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온도 낮추기는 선택 아닌 필수
숲의 에너지 충만한 헬싱키 본받아
도심 숲 가꾸고 보존해 경쟁력 높여야

▲ 정명숙 논설실장

‘카모메식당’이란 영화가 있다. 배경은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다. 헬싱키 여행을 위해 자료를 찾던 중 발견한 영화다. 영화는 일본 여성들이 핀란드에서 ‘카모메’라는 이름의 식당을 운영하며 정착하는 과정을 잔잔하게 그리고 있다. 여행에 도움이 될 만한 아름다운 풍경을 기대했으나 영화 속 헬싱키는 그저 평범한 북유럽의 도시로 그려진다. ‘왜 하필 그녀들은 핀란드를 선택했을까’라는 의문이 들 즈음 영화 속에서 답이 나온다. 그녀들은 묻는다. “핀란드가 너무도 고요하고 평화롭게 보였어요. 그 이유가 뭘까요.” 카모메의 첫 손님이기도 한 헬싱키의 젊은 남성은 “핀란드엔 숲이 있거든요, 울창한 숲”이라고 답한다.

헬싱키의 건물들은 화려하지도 높지도 않고 오히려 땅을 넓고 낮게 차지하고 있어 당당하고 단단해 보였다. 건물 사이로 들어서자 멀리서 보는 것과 달리 도로는 상상 이상으로 매우 넓고 가로수도 풍성했다. 예술과 젊음이 넘치는 광장도 많았다. 단연 눈길을 끈 것은 도심의 푸른 하늘아래 싱싱하게 초록빛을 발산하는 꾸미지 않은 자연스런 숲공원이었다. 에르미타쥬, 페테르코프, 이삭성당, 피의사원 등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그 화려한 유산을 보고 넘어갔음에도 헬싱키의 울림이 결코 그에 뒤지지 않았던 이유도, 어떤 조사에서나 헬싱키가 항상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 10위권 안에 드는 이유도, 그다지 관심이 없었던 일본 영화 ‘카모메 식당’이 감동적이었던 이유도, 여행을 다녀온 후 특정 명소가 아니라 도시가 통째로 마음속에 저장된 이유도 바로 숲, 그 숲에서 비롯되는 풋풋한 에너지와 그에 걸맞은 소박하면서도 여유로운 삶이었던 것이다.

그 즈음 SNS를 타고 날아온 울산은 덥다고 난리였다. 23일간 잇달아 폭염특보가 발효됐다. 해가 갈수록 더위의 농도가 대책 없이 짙어지고 있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기온이 올라간 것도 사실이지만 도심의 열섬화현상도 한몫을 톡톡히 했다. 게다가 이 더위에 대기오염으로 인한 소동도 그치지 않는다. 푹푹 찌는 더위에 공해까지 심각한 도시라면 아무리 ‘부자도시’라 해도 경쟁력을 갖기 어렵다. ‘도시온도 낮추기는 이제 선택이 아니라 도시생존을 위한 필수조건이다. 여름철 내내 폭염특보가 발효되는 도시는 경쟁력이 없다. 주민들의 삶의 질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복지비용이 늘어나는 반면 관광수요는 줄어들기 마련이다. 도심 숲이 도시의 경쟁력인 시대다.

울산은 분명 산과 공원이 어느 도시보다 많음에도 그 효과가 충분히 발휘되지 않는다. 숲은 숲대로, 도시는 도시대로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UNIST 조기혁 교수는 울산의 30개 녹지를 대상으로 ‘녹지의 형태유형에 따른 도시 열섬 저감효과’를 분석한 결과 “녹지의 온도는 녹지 외부보다 1.5~2.5℃ 낮고, 녹지로 인한 온도저감효과는 녹지 경계에서 바깥쪽으로 120m까지 관찰됐다”며 “도시 온도를 낮추기 위해 공단에 대규모 녹지를 조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울산은 혁신도시를 조성하면서 298만㎡ 규모의 도심 녹지를 없애버렸다. 온산공단은 1996년 11.5%이던 녹지가 2013년 3.2%로 줄었다. 아프리카처럼 더운 울산, ‘울프리카’가 돼가는 이유이다.

더 늦기 전에 대대적으로 ‘도시 온도 낮추기’에 들어가야 한다. 도심 속에는 조그만 공간이라도 생기면 숲을 조성하도록 거버넌스를 구축하는 것도 좋은 방안이다. 숲속 주차장을 만들면 공간활용도도 높일 수 있다. 도심에 있는 동해남부선 폐선부지의 활용방안도 숲 조성을 가장 우선순위에 두어야 할 것이다. 새로운 도시를 조성할 때는 숲지대를 살리는 방안을 강구해야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여기에 ‘더위의 적체’를 해소하고 동해의 푸른 바람이 도심까지 이어지도록 바람길을 터주는 것도 중요하다. 태화강을 되살린 울산의 저력을 도시숲 조성에 쏟는다면 도시온도를 1~2℃쯤 낮추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도시의 고요와 평화는 울창한 숲에서 비롯된다고 하지 않는가. 살기 좋은 도시 헬싱키의 젊은 청년이. 정명숙 논설실장 ulsan1@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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