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민자본주의가 판을 치는 현실 속

‘그래도’ 열정의 노선 택하는 사람들

이들이 있어 여전히 살 만한 한국

▲ 성종형 GoldenWay Group CEO
행복하기 위해 태어났고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음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나’란 존재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태어나(生) 세월의 흐름에 나이테(老)가 만들어져 병(病)들고 멸(死)해 가는 ‘자연의 한 조각’이다.

사람(人)들이 모여 구성된 현대사회는 다양한 환경과 유전자에 따라 형성된 사고와 가치로 인해 ‘다름’과 ‘차이’로 분별되어 배려와 소통이라는 공통의 가치로 통합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최근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 사드)체계 도입 문제로 국론은 분열되고 중국과 미국 사이 대국굴기 외교가 진행되고 있는 듯하다. 해당 지역민들은 반대의 목소리를, 정부는 국가정책의 존엄과 지엄을 무기로 비무장지대를 형성하고 있다.

인간 공동체, 지구 운명체의 모든 문제들은 서로 연결돼 움직인다. 전체와 부분, 공동체와 개인의 관계도 초(超)고도연결사회로 진입돼 ‘개인들의 삶은 분리할 수 없는 전체적 실체이며, 한 실존은 한 사회의 표현’이 되고 있다. 개인도 국민도 행복해야 국가의 행복지수도 상승돼 성숙한 시민사회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언제쯤 인간이 되어볼 수 있을까’를 일상의 화두로 살아가는 ‘개·돼지’들의 역사와 삶의 현장이 -다큐영화 김정근 감독 <그림자들의 섬>처럼- 국가와 지도자들로부터 소외되고 공감능력을 잃은 채, ‘한 조각 구름’ 되어 떠돌고 있다.

옥시 가습기 살균제, 폭스바겐 배출가스조작, 3M 필터 독소물질 배출 등 다국적기업의 글로벌스탠다드 규정이 유독 우리나라는 제외되고 적용되지 않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한국에선 그래도 되는 그들, 그들을 만든 우리.’ 국민의 안위는 뒷전인 또 다른 내부자인 ‘그들’, 그들만의 이익 앞에 국리민복(國利民福)은 그림자 되어 ‘외로운 섬’이 돼가고 있다.

공자와 장자의 인륜의 도와 자연의 섭리에 합치되는 삶의 영위와, 아리스토텔레스의 이성적 삶의 성찰이 행복이라 여긴 때도 있었지만 산업의 발전은 인간의 즐거움을 최대한 만족시키는 재화와 부의 창출을 근간으로 ‘상업화된 쾌락의 추구를 종교화’하고 있다. 인간의 쾌감은 시간이 지나면 더 강한 자극을 추구하게 되고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반복된다. 금전과 관련된 부정을 저지른 인사가 세상을 시끄럽게 하고 있다. 가질 만큼 가진 사람들이 왜 그런 부정을 저지를까. 시대가 유혹하는 쾌락의 나락은 그만큼 강력하다. 과연 그들은 행복할까.

논리적일 때와 감성적일 때가 있다.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내면에서 느껴지는 ‘마음의 소리’가 논리를 앞서는 경험을 종종하곤 한다. 남들이 좋다하고, 돈을 많이 벌고, 인정받으니까 ‘그래서’의 영역이 집단지성의 세상을 천민자본으로 물들이고 있다. 힘들고 불투명하지만 ‘그래도’ 자신이 진정 갈망하는 길을 택하고 논리 보다는 열정의 노선을 택하는 사람들이 자신을 바꾸고, 주변을 바꾸고, 세상을 바꾸는 동력이 된다.

‘가장 낮은 곳에/ 젖은 낙엽보다 더 낮은 곳에/ 그래도라는 섬이 있다/ 그래도 살아가는 사람들/ 그래도 사랑의 불을 꺼뜨리지 않는 사람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 그래도.’ 김승희 시인은 세상이 우리를 속일지라도, 현실이 아무리 갑갑할지라도, 서로 부둥켜안고 힘을 내어 살아가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 보이지 않는 섬 ‘그래도(島)’를 찬미하고 있다. 단 한 번뿐인 인생길에서.

세종대왕은 양반인 ‘그들’과 자신(I, Me) 보다는 백성들인 ‘우리’(We, Our)를 위해 한글을 창제하시어 정보화시대를 선도할 초석을 만들었다. 내 학교가 아닌 우리 학교, 내 집이 아닌 우리 집이라 말하는 민족, 이 나라가 ‘그래서’를 초월한 가장 아름다운 섬, 유토피아 ‘그래도(島)’가 아닐까. ‘함께 가면 멀리 간다’ 하지 않았는가.

성종형 GoldenWay Group CEO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