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끝) 작업자간 안전정보 공유 - 제3부 사고 예방을 위한 다양한 시도

▲ 오드펠터미널코리아는 근무자들이 업무 맞교대를 하는 과정에서 ‘인수-인계자가 참여하는 이미지 트레이닝을 실시하고 있다. 서로 작업장 위험요소, 개선 방안을 공유하며 사고를 예방하고 있다.

‘과연 모든 산업재해 사고를 막을 수 있을까. 근로자들이 출근한 모습 그대로 퇴근할 수 있을까.’

울산지역을 포함해 전국의 각 기업에서 일하는 안전관리자들이 가진 고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해가 갈수록 산업안전보건법이 강화돼 산재 사망사고 발생시 자신이 구속될 수도 있는 상황에서 근로자들이 안전하게 일할 수 있도록 하려는 안전관리자들의 고민은 더욱 깊을 수밖에 없다.

본보는 그동안 끼임·누출·폭발·지게차·추락 등 산재사고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주요 요인에 대한 안전대책 사업장을 소개했다. 마지막 편으로 작업자간 부실한 인수인계 절차로 2명의 사망자를 낸 고려아연 황산 누출과 같은 사고를 막으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사업장을 소개한다.

지난 2002년 노르웨이 오드펠 SE사와 대한유화가 합작으로 설립한 액체화학물 물류 서비스업체인 오드펠터미널코리아는 근무자간 맞교대 형태로 공장이 가동된다. 화학물질을 취급하는 탓에 언제라도 대형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이미지 트레이닝’ 시간 통해
인계-인수 근로자간 피드백
안전 습관화 ‘위험 예지 훈련’
보호구 착용 확인용 거울 설치

이 회사의 안전정책 중 눈에 띄는 부분이 ‘이미지 트레이닝’이다. 맞교대 시간이 되면 업무를 인수·인계하는 근로자가 한 자리에 모인다. 작업장에 투입되는 인수 근로자는 자신이 당일 처리해야 하는 작업내용을 상상하면서 위험 및 사고 발생 요소를 기재한다. 상부에서 내려온 지시사항 등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요소를 차분히 생각하고 작업서에 기재한다. 그리고 개선사항까지 적어본다.

▲ 롯데정밀화학은 교대 시간을 활용해 작업 관련 사진을 보며 위험요인을 찾아내는 ‘위험 예지 훈련’을 반복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여기서 끝나는게 아니다. 인계 근로자는 인수 근로자가 작성한 내용을 검토하면서 자신이 작업 중에 경험했거나 위험하다고 판단한 사항 등을 인수 근로자에게 알려준다. 미처 자신이 생각하지 못한 위험요소 또는 개선방안까지도 깨달을 수 있다. 사고를 막기 위해 이뤄지는 근로자간 피드백이다.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는게 힘들진 않지만 보통 기업들은 번거롭다는 이유 또는 큰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등의 이유로 이런 절차를 생략한다. 하지만 오드펠터미널코리아는 작은 사고 가능성이라도 줄여보자는 취지에서 이미지 트레이닝을 지속 추진하고 있다.

롯데정밀화학은 매일 교대 때마다 작업 관련 사진을 보면서 위험요인을 찾아내도록 한다. 알아야 볼 수 있다는 일종의 ‘위험 예지 훈련’이다. 훈련이 반복될수록 근로자들은 안전 습관이 몸에 베인다. 작업장에서 근로자간 위험성을 지적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지만 훈련의 영향으로 이를 받아들이는 효과가 기대된다.

코오롱인더스트리 역시 위험 요인을 영상으로 제작해 신입사원 또는 협력업체 직원들을 위한 안전교육 자료로 활용한다. 위험예지 훈련 경진대회를 통해 안전왕을 가려내기도 한다.

한국석유공사 울산지사는 근로자들이 각종 보호구를 제대로 착용한 상태에서 작업을 하는지 스스로 점검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상태 점검용 거울’을 현관 출입구에 설치했다. 거울 상단에 보호구 착용 기준을 제시해 근로자들이 수시로 착용상태를 확인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자발적인 노력은 곧 안전사고 예방으로 이어진다.

산재 예방, 개인적 망각에서 기업의 기억으로
이철우 고용노동부 울산지청장

 

▲ 이철우 고용노동부 울산지청장

서구 나라들이 지난 200여 년에 걸쳐 이뤄낸 산업화를 우리나라는 50여 년 만에 빠른 속도로 이뤄냈다. 이러한 압축적 산업화는 다양한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결과지향주의’ ‘속도지상주의’ ‘물질만능주의’ 등과 같은 결과물을 낳았다.

고도의 압축 성장으로 응축된 지난 50여 년간 ‘위험’이 대형 재난으로 터져 나올 때마다 ‘이제는 우리 사회가 바뀌겠지’라는 기대를 했다. 그런데 기대이상의 변화를 이뤄내지 못하고 있다. 모두가 잊어버리는데 나만 기억하면서 고통스러울 필요가 없기 때문에 ‘망각’이라는 단어를 아주 쉽게 선택했다.

산업재해도 마찬가지다. 왜 나와 우리가 변화에 번번히 실패하는지 곰곰 생각해보면 답은 의외로 아주 간단하다. 희생되거나 부상을 당한 동료 근로자를 두고 마음 아파하거나 걱정을 할 뿐 이들에 대한 인간적인 최소한의 보상을 위해서라도 산업재해를 ‘개인적 망각’에서 ‘기업의 기억’으로 철저하게 승화시켜 ‘변화’를 이끌어 내지 못한 탓이다.

산재 일어날때마다
근본적인 원인 찾기보다
책임자 처벌에만 급급
사고에 제대로 대응하려면
현장의 문제·조직 바꾸고
안전 정보 모두가 공유해야

우리는 과거의 산업재해에서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있다. 소를 잃고도 외양간을 고치지 못하는 듯한 느낌까지 든다. 사고의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기 보다는 누구의 탓인지 희생양을 찾는데 집중하는 분위기도 한몫 한다.

사고의 근본 원인인 조직이나 안전 시스템 문제를 애써 덮어두고 누구를 처벌하거나 사표를 내도록 종용하는 선에서 사고를 수습하고 있다. 이제는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지킨 결과지향주의, 속도지상주의, 물질만능주의를 떨쳐내야 할 시점이다.

아직도 이러한 미련을 떨쳐내지 못하는 기업과 기업 구성원이 계속 존재하는 한 위험에 대한 관용, 사전학습의 부재, 희생양 찾기가 계속되어 우리가 기대하는 기업이나 사회의 변화로 나아갈 수 없게 된다. 결국에는 국가 경쟁력에서 뒤쳐지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기업이 작성한 안전시스템 서류를 보면 정말 잘 만들어져 있다. 하지만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다. 기업인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대부분 안전과 관련해 엄격한 규정을 집행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아는 사람이라면 눈감아 줄 수 있을 것이라고도 얘기한다. 바로 ‘확신성 없는 원칙론’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기업들이 ‘확신성 없는 원칙론’을 갖고 있는 한 이들 조직은 산업재해로부터 매우 치명적일 수 있다. 나와 우리, 기업과 사회 전반에 만연되어 있는 모든 문제점을 일시에 바꾸지 않으면 산업재해를 예방할 수 없다고 단정하고, 포기한다면 우리는 더욱 위험한 사회에서 살게 될 것이다.

산업재해에 제대로 대응하려면 안전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환류(피드백·feed-back)하는 처방을 우선하고 제대로 활용해야 한다.

울산고용노동지청에서는 지난 2013년부터 이러한 시도를 지속하고 있다. 지역의 안전문화를 직접 관리하는 ‘제로플러스 프로그램’(산업재해 ‘0’를 위한 더하기 활동)이다. 대표적인게 지역 220개 기업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선진 안전문화 전파교육’ ‘안전문화 공유회의’ ‘안전지식 공유 장터’ ‘거꾸로 안전수업’ ‘유대인 교육법을 활용한 하브루타 안전교육’ ‘산업안전 골든벨’ ‘관리감독자 안전보건 면담점검’ 등이다.

산업재해를 완전히 줄이는 좋은 결과를 도출하기까지는 아직도 많은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이전과는 다르게 많은 변화를 체감하고 있다는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각 기업마다 재해원인을 분석·규명하고 그에 걸맞게 현장의 문제점과 조직을 바꾸기 위해 노력한 다양한 결과물과 전개 과정을 모든 기업에 명확하게 알려주고 제대로 공유하는 울산고용노동지청의 프로그램은 과거의 실패로부터 교훈을 얻을 수 있도록 하는 충분히 가치 있는 프로그램이다.

이제는 속도와 허울 좋은 외형, 그리고 결과만이 중요시되는 관점이 아니라 안전과 실속 있는 내실, 그리고 변화의 과정을 소중히 하며 정보를 공유하는 지속가능한 관점이 정착돼야 한다.

실패의 정보를 공유하고 학습하며 교훈을 얻어 달라지느냐, 아니면 철저하게 숨기고 학습하지 않아 비극을 반복하느냐는 중요한 변화의 순간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변화의 순간에는 나와 우리의 진심만이 남을 것이다.

이왕수기자 wslee@ksilbo.co.kr

(경상일보-울산 고용노동지청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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