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업계 “수주하면 뭐하나…”

▲ 경상일보 자료사진

현대중공업그룹이 최근 대형 탱커 2척을 수주했으나 채권은행들이 선수금환급보증(RG) 발급을 서로 미루면서 수주가 무산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RG는 선주가 주문한 선박을 제대로 인도받지 못할 때를 대비해 은행 등 금융기관에서 일종의 보증을 서는 것이다. RG 발급이 제때 이뤄지지 못하면 수주가 취소될 수 있다.

24일 금융권과 조선업계에 따르면 현대중공업그룹이 8월초 그리스 선주사인 알미탱커스로부터 수주해 현대삼호중공업에서 건조할 예정인 31만7000DWT급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 2척에 대한 RG 발급이 보름 가까이 지연되고 있다.

은행권, 건전성 관리 차원
선수금환급보증 발급 꺼려
계약시한 넘기면 수주 무산
SPP조선, 8척 취소되기도

현대중공업그룹은 극심한 수주가뭄 속에서도 올들어 처음 VLCC를 수주하는 성과를 올렸지만, 정작 RG 발급을 받지 못해 애를 태우는 상황이 된 것이다.

금융권에서는 은행마다 한도가 설정돼 있는 RG 발급 규모 내에서 여유가 생기는 은행이 먼저 RG를 발급하기로 한다는 원칙을 내부적으로 정했으며, 이에 따라 이번에 현대중공업의 수주 건은 NH농협은행에서 RG를 발급할 차례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농협에서는 RG 발급이 어렵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금융권 관계자는 “최근 NH농협금융이 건전성 관리에 신경을 쓰는 상황이라 RG 발급에 난색을 보이는 것 같다”며 “은행 입장에서는 조선업 익스포저(위험 노출액)를 줄이고 싶은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앞서 현대중공업은 지난 5월에도 RG 발급 문제로 한 차례 어려움을 겪었다.

현대중공업이 5월 말 SK E&S와 18만㎥급 멤브레인형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2척을 수주했으나 주요 은행이 RG 발급을 한 달 가까이 거부해 수주가 무산될 뻔했다.

당시 금융감독원장이 국내 주요 은행장들을 소집해 조선업에 대한 금융 지원을 줄이지 말 것을 요청하기까지 했고, 결국 지난 6월 중순께 수출입은행과 주채권은행인 KEB하나은행이 1척씩 RG를 발급해줘 위기를 넘겼다.

문제는 수주가뭄 속에서 국내 업체가 어렵게 수주를 따내도 은행권이 RG 발급을 꺼리는 분위기가 금융권 전반에 형성되고 있다는 점이다.

성동조선해양은 지난 6월 초 그리스 선사로부터 정유 운반선 4척을 수주한 뒤 선수금을 받으려고 채권단에 RG 발급을 신청했으나 한달이 넘도록 보증을 받지 못했다.

지난해 SPP조선은 선박 총 8척을 수주했으나 RG 발급이 이뤄지지 않아 8척 모두 계약이 무산되기도 했다.

대형 조선소들의 RG 발급이 이 정도인데 중소 조선소들의 경우는 더 어려운 실정이라고 조선업계 관계자들이 전했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RG 발급 지연 사례가 쌓이면 수주 경쟁에 나설 때 해외 고객들이 국내 업체에 발주해도 될지 우려하는 분위기가 생길 수 있다”면서 “요즘은 수주 이후 RG 발급이 수주의 가장 큰 고비가 돼 버렸다”고 호소했다.

연합뉴스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