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자문위 시의견만 쫓아가며
자문위 실상 단편적으로 보여줘
다양한 의견 취합 최선 도출하길

▲ 이재명 사회문화팀장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말이 있다. 필요 이상으로 많은 사공들이 중구난방식 주장을 내놓는 바람에 배가 올바른 항로를 찾지 못하고 산 위로 올라간다는 뜻이다.

그런데 울산시립미술관의 경우 사공들의 의견이 분분해서가 아니라 너무나 일치단결이 잘 돼 배가 산으로 올라갔다가 내려온 케이스다. 산으로 올라갈 때도 이구동성이었고, 내려올 때도 이구동성이었다. 사공이 많으니 노를 젓는 힘도 그만큼 세어서 산 위로 배를 밀어올리기도, 끄집어 내리기도 쉬웠다. 그 사공들은 다름아닌 울산시립미술관 자문위원들이었고, 미술관이 올라간 산은 함월산이었다.

울산시립미술관은 지난 2010년 6·2지방선거 공약으로 내걸려 추진에 시동이 걸렸다. 2011년 시립미술관 자문위원들이 위촉되었고, 2012년에는 옛 울산초등학교 부지로 확정됐다. 그러나 매장문화재 발굴조사 결과 울산초등학교 운동장에서 객사 터가 발견돼 지난해 7월 바로 옆인 북정공원·중부도서관 일대로 변경됐다. 미술관이 원도심 일대로 확정되자 중구청 뿐 아니라 원도심 주민들은 이 일대가 문화예술의 거리가 될 것이라며 들뜬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지난해 10월 갑자기 중구 원도심 부지에 대한 재검토 소문이 슬슬 돌더니 급기야 우정혁신도시내 중구문화의전당 옆 클러스터 부지가 대안으로 급부상했다. 주민들의 반발이 거셌지만 시는 그대로 밀고가는 분위기였다. 시는 지난 2월23일 시립미술관자문위원회를 소집해 혁신도시 클러스터 안을 상정, 이 일대가 적합한 부지임을 강조했다. 그 동안 북정공원 부지가 결정될 때까지 함께 박수를 쳐 온 시립미술관자문위원회는 이날 회의에서 혁신도시 클러스터 부지 쪽으로 완전히 선회했다. 회의에는 22명의 자문위원 중 12명이 참석했고, 마지막까지 남은 10명의 위원이 모두 클러스터 부지를 지지하는 발언을 했다. 이날 분위기로 보았을 때 미술관 부지는 영락없이 함월산 기슭의 혁신도시로 올라가는 듯이 보였다.

그러나 4·13총선을 거치면서 분위기는 다시 역전됐다. 여기저기서 미술관 부지를 원도심으로 되돌려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고, 울산시도 방침을 원도심으로 다시 바꾼 분위기가 역력했다. 마침내 지난 6월29일 제10차 시립미술관 자문위원회가 열렸다. 울산시는 현장성을 더하기 위해 원도심 부지인 중부도서관 현지에서 회의를 열고 원도심 부지의 적합성을 적극 설명했다. 이날 회의에서 자문위원들은 “더 이상 소모적인 논쟁이 없었으면 한다”면서 클러스터 부지를 버리고 원도심으로 다시 선회했다. 현장을 둘러보기 위해 중부도서관 회의실에서 회의를 진행했으나 위원들은 회의만 마치고 바로 점심을 먹으러 떠났다.

울산시에는 많은 위원회가 있다. 행정사무감사 때마다 집행부의 거수기 역할을 한다느니, 형식적인 회의만 하고 회의수당만 타 간다느니 하는 지적을 받으면서 질타를 당해 왔다. 그럼에도 수십년 동안 이 위원회들이 개선되거나 없어지지 않는 것은 집행부가 하는 일에 ‘객관성’과 ‘공정성’이라는 허울을 씌워주기 때문이다.

이번 시립미술관 입지와 관련한 자문위원회의 행태는 각종 위원회의 실상을 여실히 보여주는 모델 케이스였다. 지난달 29일 중부도서관에서 자문위원회를 마치고 나온 한 자문위원은 “스스로 창피해서 자괴감을 느낄 정도였다”고 털어놓았다.

사공들의 의견이 분분해서 배가 산으로 가는 것은 어떻게 보면 큰 문제가 아니다. 리더가 좌중의 여러가지 의견을 취합해 잘 조정하면 최선의 안을 도출해낼 수 있고 순풍에 편안한 항해를 할 수 있는 뱃길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사공이 매번 한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권력이 있는 자가 산으로 가자면 이구동성으로 좋다고 박수치고, 바다로 가자하면 기가 막힌 의견이라며 맞장구를 치는 것이 문제다.

시인 김수영은 바람이 불어 풀이 누워도 바람보다 빨리 일어난다했는데, 권력자 주변의 풀은 좀처럼 일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이재명 사회문화팀장 jmlee@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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