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우리는 왜 과식을 하는가

 

이른바 ‘혼밥족’이 된지 여러 달이 지났다. 어느 날은 적막한 식사가 되고 어느 날은 오롯이 미각의 향연이 된다. 틀렸다. 감각이 마비된 채 맛을 느낄 새도 없이 눈앞의 음식이 없어질 때까지 무의식적으로 뱃속에 끌어넣는 날이 더 많았다고 해야 옳다.

밥을 함께 먹는 사람인 ‘식구’들이 모두 집을 떠난 뒤 나 홀로 지내면서 일어난 일이다. 1인가족이 늘어나면서 ‘혼밥’(혼자 밥을 먹다) ‘혼술’(혼자 술을 마시다) ‘혼영’(혼자 영화를 보다) ‘혼곡’(혼자 노래를 하다) 등이 일반화되고 있다. ‘혼자’라는 단어가 고독함으로 직결되지 않는 단어가 되었다지만, 마음의 허기까지는 달래지못한 듯하다.

‘혼밥족’이 낯설지 않은 시대 됐지만
달래지지 않는 마음의 허기를 안은채
무의식적으로 먹다간 필요이상 과식

한 유명 배달 앱 업체의 지난 6년간 통계를 보면 가장 많이 배달을 시킨 지역은 서울 관악구 신림동과 강남구 역삼동이란다. 학생들과 직장인들이 밀집해있는 지역이다. 가장 많이 배달된 음식은 치킨으로 5500만 건. 치킨 상자를 쌓아올리면 에베레스트를 439번 등반할 수 있는 높이라고 한다.

그런데 단일품목으로 가장 많이 배달된 것은 치킨이 아니라 바로 공깃밥. 그만큼 끼니를 때우는 1인가구가 많다는 의미이다. 2015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1인가구 비중이 27.1%로 나타났다. ‘나 혼자 밥 먹는 사람은’ 이제 개인성향을 떠나 사회현상이 되었다.

생각해보니 과식은 나 혼자 밥 먹을 때만 일어난 것은 아니었다. 가족, 친구들과 함께 식사할 때도 있었던 일이다. 부푼 배와 등짝에 한 움큼 잡히는 살을 느끼며 다음부터는 ‘적당히 먹어야겠다’는 의지박약한 교훈을 되뇌곤 했던 기억이 있다. 왜 나는 밥상 앞에서 먹는 걸 멈추지 못할까. 우리가 먹기에 ‘적당한 양’이라는 것은 있기라도 한 걸까.

브라이언 완싱크(Brian Wansink) 코넬대학 식품-브랜드 연구소(Food and Brand Lab) 교수의 이론을 토대로 실험한 내용에서 답을 찾아보자.

초등학생 축구부 5명을 대상으로 실험을 했다. 학생들에게 실험 내용은 알려주지 않았고 자신들 앞에 있는 닭튀김을 맛있게만 먹으라고 했다. 그리고 뼈다귀는 눈앞에서 치웠다. 닭튀김을 2.8㎏ 먹었다. 며칠 후 같은 실험을 했는데, 이번에는 뼈다귀를 아이들 개인용 접시에 담아 눈앞에 보이게 했다. 2㎏을 먹었다. 아이들은 2.8㎏ 먹었을 때보다 2㎏ 먹었을 때 더 배가 부르다고 했다.

6~7세 유치원생에게 쇠고기 볶음밥을 제공하는 실험을 했다. 한 끼 권장량 470㎉에 해당하는 120g. 아이들은 다 먹은 후 “배 불러요”라고 했다. 다음날 똑같은 실험을 했다. 어제 먹은 양의 1.5배에 달하는 180g, 700㎉를 제공했다. 이것은 여고생 한 끼 권장량이다. 아이들 반응은 어땠을 것 같은가. 예상과 달리 먹는데 시간이 조금 더 걸렸을 뿐 아이들은 전날과 같이 깨끗이 먹어치웠다. 아이에게 물었다. “어제도 한 그릇 먹고 오늘도 한 그릇 먹었는데 느낌이 어때요?” “어제와 똑같이 배 불렀어요.”

▲ 박미애 울산공업고등학교 영양교사

같은 유치원생에게 또 실험을 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맵지 않은 궁중 떡볶이를 작은 접시에 자신이 먹을만큼 담게 했다. 그리고는 큰 접시를 주고 먹을만큼 다시 담아보게 했다. 결과는 어땠을까. 한 명도 예외 없이 작은 접시보다 큰 접시를 주었을 때 더 많이 담았다. 아이들은 무의식중에 작은 접시에는 작게, 큰 접시에는 많이 담은 것이다.

문제는 큰 그릇에 담았을 경우 92%의 사람들이 큰 그릇에 더 담은 음식을 다 먹는다는 것이다. 우리가 먹는 양은 포만감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브라이언 완싱크 교수는 “먹는데 가장 적당한 양은 그게 어느 정도의 양이든 간에 우리 앞에 차려져 있는 양을 말한다”고 했다.

살아가는 것이 순탄치만은 않다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는 나에게 왜 교훈같은 것을 주려는지. 왜 시험 따위가 필요없는 나를 자꾸 시험에 들게 하는지. 세상에게 따져 물으면서 문득 한 생각에 꽂힌다. 날씬하고 건강하게 살길 원하는가. 그럼 여러분들이 먹는 음식의 양을 눈으로 확인하시라.

박미애 울산공업고등학교 영양교사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