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양파 추가요!

 

“나 글 쓰고 싶어.” 큰딸이 고2, 10월에 한 말이었다. 남편과 나는 아연실색했다. 교내외 백일장 대회에서 다소 상을 받기는 했으나 그 정도 실력으로 대학을 간다는 것은 불가능해보였다. 하지만 딸아이의 결심은 대단했다. 모든 것을 글로 쓰면 어떨까하는 상상하는 시간이 점점 늘어간다는 것이다.

문득 일전에 선생님과 상담했던 일이 기억났다. 딸이 문학문제를 들고 왔는데, 답이 3번인 것 같다고. “혜원아, 답이 2번인데 왜 3번이라고 생각하니?” 선생님은 아이의 그럴싸한 스토리텔링에 고개가 끄덕여졌다고 했다. 그리고 창의적이라고 했다.

양파는 가열해도 영양 파괴되지 않아
특유의 매운맛 익히면 단맛으로 변해
껍질 삶은 물 적갈색 천연염료로 사용

딸에게 더 이상의 설득은 필요해보이지 않았다. 나는 팔랑 귀는 아니지만 결정이 빠른 편이다. 결정되고 나면 그야말로 단순무식, 불도저 형. 집안에 문학은 물론이요 예술을 하는 사람은 아무리 눈을 치뜨고 생각해봐도 없다. 주춤거린들 알게 되는 것은 없다. 또 안다고 한들 별반 도움이 될까. 심사숙고란 말, 좋은 말이다. 하지만 무식할 땐 용기라도 있어야 한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나는 벌써 인터넷으로 글쓰기 전문 학원을 수소문하고 있었다. 울산에는 없었다. 전라도 광주나 서울로 가야 했다. 인연법이 광주로 이끌었다. 방학기간에는 혼자 고시원생활을 하면서 학원을 다녔다. 딸이 애면글면하며 선택한 일이라 어떠한 고난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딸들은 어렸을 때부터 텃밭에 가는 것을 좋아했다. 11월쯤에는 양파 모종을 심고 물도 듬뿍 주고 냉해를 입지 않도록 비닐도 덮어주었다. 이듬해 4월쯤에는 몸이 온통 뽀얀 햇양파를, 하지 무렵에는 알이 단단하게 영글어 껍질이 빨간 양파를 수확했다.

수확한 양파껍질에 물을 붓고 삶으면 적갈색의 천연염색 염료를 얻게 된다. 여기에 군데군데 고무줄을 묶은 흰 면 티셔츠를 넣어 조물조물 주물러 주면 옷은 온통 양파로 물든다. 염색된 옷을 그늘에 말리는 동안 우리는 피자를 만든다. 여러 가지 토핑을 올리며 나는 신나게 외친다. “양파 추가요.” 그러면 아이들도 “양파 추가요”를 외치며 자신이 먹을 식빵 피자에 양파를 듬뿍 올린다. 이렇게 아이들은 자연스레 양파를 좋아하게 되었다.

양파는 재배 역사가 가장 오래된 식물 중 하나다. 기원전 3000년께 고대 이집트 분묘 벽화에는 피라미드를 쌓는 노동자에게 마늘과 양파를 먹였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쿠퍼왕 피라미드 건설에 2t이 넘는 돌 약 230만 개를 운반했던 노동자들의 원기를 충전하기 위해 양파가 쓰였다. 당시 양파는 약이자 건강기능 식품이었다.

양파 특유의 매운맛은 익히면 단맛이 난다. 양파 속 자극성 유황화합물이 분해되면서 설탕보다 50배나 단맛을 내는 프로필메르캅탄(propylmercaptan)이라는 물질이 생성되기 때문이다. 양파의 영양소는 열에 강해서 가열해도 파괴되지 않는다.

▲ 박미애 울산공업고등학교 영양교사

양파에 들어 있는 알리신(allicin)은 체내에서 비타민B1과 결합해 신진대사를 원활하게 하고 세포에 활력을 준다. 이는 모세혈관을 튼튼하게 해 피의 흐름을 부드럽게 하고 고혈압, 동맥경화, 정맥류를 개선하며 혈전을 예방한다.

양파는 단단하며 광택과 중량감이 있고 타원형보다 둥근 것이 좋다. 육수를 낼 때는 뿌리와 껍질을 제거하지 않고 깨끗이 씻어 통째로 육수를 내면 더 깊은 맛을 낼 수 있다.

애타게 원했던 대학교 백일장에서 1등상을 받았다. 출제된 글제 중 딸이 선택한 것은 양파였다. ‘이젠 됐다’는 안도감, 주말마다 전국의 백일장에 참가했던 기억, 예심작과 공모전 작품을 보내느라 우체국을 수도 없이 다녔던 기억, 무엇보다 엄습하는 불안감을 극복하고 글쓰기를 선택한 용기. 가슴 깊은 곳에서 뜨거운 눈물이 차올랐다.

창조적 인물의 공통된 특성은 높은 지능이 아니라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는 열정에 있다고 한다. 우리 인생이란 심각한 무언가 이기보다는, 어쩌면 누구나가 한번쯤은 겪어봤을 딜레마, 짬뽕인가 짜장면인가 정도가 아닐까. 짜장면을 먹으며 “양파 추가요!”를 목청껏 외친다.

박미애 울산공업고등학교 영양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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