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기반 사회서 창조성은 필수
질서에 도전하는 창조적 개인에
국가와 인류의 미래가 달려 있어

▲ 성종형 GoldenWay Group CEO

137억년 전 우주가 생성되고 45억년 전에 지구가 탄생됐다. 만년 남짓한 지구의 문명사에 5000~6000년 전 농업혁명의 물결이, 300년 전 산업혁명의 물결이 있었다. 50만년 전 네안데르탈인이 만들어 낸 투박한 석기도구인 ‘돌도끼’가 수렵채취에서 원시 농경문화로 옮겨져 집단 주거 촌락(city)에는 소통의 도구인 언어와 문자, 계급과 문명(civilization)이 자연스럽게 형성됐을 것이고, ‘돌도끼’에 의존한 불안한 삶속에서 신본(神本)주의로 출발한 인간의 세계관이, 사람이 만물의 영장임을 자처한 인본(人本)주의로, 산업혁명을 통해 자본(資本)주의로 발달하게 됐다.

지식기반사회로 이행되면서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이 상호소통하고, 정보통신기술을 기반으로 ‘손 안의 돌도끼 스마트폰’이 21C 실크로드와 부의 창출 원천이 되어 혁명적인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단순한 사건으로 묻힐 일들이 SNS를 통해 세계 구석구석으로 전해지게 됐고, 이는 기존의 질서와 개념을 송두리째 바꿔 새로운 법칙과 기준을 제시하며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 영역에 걸쳐 ‘상상력의 한계’를 허용치 않고 있다.

지식기반 산업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창조성’이다. 공장을 갖고 있지 않아도 지식과 어우러진 창조적인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어 ‘새로운 형태의 부가가치 창출(creating the value)’이 가능케 됐고 수많은 기적(구글, 페이스북, 유튜브, 인스타그램)이 천민자본주의에 물든 우리의 현실과 다르게 만들어지고 있는 순간, 우리의 7월은 “민중은 개, 돼지이고 신분제를 공고화 해야…” 한다는 역겹다 못해 구역질 날 지경으로 오염된 인물들이 도처에 출몰하고 있다. 정책을 입안하고 수행하는 사람(1%)들이 국민(99%)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편협한 사고와 역사의 큰 흐름을 인식하는 수준이 얼마나 천박한 지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펼치는 정책마다 졸속 논란과 마찰이 어김없이 따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창조경제의 공허함, 시대착오적인 성과와 생산성으로 바꿔치기 당한 효율의 위험성, 정직과 신뢰가 무너진 사회, 이미 ‘CREATIVE KOREA는 돌도끼를 든 자신들만의 구호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사형선고를 받은 소크라테스는 그리스의 여러 신(神)과 사회를 지배하던 공리(公利·axiom)를 부정했으며, ‘너 자신’까지도 철저히 의심할 것을 요구하며 끊임없이 ‘왜’라는 질문을 던졌다. ‘기존의 질서와 체계를 동요시키고, 친숙한 것들을 낯설게 만들며, 그럴싸하게 보이는 것들의 배후에서 일어나는 것들을 드러내고, 젊은이들의 방향감각을 혼란시키며 스스로 다시 방향을 잡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하버드 리버럴 에듀케이션의 목표라니 소크라테스의 죄목과도 같은 교육 철학은 무엇을 뜻하는가.

그러나 한국은 중동, 인도, 중앙아시아에서 발원한 문명이 도달한 동쪽 끝이며, 2000년의 역사 속에서 불교, 유교, 기독교 3개의 종교를 수용한 나라, 대륙문명과 해양문명의 교차점이요, 유·불교의 대륙종교와 기독교라는 해양종교가 만난 문명의 화해자로서 ‘문명충돌의 세기’(Samuel P. Huntington)를 ‘문명조화의 세기’로 바꿀 수 있는 민족이 될 수 있을 지니.

5000년 전, 단군께서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라’는 인간 행복을 최상의 가치로 간주하는 인본주의적 사상과 세계 공동체에 봉사할 것을 촉구하는 이타(利他)주의 윤리관인 홍익이념을 주셨다. 그것은 ‘세상을 나(我)와 남(他)으로 가르는 것이 아닌, 단일공동체 공통의 비전인 세계시민정신’이다.

4차산업혁명, 패러다임 변화의 시대에 생각하는 ‘미래세력’으로 기존 질서에 도전하는 ‘창조적인 개인의 탄생’이 이 나라와 인류의 내일이 달려 있다. 사람의 향기와 따스함으로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는 숭고한 이 일을 대한민국이 하면 어떨까.

성종형 GoldenWay Group C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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