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백두대간 제23구간(큰재~추풍령)
거리 18.8㎞, 시간 6시간50분
산행일자 : 2016년 4월24일

▲ 상주 옥산초등학교 인성분교장이었던 백두대간 생태공원의 아침은 사각으로 드는 햇살에 빛나면서 산꾼의 마음을 사로잡아 두기에 충분했다.

봄날 아침이다. 연둣빛 신록은 햇살과 찬란하게 어우러졌다. 평화와 온유의 볕이 내리쬐는 생태공원 운동장 한가운데 가만히 섰다. 녹색잔디가 깔린 산골 생태공원에 아침에 내리는 빛나는 햇살을 온몸으로 받아본다. 빛나는 꽃잎을 간질이며 향기를 실어 나르는 바람이 불어왔다. 꽃향기 묻은 바람보다 먼저 마음이 나비가 되어 날아올랐다.

금산은 석산개발로 몸 절반이 날아갔지만
백두대간 생태보전지구 지정시킨 기틀로
절개된 백두대간에 생태이동로 개설되면
자연도 사람도 더불어 살아갈수 있을 것

경북 상주 옥산초등학교 인성분교장이었던 백두대간 생태공원의 아침은 사각으로 드는 햇살에 빛나면서 산꾼의 마음을 사로잡아 두기에 충분했다. 지난 구간 날머리에 내려섰을 때 화려하게 빛나던 벚꽃 향연은 2주 만에 연둣빛 신록으로 바뀌어 있다. 파릇파릇 잔디가 돋아난 고요한 운동장엔 영산홍이 곱게 울타리를 쳤다. 격랑이 일고 있는 사람의 마음이라도 금방 가라앉힐 것 같은 평화의 기운이 큰재의 백두대간 생태공원에 가득하다. 아름다운 봄날이 큰재에서부터 열린다.

▲ 웅이산에서 용문산까지는 큰 오르내림 없이 밋밋한 능선이 연결된다. 철쭉꽃이 벌써 능선을 따라 만개했다.

큰재에 버스가 도착한 시각은 오전 7시15분. 생태공원에서 단체촬영을 마치고 대원들은 본능처럼 산으로 향한다. 아름다운 큰재의 풍광은 아쉽지만 ‘다음에 다시 오마!’고 기약 없는 약속을 하고 돌아섰다. 산행 초입에서부터 화사한 철쭉이 무한하게 반긴다. 길섶에는 보랏빛 각시붓꽃이 종주대를 반겨 도열하듯 피었고 산딸기 꽃은 줄줄이 산기슭의 별이 되어 종주대를 따라다닌다. 철 따라 자연의 시간에 맞춰 피어난 꽃이지만 꽃길을 걷고 있는 산꾼의 생각은 ‘나를 반겨 저 꽃이 저리도 어여쁘게 피었구나!’라는 미망(迷妄) 속에 산길을 간다.

 

봄의 향연 속에 시작된 산길. 봄꽃에 눈길을 주며 한눈을 팔다보니 큰재에서 약 3㎞거리에 있는 국수봉(해발 795m)에 그저 쉬 오른 것 같다. 국수봉에 도착하니 산 이름이 웅이산(熊耳山)으로 바뀌어있다. 기존 국수봉(掬水峰)이라는 지명이 유래도 뜻도 없이 붙여졌다고 상주시에서 국가지명위원회에 변경 의뢰를 한 결과다. 이후 2012년 5월 웅이산으로 정식으로 변경되었고 2015년 5월 산정에 표석이 설치된 것이다. 산 아래 마을에 ‘곰실’이라는 명칭이 있고 산정에 기우제를 지내던 웅신대(熊神堂) 등의 지명이 있어 그것을 근거로 국토정보지리원에 공식 명칭으로 등재됐다고 한다. 그런데 굳이 한자어로 웅이산(熊耳山)이라 하지 말고 우리말로 ‘곰귀산’이라 했으면 좋았을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자어에 대한 거부감이라기보다 산 아래서 올려다보면 덩치에 비해 작은곰의 귀처럼 산정이 능선에서 살짝 솟아올라 있기 때문이다.

이번 구간은 산행 거리가 짧고 난이도도 낮다. 그러다보니 바쁠 것 없는 일정에 첫 봉우리부터 대원들의 모습은 여유롭기만 하다. 이날 일정 중 가장 높이 고도를 올린 웅이산에 들면 약 2.3㎞를 이동해 만나지는 용문산(龍門山)까지는 큰 오르내림 없이 밋밋한 능선이 연결된다. 웅이산이 해발 795m, 용문산이 해발 710m로 넓은 시각으로 산군을 보면 용문산은 웅이산의 전위봉 정도 된다. 김천사람들은 웅이산을 용문산으로도 불렀다고 하니, 보는 방향에 따라 동일한 산으로 여길 정도로 메를 가르는 재가 없는 곳이다. 용문 산정에는 널찍한 폐 헬기장이 있어 봄볕을 쬐며 넉넉하게 쉬어가기에도 좋은 곳이다.

 

해발 1000m가 넘는 산에서는 5월 중순께부터나 볼 수 있는 철쭉꽃이 벌써 능선을 따라 만개했다. 산길에는 막 돋아나는 여린 풀들과 신갈나무의 새순이, 산을 타고 흐르는 공기까지도 연둣빛처럼 느껴지게 한다. 최악의 황사가 한반도를 덮쳤다고 외출을 삼가라는 예보방송이 있었지만 마스크를 착용한 대원은 아무도 없다. 천지를 물들이는 신록이 황사를 걸러줄 것이고 자연에서 맞는 봄을 맘껏 호흡하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 1978년 ‘추풍령’이라는 노래는 해발 220m에 불과한 추풍령을 준령(峻嶺)과 같은 험준한 고개인 걸로 착각하게 만들었다. 추풍령 노래비.

그리 높지도 않은 용문산에서 고도를 약 350m 꾸준히 낮춰 내려서면 갈현고개가 나온다. 이 고개에서 약 2㎞ 떨어진 곳에 있는 작점고개로 자동차가 넘나들기 전에는 충북 영동과 경북 김천 사람들이 숱하게 넘나들던 주요 고개였다. 다른 옛 고개보다 유난히 수북한 서낭당 돌무더기가 지금도 전설처럼 남아있다. 객귀(客鬼)에 홀리지 않고 무사히 고갯길을 넘나들 수 있게 해 달라는 뜻에서 던져놓은 돌들이 지금은 잊힌 옛길과 함께 세월 뒤에 저물어 있다. 그냥 지나칠 수 없어 돌 위에 돌 하나 올려놓고 갈현과 작점고개 사이에 봉긋 솟아있는 무좌골산으로 향한다.

충북 영동 추풍령면과 경북 김천 어모면을 잇는 변방 작점고개에는 영산홍이 만발해 있다. 붉은 꽃잎이 신록의 연두와 어우러져 말로 형언키 어려울 정도로 화려하고 곱게 고갯길을 단장해 놓았다. 영산홍에서 배어나온 원색의 붉은 빛깔은 대원들 모습에도 투영이 되어 꽃과 사람이 매 한가지처럼 보인다. 대간꾼들 외에는 넘나드는 이 없어 보이는 외진 고개에 벤치와 정자까지 훌륭하게 지어놓았다. 좋은 환경, 화려한 봄의 꽃밭에서 성찬을 즐기면서 대원들은 꽃잎처럼 웃는다.

작점고개에서 느낌 좋은 춘몽을 꾸었으리만치 화려한 봄날을 만끽하고 나서 산정 통신탑이 보이는 난함산을 향해 오름을 시작한다. 난함산 정상은 대간 루트에서 조금 벗어나 있는 산으로 통신기지국이 산정에 있는 까닭에 번듯한 임도가 산정까지 연결돼 있다. 승용차를 이용한 접근성이 좋아 김천지역 해돋이 촬영 명소로도 알려진 산이다. 대간 길은 난함산 오름 8부지점에서 유턴 하듯이 사기점 고개를 향해 꺾어지게 된다.

사기점 고개에서 추풍령까지의 약 5.5㎞의 산길은 동리의 뒷동산처럼 호젓하고 완만하게 이어진다. 더할 것도 덜할 것도 없이 그저 스스로를 산에 맡겨도 좋을 치유의 숲, 치유의 산길이 계속해서 추풍령까지 열린다. 산정을 향해 거슬러 오르는 봄이 산사람들을 그 품에 아늑하게 품어줬다. 추풍령을 목전에 두고 금산의 생채기만 보지 않았던들 연분홍 봄꿈에 젖은 채로 23구간의 여정을 마무리했을 텐데 금산이 아파 보았다. 금산이 많이 아프다. 세월이 흘러도 아물 줄 모르는 깊은 상처를 금산은 안고 있다.

백두대간이 생태보전지구로 지정되고 특별법이 제정된 것은 2005년부터다. 철로 침목에 깔리는 자갈을 얻기 위해 금산을 석산 개발지로 허가를 내준 연도는 1967년. 허가기간은 대간이 생태보전지구로 지정되기 1년 전인 2004년 12월까지였다.

금산의 절반이 사라진 뒤에야 법이 제정돼 국가가 백두대간 생태계 보전에 관심을 갖게 됐지만 금산은 무너질 대로 무너진 뒤였다. 말 그대로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야 할 안타까운 우리 땅의 역사라고 생각한다.

추풍령(秋風嶺)은 백두대간을 가르며 지역 간, 그리고 문화와 물류와 교류 역할을 하던 고갯길의 변천사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곳이기도 하다. 1970년 7월, 국가 대동맥이란 미명으로 경부고속도로가 추풍령을 넘어 개통됐다. 그 무렵 백두대간 마루금, 추풍령 또한 우리 국민들에게 더 크게 회자되어진 계기가 됐다. 경부고속도로 추풍령휴게소 내에 고속도로 개통 기념탑이 건립됐고 추풍령이 경부고속도로의 중심에 있다는 이미지가 형성되면서였다. 이어 1978년 가수 남상규가 부른 ‘추풍령’이란 노래가 크게 히트 치면서 이 고개를 넘어보지 않은 사람들까지도 추풍령을 알게 됐다. ‘구름도 자고 가고 바람도 쉬어간다’는 노랫말이 해발 220m에 불과한 고개를 준령(峻嶺)과 같은 험준한 고개인 걸로 착각하게 만들어 국민들 마음에 각인시킨 탓에 추풍령은 온 국민이 기억하는 고갯마루가 됐던 것이다.

▲ 김두일 대한백리산악회 고문

고속도로, 철로, 국도가 나란히 백두대간을 갈랐고 다시 산으로 복원되기 어려운 금산이 추풍령에 자리 잡고 있지만 좋은 소식도 들린다. 행정당국에서 추풍령을 가르고 지나가는 경부고속도로, 경부선 철도, 국도 4호선 위로 생태이동로를 2017년 말까지 설치·완공한다는 계획이 입안됐다고 한다.

백두대간 전 구간에 걸쳐 평균 8㎞마다 도로가 개설돼 있다고 하는데 추풍령뿐만 아니라 도로가 나면서 절개된 모든 곳에 생태이동로가 만들어지기를 기대해본다. 산을 산으로 두었을 때 자연도 사람도 더불어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김두일 대한백리산악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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