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양섭 전북대 연구원 '민속학연구'서 주장

피란길에 오른 임금이 '묵어'(혹은 목어)를 맛본 뒤 맛이 좋아 이름을 '은어'(銀魚)로 바꿨다. 전란이 끝난 뒤 이 생선을 다시 먹은 임금은 맛이 예전만 못하자 실망한 나머지 '도로 묵어라고 해라'고 명했고, 결국 '도루묵'으로 불렸다.

영동 이북의 동해에서 주로 잡히는 도루묵과 관련해 회자하는 설화다. 그런데 이 설화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세간에서는 임진왜란을 겪은 선조나 병자호란과 이괄의 난 때 도읍을 벗어났던 인조를 많이 거론한다. 일부 문헌에는 고려 왕이라고 기록돼 있다.

30일 학계에 따르면 김양섭 전북대 무형문화연구소 전임연구원은 여러 자료를 분석해 도루묵 설화의 주인공이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라고 주장하는 논문을 발표했다.

김 연구원은 국립민속박물관이 최근 발행한 '민속학연구' 제38호의 '임연수어·도루묵·명태의 한자 표기와 설화에 대한 논증' 논문에서 "이성계가 도루묵 설화의 주인공이라는 정황 증거가 여럿 있다"고 밝혔다.

그는 우선 제14대 임금인 선조와 제16대 왕인 인조를 설화의 주인공으로 볼 수 없는 이유를 설명했다.

도루묵은 한자로 쓸 때 껍질에 나뭇결처럼 촘촘한 빗살무늬가 있어서 '목어'(木魚, 目魚) 혹은 '은어'(銀魚)라고 했다. 다만 강에서 나는 은어는 도루묵과 구별하기 위해 '은어' 외에도 '은구어'(銀口魚)나 '은광어'(銀光魚)라고 적었다.

▲ 겨울철 별미인 도루묵 구이

그런데 제11대 임금인 중종 때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과 그보다 앞서 간행된 '세종실록지리지'에는 도루묵이 목어가 아닌 은어로 기록돼 있다. 조선 시대 전기에 이미 도루묵을 은어라고 불렀다면, 선조와 인조가 묵어(혹은 목어)를 은어로 개명했다는 이야기는 논리적으로 맞지 않는다.

김 연구원은 최초의 도루묵 설화 기록은 허균이 전북 익산에 유배됐을 때인 1611년 쓴 '도문대작'에 있고, 다음으로는 이식이 강원도 간성군수로 좌천됐을 때 지은 '환목어'(還目魚, 도루묵의 한자 표현)라는 시에서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조선 후기 문신 이의봉과 조재삼이 각각 고려 왕과 인조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도루묵 설화를 글로 남겼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들 기록을 꼼꼼하게 분석한 뒤 "허균의 글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도루묵의 생태적 특성과 역사적 사실을 살피지 않았다"며 "고려 왕이나 선조, 인조는 도루묵 설화의 주인공이 될 수 없다"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태조는 1398년 정종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함흥으로 갔다가 1401년 한성으로 돌아온 적이 있다"면서 "함흥은 도루묵이 많이 나고, 함경도 안에서 유일하게 도루묵을 은어라고 불렀다"고 말했다.

김 연구원은 "허균은 '도문대작'에서 설화를 언급하며 '전 왕조에 있었던 왕'(前朝有王)이라고 했는데, 조선을 만든 태조라는 묘호(廟號)를 감히 거명할 수 없어서 다른 표현을 쓴 것 같다"며 "결론적으로 도루묵 설화의 실제 주인공은 태조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그는 '말짱 도루묵'이라는 말에 대해서도 "조선 후기 실학자인 이긍익은 높은 관직에 올랐다가 삭탈관직당해 낙향한 허목을 '도루묵'에 비유했다"며 "17세기에도 이미 헛된 일을 지칭하는 말로 널리 쓰였다"고 덧붙였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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