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그땐 그랬지

▲ 망고 살사 곁들인 주꾸미 구이.

주방에서 일하다 보면 생각지 않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생긴다. 고객들에게 험한 말을 듣기도 하지만 직원들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다. 잊을 만하면 조리용 칼에 손을 베여 일하기 힘들다고 하거나 조금만 힘든 일을 시키면 우거지상을 한다. 선배들의 못된 버릇은 빨리 습득하면서 스스로의 의지는 부족하다. 요리에 대한 이야기보다 카톡과 페이스북을 즐기는 데 익숙하고, 월급이 쥐꼬리만 해 힘들다 하면서도 주제에 맞지 않는 소비를 하기도 한다.

선배의 부당함에 휘둘렸던 시절도
‘값진 경험’으로 느껴지는 건
지금보다 인간적인 사회였다고
스스로 뒤돌아봐지기 때문일듯
매콤하면서도 상큼한 살사 곁들인
직화 주꾸미구이 만들어 먹으며
과거를 경험삼아 화끈한 현재를

처음 요리를 시작했을 때 우리 직종의 규율과 법도는 군대보다 셀 정도였다. 선배들의 지시가 부당하다해도 누구도 감히 ‘이건 아닌 것 같은데요…’라고 말하지 못했다. 선배가 집합을 시키면 싫어도 밤늦게 까지 술시중을 들어주던 시절이 있었다. 어디에서도 듣지 못했던 욕설을 들어가며 일을 하기도 했다. 그것도 아니면 서로 가진 것은 없었어도 막걸리 한잔으로 상대를 위로하기도 했다. 사람마다 어려운 시절을 겪은 추억은 다르고 지금 세대에 어필하기에는 현실성 없는 일이지만.

심지어 이런 선배도 있었다. 부하 직원들을 종처럼 취급하면서 욕설을 하는가 하면 자신의 식사까지 챙겨주어야 했다. 게다가 금전을 요구하기도 하고 자신의 말을 거역하기라도 하면 왕따를 시키거나 진급을 누락시키기도 했다. 하루 종일 일을 못할 정도로 커피 배달만 시켜서 ‘다방 마담’이란 별명이 붙은 선배도 있었다.

▲ 이창우 호텔현대울산 총주방장

그랬던 한 선배가 우연히 회사를 찾아온 적이 있었다. 일부 직원들은 아는 척도 하지 않고 막말을 하기까지 했다. 과거에 당했던 앙금이 남았기 때문이었겠지만 그 장면은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그 상황에 처한 선배는 애써 미소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괜찮아. 그 시절에는 나처럼 몹쓸 짓을 해도 용서가 되었지만 지금 그렇게 하면 가만히 있을 사람이 없지.” 그를 보며 저런 대접을 받는 선배는 되지 말아야지 하고 살아왔다.

그런데 그 시절이 느닷없이 그리운 것은 무슨 조화인가. 아마도 대체로 과거는 미화되는 속성 때문이 아닌가 싶다. 좋았던 기억은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웠던 시절’로 부풀려진다. 견딜 수 없이 힘들었던 일도 ‘값진 경험’이나 ‘성숙의 밑거름’으로 포장되곤 한다. ‘돌이킬 수 없는 모든 과거는 아름답다’는 식의 비현실적 낭만주의에 대한 동경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삶이 불우했던 그 시절이 지금보다 더 인간적인 사회였다고 믿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요즘 관심밖에 있던 인문학이 다시 주목을 받는 모양이다.

이런 세상사를 보면서 먼저 나부터 책임자 또는 선배 역할을 하나씩 바꾸는 노력을 할 생각이다. ‘그땐 그래도 좋았어’가 아니라 현재 상황이 행운이고 행복이라는 마음이 동료들에게 메아리처럼 울려 퍼지는 날을 빨리 만들고 싶다.

◇망고 살사 곁들인 주꾸미 구이

△주재료

주꾸미 12마리, 레몬 1개, 레몬 껍질, 올리브오일 3TS, 다진 파슬리 2TS, 다진 고추 2분의1ts, 다진 마늘 2분의1ts

-갖추면 더 맛있는 재료=상추 채, 깻잎 채, 다진 볶음땅콩, 시리얼

△망고 살사 소스

잘 익은 망고 2개, 청양 고추 1개, 라임주스 50㎖, 다진 마늘 4ts, 다진 고수(다진 부추) 100g, 방울토마토 10개, 설탕, 소금 조금

△만드는 법

1.레몬주스, 레몬껍질, 올리브오일, 다진 마늘, 다진 파슬리를 잘 섞어 마리네이드(Marinade) 액을 만든다.

(마리네이드: 고기나 생선을 조리하기 전에 맛을 들이거나 부드럽게 하기 위해 재워두는 향미를 내는 액체)

2.볼에 주꾸미를 넣고 마르네이드 액을 붓는다. 30분 이상 절이고 2시간이 넘지 않도록 한다.

3.망고는 껍질을 벗겨 두 쪽으로 잘라 팬에서 구운 다음 주사위 크기로 자른다.

4.청양 고추는 씨를 발라 다지고, 방울토마토는 잘게 썬다. 미리 준비한 마리네이드 액을 넣고 잘 버무린 다음 냉장고에 30분정도 숙성시킨다.

5.주꾸미는 팬보다 석쇠에 굽는다.

6.상추 채나 깻잎 채를 접시에 깔고 그 위에 구운 주꾸미를 올린 뒤 망고 살사를 뿌리고 고수 다진 것과 땅콩을 뿌려 드시면 된다.

이창우 호텔현대울산 총주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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