에는 사람은커녕 늙은 고양이도 눈에 띄지 않았다. 그 대신 장대비를 맞아 된통 앓는 감나무, 살구나무, 호두나무 열매들이 골목길 여기저기 뒹굴었다.

이 구간은 뒷산에서 흘러내린 물을 가둔 저수지가 많은 지역이다. 명촌저수지, 오산저수지, 지곡저수지, 양등저수지가 거리오담 둘레길로 이어졌다. 실뱀 같은 오솔길이 있는가 하면 늘어진 달구지길도 있었다. 세월아 네월아, 굵은 비가 쏟아져도 낚시를 즐기는 강태공의 어깨는 왜가리처럼 축 쳐져 보였다. 논에 물길을 트기 위해 전동차를 타고 비를 뚫고 달려가는 시골 할머니 모습도 눈에 띄었다. 저수지 둑 밑에는 어린 아이 키 높이의 수로를 빠져 나오질 못해 발버둥 치는 새끼 고라니와 이미 익사한 다른 한 마리가 빗물에 쓸려가고 있었다. 비가 오면 야생동물의 수난은 커진다. 자동차 바퀴에 뭉개진 뱀, 대(大)자로 뻗은 개구리, 무당벌레, 둘레길은 야생동물들의 무덤이다.

▲ 솔내음 가득한 가달고갯길. 피톤치드 내뿜는 이 고갯길은 작천정으로 이어진다.

영남알프스학교 제공

간월산, 배내봉, 오두산, 밝얼산, 가지산은 탐방대 발길을 따라 이어졌다. 탐방대는 걷는 내내 열렸다 닫혔다 하는 운무 춤사위에 빠져들었다. 유선형 산과 거친 근육질 산들을 뒤덮은 안개 행렬은 일대 장관이었다. 지리산 둘레길 22구간 중에서 반을 걸어 봤다는 한 여성대원은 “울산에도 이런 길이 있었다니 놀랐어요. 지리산 둘레길 못지않아요”라는 발품 평을 내놓았다. 역마살이야말로 팔자고 운명이다. 장마기간이면 좀체 외출을 삼가기 마련인데, 길신이 걸린 탐방대원들은 우중산행도 마다하지 않는다. 2구간 10.5㎞는 1만6000보가 나왔다.

 

◇굽이굽이 송락골은 눈물이구나. 둘레길 3구간

궁근정에서 두서로 이어진 3구간은 영남알프스 둘레길 중에서 가장 빡센 구간이다. 탐방대가 3구간을 연 곳은 우만마을. 이 마을에는 보름은 산에 살고 보름은 바다에 산다는 고헌산 산갈치가 산다는 공동 우물이 있다. 가지산 표범이 우물가 감나무 위에 올라 산갈치를 노리다가 우물에 빠져 죽었다는 전설이 전해 온다.

탐방대가 비스듬히 기운 비싯등을 넘어 송락골에 접어들었다. 석남사나 운문사를 왕래하던 승려들이 소나무 겨우살이를 머리에 쓰고 다녔다 하여 오늘날 송락골이 되었다. 또한 이 길은 달천 쇠가 운문재를 넘던 ‘철의 루트’이기도 하다. 장대비에 이골이 든 탐방대는 스무 아홉 꼬불꼬불 고갯길을 지나 해발 350m의 여수덤이 능선에 올랐다. 등산화는 밑창까지 빗물이 찼고, 방수커버에 덮인 배낭은 축축하다.

앞이 탁 트인 송라골 전망대에서는 영남알프스의 산군과 울주 5개 고을 풍경이 한눈에 잡혔다. 다리야, 쉬어가자. 솔바람아 너도 쉬어가자. 여자 성기를 닮은 옥문곡(玉門谷)에는 아들바위와 딸 바위가 마주 보고 있고, 그 아래 남단으로 뻗은 큰 산봉우리는 마치 달아나던 여우가 뒤돌아보는 형상이다. 다개 고래샘을 빠져나와 갈밭고개에 접어들자 으스스한 공동묘지가 나왔다. 물에 빠진 생쥐 꼴로 3구간 10.3㎞를 1만5000보로 마쳤다.

◇짙은 숲 속 산림욕장

둘레길 4구간

어제와는 달리 국지성 소나기를 뿌리는 변화무쌍한 날씨이다. 4구간 임도길은 짙은 숲에 시야가 막혀 다소 지루한 편이다. 고헌산 북동쪽 자락인 소호령 작은재와 큰재 그리고 고깔봉의 청량한 숲이 어우러져 삼림욕을 즐기며 걸었다. 임도 중간엔 소호령을 넘어온 소호사람들이 넘었던 소금길이 보였다.

작은재 폭포는 소호령과 고깔봉 자락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흐르고, 큰재 폭포는 고헌산 용샘에서 내려오는 물줄기가 차리못으로 모여든다. 어느 인부는 “땀띠가 나면 물탕골 폭포 물 맞으러 간다. 폭포 물 한 방 맞으면 얼얼하다”고 했다. 망연히 누워있는 산허리를 타고 유유자적 걷기를 마치자 머리는 맑아지고 몸은 가뿐해졌다. 4구간 10㎞는 1만6000보가 나왔다.

◇시공 넘나드는 둘레길 5구간

마지막 5구간은 오지마을과 오지마을을 잇는 길이다. 두서면 인보에서 내와로 이어진 30릿길은 시공을 넘나드는 순례 길이다. 백운산에서 흘러내리는 계곡 물길 따라 10리, 올망졸망한 오지마을길 따라 10리, 짐을 진 말도 굴렀다는 말구부리길 따라 10리, 이 길을 걸어보면 누가 설명하지 않아도 가장 한국적인 길임을 알 수 있다.

5구간 초입은 신작로 확장공사가 한창이다. 착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공동체마을 상선필마을에 사는 어느 할머니는 그 동안의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었던 모양이다. “버스가 안 다녀 병원에 가려해도 왕복 택시비가 3만원이라 힘들다.” 오지마을에 사는 사람들의 교통 불편은 적잖다.

백운산 품안에 든 닭알집골, 말구부리고개, 탑골 마당미기, 가매달 개미허리골을 지나 울산구간 둘레길의 종착지인 외와마을에 이르렀다. 개미허리골은 태화강백리길 발원지인 탑골과 가매달이 만나는 곳이다. 내와에서 담배굴을 지어 살았다는 상연댁(90세)은 “옛날에는 이 마실에 쇠 부리던 천석꾼이 번쩍번쩍 했단다. 지금도 가매달엔 쇠 녹이던 구디가 박혀 있다”고 귀띔을 했다. 5구간 9.3㎞를 1만9000보로 걷는 데는 반나절 남짓이 걸렸다. 대중교통이 불편한 지역답게 언양까지 택시비가 2만8000원 들었다.

▲ 배성동 소설가

이번 둘레길을 걸으면서 아쉬웠던 점은 많은 예산을 들여 조성한 둘레길이 홍보와 관리가 제대로 안 되어 예상보다 이용객이 적다는 것이다. 3년밖에 지나지 않은 안내판 일부는 훼손이 심했고, 무성한 잡풀들이 길을 막는 경우도 있었다. 그럼에도 둘레길은 안전하고 걸을만 했다. 지리산 둘레길보다 이야기는 더 풍부했다.

피톤치드 내뿜는 둘레길은 걷기만 해도 육신이 맑아졌다. 거기다 산을 오르는 길목과 어귀에는 마을에 전해오는 전설과 잊힌 역사를 설명하는 안내판이 설치돼 있어 마을 문화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한다. 영남알프스 둘레길은 걷는 사람을 위한 탐방로이다. ‘말 탄 주인보다 고삐 잡은 경마잡이가 오래 산다’는 말이 있다. 젊을 때 걷지 않으면 늙어서 뛰어야 한다.

*영남알프스학교 다음산행
7월23(토) ‘태화강백리길 탑골샘 가매달’
문의 010·3454·7853, http://cafe.naver.com/ynalpsschool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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