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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 있는 에세이]치명적 실수에 대한 자기변명 - 황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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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8.04  17:5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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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est-181 : 임영재 作. 90.9x60.6㎝ 캔버스에 혼합재료.

생명력은 쌓여진 시간성에 의한 반복이다. 생명력을 암시하는 단편적 이미지의 나열로 인해 그려진 시간대가 서로 다름을 암시함으로써 시간성을 부여한다.

그날은 뭐가 씌어도 단단히 쓰인 날이었다. 지난해 가을 어느 토요일, 당일 챙겨야 할 결혼식은 두 건이었다. 문학회 선배의 혼사는 경주에서 정오에 있었고, 한 시간 반 뒤 포항에서 이종사촌결혼식이 예정되어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 외출 채비를 마친 뒤 봉투서랍을 여니 축의금 봉투가 동이 나 있었다. 다른 문우들이 부탁한 축의금 때문에 봉투가 제법 많이 필요한 상태였다. 번거롭지만 예식장에 가서 축의금을 정리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날은 또 며칠 전부터 붙은 코감기가 최고조였다. 코감기약은 독했다. 경주로 운전해 가는 내내 정신이 몽롱하고 주의력이 떨어졌다. 시간을 넉넉히 잡아 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도로에 나온 차들은 거북이걸음이었다. 감기에 조급함까지 더해진 머리에서는 어느새 식은땀까지 흐르고 있었다.

예식 15분 전, 다행히도 제시간에 맞춰 식장 주차장에 도착했다. 서두르면 예식 전에 혼주와 인사를 나누고 포항으로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식 12분 전, 호텔 로비에 들어서니 몇 년 전 서울로 이사 간 선배 문우가 반갑게 소리쳐 나를 불러 세웠다. 오랜만의 재회에 서로 얼싸안으며 그동안 소홀했던 안부를 물었다. 안부 끝에 서울 선배가 이미 상봉한 혼주에 대해 “화장발이 얼마나 잘 먹었는지, 자기가 꼭 새신랑 같더라”며 농담을 던졌다.

예식 9분 전, 그 와중에도 시계는 재깍재깍, 서울 선배를 만난 반가움도 잠시 내 눈은 축의금 봉투를 찾고 있었다. 서울 선배에게 사정을 이야기하고 부랴부랴 축의금 봉투가 비치되어있는 데스크로 향했다. 예식 7분 전, 봉투 10여 장에 이름을 쓰고 지폐를 세어 넣는 일도 만만찮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예식 2분 전, 봉투를 다 챙겨 빠른 걸음으로 식장 앞에 도착했다. 아직 식장 앞에서 하객을 맞이하는 선배를 보는 순간 안도의 한숨이 새어 나왔다.

촉박한 시간에 쫓겨
부랴부랴 축의금 내고보니
반대쪽에 봉투 건네

부끄러움에 주문을 외워본다
‘실수를 두려워하지 마라
만회할 미래는 새털처럼 많나니’


드디어 선배 앞에 섰다. 아, 그런데 내 앞에는 너무 젊어진 선배가 서 있었다. 조금 전에 ‘혼주가 새신랑 같다’는 서울 선배의 말이 허언이 아니었다. 평소에도 선배는 동안이란 소리를 자주 듣는 사람이었다. 고등학교장으로 재직 중이며, 이순이 코앞인 나이에도 불구하고 주름 하나 없는 팽팽한 얼굴의 소유자였다. 숱이 많은 참머리는 뒤에서 보면 흡사 청년처럼 보이게 했다. 또한, 선배는 사진가로도 활동하면서 전국의 명산대찰을 찾아다니느라 한창때의 탄탄한 몸매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거기에다 그날은 혼주로서 화장까지 했으니, 거짓말 좀 보태 선배가 새신랑이라고 해도 하객 모두가 믿을 판이었다.

환하게 맞이하는 선배의 손을 잡고 덕담을 건넸다. “선배님, 축하합니다. 그런데 선배님이 꼭 오늘의 새신랑 같습니다” 선배가 화답했다. “오늘, 그 얘기 참 많이 들었네. 찾아 줘서 고맙고 또 고맙네. 하하하” 여기까지는 모든 게 순조로 왔다. 선배와의 짧은 인사를 뒤로하고 축의금 접수대로 향했다. 축의금 접수자에게 10여 장이 넘는 봉투를 의기양양하게 전달하며 확인차 질문까지 던졌다. “여기가 신랑측 맞지요?”

다음 날 저녁, 선배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결혼식에 대한 답례 전화려니 생각하며 반갑게 휴대폰을 터치했다. “선배님, 어제는 큰일을 치르느라 고생 많으셨지요? 다시 한 번 더 축하 합니다” 전화가 연결되기 무섭게 내가 먼저 인사를 건네자 선배의 반가운 목소리가 돌아왔다. 어제는 식장까지 찾아와줘서 고마웠다는 말과 함께 식사를 않고 가서 마음이 편치 않았다는 진심 어린 답례사였다. 성황리에 끝난 결혼식의 후일담이 오가고 통화가 마무리될 즈음 선배가 잠시 뜸을 들이더니 ‘그런데’ 라는 접속사를 붙이며 통화를 계속 이었다. “그 말이네. 어제 혹시 축의금 어디에 냈는가? 사람은 분명히 왔는데 방명록에도 없고, 뭔가 착오가 있는 것 같아서 말이네.”

일순간 내 머릿속은 하얘졌다. 아뿔싸, 이를 어쩌나!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기분이랄까? 어제 선배 댁 혼사는 아들이 아니라 딸을 시집보내는 날이었다.

한 달 후, 문학회 출판회에서 그날의 실수에 대해 이실직고하자 회원들 모두가 배꼽을 잡았다. 1차 웃음이 진정될 즈음, 서울에서 어려운 걸음을 하신 초대 회장님이 그 선배를 향해 “딸을 시집보내면서 새신랑처럼 보인 혼주의 잘못이 더 크다”라고 하여 좌중은 또 숨이 넘어갔다.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던 그날의 실수가 원로 문우님의 재치로 웃음으로 승화되는 순간이었다.

그때 나는 진땀을 빼면서 속으로 이렇게 주문을 걸었다. “실수를 난발하는 당신이여! 실수를 두려워하지 마라. 당신이 부끄러워하는 과거는 어떻게 할 수 없지만, 그것을 만회할 미래는 새털처럼 많나니. 인간관계를 끊지 않는 한 부조할 일은 또 계속 생기나니.”

   
▲ 황주경씨

■ 황주경씨는
·시인
·경북 영천 출생
·문학과 창작 신인상 수상
·제 9회 문학21(시부분) 문학상 수상
·울산작가회의 편집 주간
·한국작가회의회원

 

   
▲ 임영재씨

■ 임영재씨는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대학원 서양화과 졸업
·개인전 36회
·그룹전 600회
·울산대학교 예술대학 미술학부 교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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