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영환 울산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꽃보다 누나’ 시리즈가 방영되기 전까지 발칸은 한국인들에게 그리 친숙한 여행지가 아니었다. 여행지라기보다는 ‘유럽의 화약고’라고 불릴 만큼 위험한 지역으로 인식되곤 했다. 다양한 민족과 여러 종교 간에 난마처럼 얽혀진 갈등과 전쟁, 그리고 파괴와 인종청소 등의 어마 무시한 이미지를 가진 지역이었다. 이렇게 부정적이었던 지역이 갑자기 각광받는 관광지로 돌변한 까닭은 무엇일까? 최근에 있었던 전쟁의 상흔을 어떻게 복구했던 것일까? 이것이 나의 발길을 발칸으로 향하게 만든 주요한 이유였다.

나의 여행은 크로아티아의 수도인 자그레브에서 시작된다. 자그레브는 비록 수도이기는 하나 뾰족한 볼 꺼리가 적은 도시이다. 대부분의 동유럽도시들이 그러하듯 낡은 중세도시의 틀 속에서 간간히 현대화가 진행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서유럽의 유서 깊은 도시에 비하면 역사적으로나 관광. 예술적으로 랜드마크가 될 만한 장소가 드물다. 그저 중세유럽의 낡은 건물들과 도시경관을 보여줄 뿐이다. 그러나 이방인인 내게도 전혀 낯설지 않다. 마치 이곳에 오래 살아 익숙해진 편안함을 느끼게 한다.

오늘날의 재개발은 낡은것 철거로
과거 흔적 남기지 않고 소멸돼 버려
재생은 과거를 존중하는것부터 출발
낡은것 새롭게 보이게 하는 디자인
노후벽면 감추지 않고 그림처럼 사용
도시재생의 또 다른 축 보여주는듯

트갈치체바는 자그레브의 인사동 같은 곳이다. 차 없는 거리이나 훨씬 여유롭고, 깨끗하며 고풍스럽다. 노점상도 없고 가게 앞에 좌판을 놓아 가로를 점유하지도 않는다. 상점들은 대부분 100년도 넘은 옛 건물 속에 들어앉았다. 옛 건물들은 낡은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개보수가 이루어졌다. 자세히 살펴보면 낡은 건물 사이에 현대적 디자인으로 새로 지은 건물들도 보인다. 그러나 이들마저 결코 잘난 척 하는 법이 없고, 절묘하게 대비의 균형을 깨지 않는다. 건물전체를 투명한 유리로 덮어 주변의 콘텍스트를 받아들이는 전략도 있고, 필로티 구조로 도로에서 후퇴시켜 마당을 공유하는 디자인도 보인다.

가장 경탄스러운 것은 낡은 것을 새롭게 보이게 하는 이들의 디자인 개념이다. 가로변의 많은 건물들은 벽이 헐어 속살이 드러날 만큼 낡은 모습을 유지한다. 그러나 노후된 벽체의 모습을 감추려하지 않고 마치 벽면에 그려진 회화처럼 사용했다. 헤진 청바지의 미학처럼 낡고 닳아진 모습의 자연스러움을 건축의 입면으로 연출한 것이다. 창가에 천연덕스럽게 화분을 설치하거나, 세련된 가로등이 낡은 벽면에서 두드러진다. 어느 건물은 낡은 벽면 위에 세련된 해시계를 장식하여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 것이 바로 도시재생이다. 낡은 것을 헐어내고 새로운 것으로 대체하는 것만이 재생은 아니다. 낡은 것에는 익숙함이 있고 편안함이 있다. 그곳에는 수많은 기억과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그들은 이처럼 낡은 것을 버리거나 감추려하지 않았다. 오히려 당당하게 그것을 드러내고 거기에 새로움을 추가하였다. 일상성과 비일상성의 대비적 조화, 현재와 과거의 연속성, 그것은 낡은 것을 아름답게 만드는 그들만의 감각이었다. 그러한 감각과 지혜가 낡은 것을 가치 있는 것으로 만들었고, 거기에 기대어 살아가고 있다.

오늘날 재개발 혹은 도시재생이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장소의 파괴와 단절을 자주 목도한다. 개발주의자들은 ‘토지 이용율 제고’라든지 ‘도시미관 개선’ 등 거창한 기치를 앞세워 ‘낡은 것’들을 철거한다. 실상 그것은 새로운 개발을 통해 개발이익을 노리는 의도를 포장한 수사일 뿐이다. 개발이후에는 그 장소의 경관과 기능, 사용자가 바뀌면서 과거의 장소는 흔적을 남기지 않고 소멸된다. 이는 기억의 단절이며 장소의 상실이다.

건축가 정기용은 오늘날의 도시를 대합실로 풍자한 바 있다. 대합실 속에서의 삶이란 ‘임시적’이고 ‘즉흥적’이며 연속성이 없다. 시간이 되면 모두 떠날 준비가 되어 있는 유목민의 모습이다. 이런 도시에서 ‘공동체’니 ‘이웃관계’니 하는 이야기들은 성립하지 않으며 난센스 같이 들린다고 하였다.

그러나 오래된 것이라 해서 보존만 한다면 시대를 거스르고 과거 속에 묻히게 된다. 새로운 세대는 그들의 공간을 창조할 권리가 있다. 여기에 과거와 현재가 공존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한 것이다. 재생 혹은 재활용이란 과거에 대한 존중에서 출발해야 한다. 낡은 것을 버려야 할 것이 아니라 아껴 써야 할 것으로 생각하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낡은 것을 파괴하지 않고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 바로 재생이며 디자인이다.

강영환 울산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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