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장’ 둘러메고 자연으로 간다

▲ 번잡한 세상을 훌쩍 떠나 산이나 바다의 정기를 흠뻑 받을 수 있는 백패킹. 별빛 떨어지는 밤하늘의 감동과 운무 가득한 아침은 자유인을 더욱 여유롭게 만든다.

밤하늘에 쏟아지는 무수한 별과 이름 모를 풀벌레 소리.
숲에서는 나뭇잎의 숨결처럼, 산사에서는 고즈넉한 선방처럼, 계곡에서는 졸졸거리는 시냇물처럼….
번잡한 속세를 훌쩍 떠나 힘찬 정기를 흠뻑 받을 수 있는 자유인의 발길.
텐트가 열린 만큼만 눈에 담기는 자연이지만 산도 좋고 바다도 좋아라.
간밤에 나눈 이야기들은 찬 이슬로 맺혀 있고, 별빛 떨어진 하늘과 바다의 아침은 여명처럼 여유롭다.
언제까지 돌아올 기약이 필요 없는 출발은 욕심의 무게를 내려놓은 행복의 시작이다.
때론 혼자만의 시간을 통해 자신을 돌보는 소중한 경험을 한다.
비가 내리면 내리는 대로 내 걸음걸이에 내가 맞추면 될 뿐이다.
텐트 속에서 빗소리를 듣는 것도 운치 만점이다.
걷다 졸리면 매트를 깔아 낮잠을 청하고, 정 가기 싫으면 침낭을 펴서 풍욕이라도 즐긴다.
그저 바라보는 풍광이 좋을 뿐이고 그저 좋으니까 걷고 오를 뿐이다.
촘촘히 박힌 별들이 쏟아질 때면 헤드랜턴을 끼고 기념사진도 찍는다.

밤에는 바람이 그토록 불어대도 아침이면 운무가 조용히 걷히며 몽환적이다.
백패킹(backpacking)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고 있다.
배낭에 야영 장비를 갖춰 짊어지고 여행을 다니는 것이다.

이 추세를 반영하듯 번개모임 또는 퇴근박(泊)을 즐기는 마니아도 늘고 있다.
영남알프스 간월재는 넓은 데크가 모자라 임도까지 텐트가 설치된 장면이 낯설지 않다.

간월재는 백패킹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찾고 싶어 하는 ‘백패킹의 성지’로 일컬어진다.
신불재, 무룡산, 대운산과 진하해변, 대왕암공원, 슬도도 울산의 백패킹 명소로 손꼽힌다.

백패킹은 무전여행, 오지마을 찾아가기, 비포장 도로 걷기, 강 따라 걷기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이뤄진다.
사람들의 손길이 많이 닿지 않아 자연 상태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곳을 선호한다.

따라서 비포장 길이나 돌길, 산길을 따라 멀리 걸어야 하고 많은 짐을 메고 이동해야 하므로 지치지 않게 페이스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별빛·달빛 내리는 밤…새들이 잠 깨우는 아침
백패킹의 세계
등산·트레킹 복합된 레저스포츠
쉬엄쉬엄 산 오르며 즐거움 만끽
산정서 하룻밤 고된 삶 힘의 원천

울산에서 산을 좋아하는 노진경(여·28)씨는 산행을 시작하면서 백패킹(backpacking)을 접하게 됐다. 필수장비는 꼭 갖췄지만 해가 질 때를 대비해 헤드램프도 늘 챙겨 다녔다. 산행시간이 예상보다 길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해가 넘어가면 어김없이 공포감이 엄습한다. 특히 초행길에 내려오다 어둠을 만나면 그 두려움은 커진다.

노씨가 백패킹을 처음 접했던 날도 그랬다. 산행시간이 길어져 어둑어둑해지던 때였다. 불안한 마음으로 산을 내려오다 커다란 배낭을 짊어진 사람들을 만났다. 힘들어 보이지만 전혀 불안해 보이지 않는 표정들이었다. ‘저건 뭘까?’라는 의구심이 들었고 그것이 ‘백패킹’임을 알게 되었다.

▲ 백패킹은 평소 즐기기 힘든 별빛과 달빛을 만끽할 수 있다. 텐트에서 밤을 지샌 뒤 맞는 아침이면 산 정상 주변의 운무가 몽환적인 장면을 연출한다. 신불산에서 바라본 운해. 산악사진가 장승현씨 제공

국립공원 대피소에서만 산정의 밤을 즐길 수 있다 생각했던 그에게 백패킹은 새로운 충격이었다. 해가 넘어가는 산에서도 전혀 불안감을 느끼지 않을 방법을 찾았다고 생각했다. 그 이후 산에서 이뤄지는 야영의 매력에 빠지게 되었다. 무거운 배낭으로 몸은 고될지언정 심리적 안정감이 산행을 더 즐겁게 만들었다. 자연이 더 가까이 있었다.

백패킹은 헤드램프를 끼고 동물들을 깨우며 야간산행을 하지 않아도 별과 일출을 볼 수 있다. 조심해야 할 것들도 적지 않다. 산정에서 즐기는 술은 도심에서보다 훨씬 달다. 멋진 경치를 안주삼아 자꾸 잔을 기울이고 싶은 마음을 추슬러야 한다. 도심에서보다 산정에서의 과음이 더 무섭다.

노씨는 지난 주말 저녁 간월재에 올랐다. 두 남성이 치약을 찾고 있었다. “설마 양치질 하시려는 건 아니시죠?” “아주 조금만 쓰려고요.” 산에서 치약을 사용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 남성들 또한 마찬가지. ‘나 하나쯤이야’하는 생각이 문제다. 간월재 샘터의 물은 우수로를 따라 흘러간다. 우수로 주변에는 요즘 산수국이 예쁘게 피어있다. 아주 적은 양의 치약은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조금이 모이고 모이면 많은 양이 된다. 간월재에 오르는 길에서 산수국을 못 보게 될 수도 있다.

▲ 영남알프스 간월재는 백패킹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찾고 싶어 하는 ‘백패킹의 성지’다.

혹 작은 쓰레기라도 흘린 건 아닌지 잘 챙겨볼 일이다. LNT운동의 중요성을 느끼게 된다. LNT는 Leave no Trace의 약자로, 1980년대 중반 이후 미국 국립공원 관리청과 환경단체 등이 주도한 ‘흔적 남기지 않기’ 운동이다. 사람이 자연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해 지속적인 이용이 가능하도록 자연을 보호하는 실천운동이다.

산정에서 도심을 내려다보면 약간의 우월감도 생긴다. ‘복잡한 곳에서 바글바글 사는 너희들은 이런 여유를 모를 것’이라며…. 도심 불빛 때문에 평소 즐기지 못했던 별빛과 달빛도 만끽할 수 있다.

요즘같은 시기에는 또 다른 매력이 있다. 운무라는 하얀 도화지 덕분에 원추리, 산수국, 까치수염 등 야생화들의 색감이 더욱 곱게 느껴진다. 멀리 조망할 수는 없지만 발아래 어여쁜 야생화들이 눈에 더 잘 들어온다.

여명이 밝아오면 온갖 새들이 잠에서 깨어 노래를 부른다. 핸드폰 알람 대신 새소리에 잠을 깨는 일이 얼마나 상큼한지 모른다. 해가 지고 뜨는 ‘개와 늑대의 시간’에는 시시각각 변화하는 하늘이 이채롭다. 이 모든 권리를 누리고 싶다면 직접 경험해보는 수밖에는 없다.

◇백패킹의 맛

백패킹의 세계에 들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등산과 트레킹의 묘미가 복합된 레저스포츠다. 말 그대로 배낭에 야영 장비를 갖추고 1박이상의 여행을 떠다는 레포츠로, 등짐을 지고 간다는 데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더러 백패킹과 비박을 같은 의미로 혼동하는 사람들이 없지 않다. 비박은 독일어로 비바크(Biwak)가 어원이다. 비박은 텐트를 사용하지 않고 지형지물을 이용해 하룻밤을 지새우는 일로, 노영(露營)이라고 할 수 있다. 매트와 침낭만으로 산에서 잠을 잔다면 비박, 텐트를 치고 잠을 잤다면 야영이라고 할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걸음걸이에 맞출 필요도 없다. 언제까지 돌아와야 된다는 압박도 없다. 어디까지 꼭 산행을 해야 한다는 목표 설정 없이 쉬엄쉬엄 산을 오르는 즐거움을 통해 마음의 피로를 풀어주는 청량제라고 할 수 있다. 건강도 돌보고, 혼자만의 명상에 빠져볼 수도 있다. 내일의 고된 삶을 준비하는 용기와 힘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백패킹 장비

백패킹에 입문하는 사람들의 가장 큰 궁금증은 장비다. 초심자들은 대체로 “어떤 장비가 좋아요?”라고 물어본다. 이 질문은 자동차 면허를 딴 뒤 “어떤 차가 좋아요?”라고 묻는 것과 다르지 않다.

백패킹을 즐기기 위해 갖추어야 할 장비가 있다. 야영 장비로는 텐트, 매트리스, 침낭 등이 있다. 또 의류, 신발, 모자, 스틱, 배낭, 헤드램프 등이 필요하다. 길을 잃었을 때를 대비해 GPS좌표, 구급약품 등은 필수적으로 지참해야 한다.

모든 장비마다 장점이 있고, 그에 따르는 단점도 있다. 들고 다니기 쉽고 가벼우면 내구성이 떨어지기 마련이고, 튼튼한데도 가볍다면 가격이 비쌀 확률이 높다.

‘본인 입맛에 맞아야 가장 맛있는 커피’라는 말이 있다. 장비도 마찬가지다. 개개인의 스타일에 맞는 장비가 가장 좋은 장비다. 그래서 추천해주는 사람마다 좋다고 생각하는 장비가 다를 수밖에 없다.

백패킹에 필요한 장비는 자고, 먹고, 걷는 데 필요한 것들로 구성된다.

첫째, 자는 데 필요한 장비로는 침낭과 바닥에서 올라오는 냉기를 막아줄 매트리스 두 가지가 기본이다.

침낭은 우모와 합성충전재 등 충전재에 따라 구분된다. 매트는 펴고 접기에 용이하지만 부피가 큰 발포매트와 그와 반대로 펴고 접기에는 수고로움이 따르지만 부피가 작은 에어매트가 있다. 부수적으로는 타프, 해먹, 텐트 등이 있다.

둘째, 먹는 것은 끼니가 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가능하다. 장거리를 걸을 예정이라면 탄수화물과 단백질, 지방 중 직접적인 운동에너지로 바뀔 수 있는 탄수화물 섭취가 특히 중요하다. 도착하자마자 먹는 것이 캠핑의 묘미라지만 산에서 과식, 과음을 삼가고 적당량만 챙겨가는 게 바람직하다.

셋째, 걷는 데 중요한 장비는 신발이다. “어떤 신발이 좋으냐?”고 묻는다면 역시 본인에게 가장 잘 맞는 신발이 적절한 답변이다.

발의 볼이 넓은 사람은 동양인에게 맞춰 나온 국내 브랜드가 적합할 것이고, 좁다면 유럽이나 미국 등의 브랜드가 더 나을 것이다. 돌이 많은 국내 지형에 적합한 접착력이 높은 밑창은 빨리 마모되는 단점이 있으며, 내마모성이 좋은 밑창은 미끄러움이 단점으로 작용한다.

배낭, 신발, 침낭은 꼭 있어야 하는 필수 장비다. 짐이 많아지므로 편하게 들 수 있는 배낭이 중요하며, 무거운 배낭으로 인해 오는 위험성을 보완해줄 신발이 중요하다. 경등산화보다는 중등산화를 대체로 추천하지만 개인 취향에 따라 편한 신발을 신으면 된다.

산 속의 온도는 그 아래와는 판이하다. 해발고도가 올라갈수록 기온이 떨어진다. 같은 온도라 하더라도 바람으로 인해 체감온도가 더 떨어질 수 있다. 침낭과 옷을 챙길 때 온도차를 꼭 고려해야 한다.

박철종기자 bigbell@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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