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2년 2월 3일.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육군 대장 박정희 장군은 울산 공업도시 기공식 치사에서 이렇게 열변을 토했다.  "4천년 빈곤의 역사를 씻고, 민족숙원의 부귀를 마련하기 위하여 우리는 이곳 울산을 찾아 여기에 신공업도시를 건설하기로 하였습니다. 루르의 기적을 초월하고 신라의 영성(榮盛)을 재현하려는 이 역사적 욕구를 이곳 울산에서 실현하려는 것이니...(중략)....제2차 산업의 우렁찬 건설의 수레소리가 동해를 진동하고, 공업 생산의 검은 연기가 대기 속에 뻗어 나가는 그 날엔 국가민족의 희망과 전망이 눈앞에 도달하였음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공장의 굴뚝에서 나오는 "검은 연기"가, 민족과 국가의 희망과 번영의 상징이라고 믿었던 시절이었다.  60년대 이후 한국에서의 개발은 우리의 전부일 만큼 중요하고 가치 있는 것이었다.개발 논리는 늘 보존 논리에 우선하였다. 그 개발의 결과는 한편으로는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번영의 근원이면서, 동시에 고통받고 있는 환경문제의 근원이기도 하다.개발이 가져다 준 이런 야누스의 두 얼굴은 그대로 우리의 현실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고도로 "압축된" 개발 시대를 살아왔다. 남들이 300년 걸릴 일을 우리는 3-40년 만에 후딱 해치웠다. 그러다가 그 압축성장의 혜택도, 그늘도 있었다. 온통 개발 지상주의가 판을 쳐왔다. 여기저기에서 개발이라는 이름의 "만병통치약"이 등장했다. 경제든 사회든 도시든, 개발은 온통 도시의 희망이었고 미래의 보장이었다. 개발이 극에 달하니까, 소위 "난개발"이라는 것이 우리 국토를죽이고 있다. 글자 그대로 난잡한 개발에다 개발해서는 안될 곳까지 개발을 남용하다보니, 우리의 금수강산이, 또 백두대간이 만신창이가 되고, 그러다 보니 우리의 문전 옥답이, 산자수명한 산천이 무참하게 잘려나가고 콘크리트에 도배를 당하고, 게다가 끝도 없는 인간의 탐욕과 타락이 어우러져 돌이킬 수 없는 엄청난 환경 재앙을 불러오기도 했다.  그러나 뒤늦게나마 개발보다는 보전이 조금씩 힘을 얻어가고 있고, 도시의 개발보다는 관리가 더 중요한 일이 되어가고 있다. 개발이라는 말도 점점 사라지고 있다. 국토개발연구원이 재작년 개발을 떼고 국토연구원으로 이름을 바꿨다. 한국토지개발공사도 한국토지공사로, 개발을 떼내 버렸다. 산업기지개발공사도 수자원공사로, 경남개발연구원도 경남발전연구원으로, 심지어 어느 대학에서는 지역개발대학원을 사회과학대학원으로 바꿨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 로고에 공장의 굴뚝과 연기를 형상화한 것이 있었지만 지금은 사라졌다.  우리나라 공업의 중심에서 성장을 주도했던 우리 울산은 이제 공장의 건설이나 도시의 개발보다는 환경과 생태가 최고의 가치가 되어야 한다. 40년 녹화사업으로 석탄도시에서 청정도시로 바꾼 일본 야마구치현 우베시처럼, 석탄으로 덮여있던 검은탄광도시를 푸른 첨단과학도시로 바꾼 독일의 보쿰시처럼, 나무심기와 재활용으로 생태도시의 메카가 된 브라질의 쿠리치바시처럼 말이다.  그래서 이제 산업도시 울산도, 역사도시가 될 수 있고 첨단의 환경도시도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검은 연기가 만드는 개발에서가 아니라 푸르름이 만드는 녹색으로부터 얻을 수 있어야 한다. 개발이익을 우선하는 도시계획으로 태화강을 죽이는 일은 미래를 위해서 반드시 중단되어야 하고, 후손에게 좀 남겨두는 개발로 보듬어가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환경문제로 가장 고통을 받았던 도시가 울산인 만큼,생태도시로의 갈망도 가장 절실하고, 가능성도 큰 도시가 울산이 아닐까.  40년 전 공장 굴뚝의 연기가 번영의 상징이었던 개발의 시대를 접고, 마침내 태화강이 살아나고, 녹색이 콘크리트를 대신하는 그런 "에코도시"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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