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영진 사회문화팀 차장

얼마 전 백제역사유적지구를 다녀왔다. 공주, 부여, 익산 3개 지자체에 흩어진 8곳의 백제유적을 세계문화유산이라는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은 것이다. 원래 각 기초단체가 개별관리해 온 유적지 이지만 2010년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에 오르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기존 기초단체에 충남과 전북 광역단체까지 더해져 총 5개의 지자체가 2012년 ‘(재)백제역사유적지구 세계유산등재 추진단’을 출범시켰다. 이사회는 각 지역 부단체장으로 구성됐고, 사무국에는 각 지역 실무공무원들이 파견됐다.

세계유산등재라는 공동의 목표가 있었지만 초창기에는 ‘우리 지자체의 활동이 좀더 관심을 끌어야한다’는 경쟁심리가 존재했다고 한다. 이를 절충하는 역할은 추진단의 또다른 구성원인 시민단체와 전문가 그룹에게 맡겨졌다. 2015년 7월, 그토록 바랐던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달성했다. 민관합동 거버넌스를 통해 경쟁과 견제를 조율과 화합으로 상쇄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추진단은 연초 ‘백제세계유산센터’로 기관명을 바꿨다. 새로운 어젠다인 ‘전 세계인이 찾고싶은 관광명소화’를 이룩하기 위해 이전보다 더 강한 통합기구로서의 역할론을 고민하고 있다. 이를 위해 지자체간 소통과 협업을 강화하면서 정부의 문화유산정책동향에 공동으로 대응하고 있다. 원활한 국비예산과 효율적인 홍보를 위해서는 지자체의 개별행보가 독이 될 수 있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울산의 ‘대곡천 암각화군’은 백제역사유적지구와 같은 시기에 잠정목록에 올랐다. 하지만 진척도는 상당히 다르다. 실질적인 등재작업은 여전히 안갯속이다. 사업을 추진할 전담기구가 없기 때문이다. 백제역사유적지구를 비롯해 남한산성(2014년 등재), 한양도성(2017년도 등재추진) 등도 행정기관의 독자노선만으로는 절대로 과업을 달성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한국의 산사’(전국단위 7개 사찰) 역시 대곡천보다 4년이나 늦게 잠정목록에 올랐으나 최근 2018년도 세계유산 등재신청 대상으로 선정됐다. 인근 양산을 비롯한 7개 지자체와 각 지역 시민단체, 대한불교조계종이 ‘한국의전통산사세계유산등재추진위원회’라는 연합체를 결성해 꾸준히 대정부 활동을 펼쳤기에 가능했다.

최근 울산시와 울주군이 보여준 대외행보는 대곡천 암각화군의 암울한 미래를 단적으로 드러냈다. 암각화군의 핵심 콘텐츠인 반구대암각화가 발견 45년만에 처음으로 공식행사를 통해 해외에 소개됐다. 하지만 울산시와 울주군은 기념비적 행사가 열린 포르투갈 포즈코아시(市)를 따로 방문했다. 개막 당일 울산시 부시장은 반구대암각화의 세계유산등재에 각별한 관심을 요청했다. 울주군수는 약 보름 후 같은 곳을 방문해 암각화도시 네트워크 협약을 체결했다. 취지나 내용이 나쁘다고 할 수는 없으나 세계유산등재에 있어 독자노선으로 뭇매를 맞아 온 두 지자체가 나라 밖에서도 여전히 따로국밥 행정을 펼친 것 같아 안타깝다.

울산이 세계문화도시로 가기 위해서는 민관추진단 구성이 가장 시급한 일이다. 시와 군, 시민단체, 전문가, 문화재청과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등 정부측 인사가 하나의 대의명분으로 힘을 모아야하기 때문이다. 정치논리나 정부정책에 휘둘리는 행정에만 맡겨둬선 역부족이다. 보존책도, 물문제도 그 속에서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

홍영진 사회문화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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