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끝)무형에서 유형으로, 소리체험관
인간에게는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생각이나 감각을 구체적으로 형상화 할 수 있는 독보적인 능력이 있다. 이는 인간을 지구상의 여타 종과 확연히 구분짓게 한다. 인간이 범접할 수 없는 탁월한 존재가치임을 증명하는 방편이기도 하다. 인류 문명은 인간이 가진 이 탁월함을 표출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의 범위를 지극히 좁게 잡았을 때는 한 지역의 독특한 문화를 형성하는 하나의 원동력으로도 작용했다.
건축이라는 한 분야만 놓고 봐도,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감각이나 형이상학적 개념들을 구체적으로 형상화 해 온 몸으로 체험하게 만들고 해석의 재미까지 제공하고 있다. 이런 건축물들이야 말로 한 시대의 정신이 반영된 작품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최근 동구 슬도 인근에 소리체험관이라는 건물이 새로 지어졌다. 이 곳에서는 울산 방어진항 주변의 정취와 자연의 풍광을 동시에 경험할 수 있다. 참신함이 돋보이는 이 건축물은 울산 출신의 김진한 건축가가 설계했다. 김 건축가는 이 작품을 통해 시민과 관람객들에게 색다른 즐거움까지 안겨주고자 오랜 시간 고민했다.
각 층마다 넓은 전망창 있어서
빛·외부경관, 공간이 품도록 배려
귀로 인지한 소리, 눈으로 이해 가능
1층 방어진항, 2층 슬도가 한눈에
육지-바다의 연속성도 표현돼
소리체험관은 무형의 주제인 ‘소리’라는 소재를 형상화 한 건축물이다. 찾는 이로 하여금 인간의 사고와 오감을 형성하는 기관 중 오로지 귀 하나만으로만 체험가능한 ‘소리’를 건축물을 통해 온 몸으로 느끼고 확인할 수 있도록 디자인했다.
김 건축가는 무형의 소리를 유형으로 형상화 하기 위해 소리를 담는 공간, 소리 이야기가 있는 공간, 소리를 이어주는 공간 등 3개의 공간적 개념을 사용했다. 그는 또 독특한 건물 배치를 통해 방문객들이 육지의 소리와 바다의 소리를 구분해 인식하도록 노력했다. 방어진항 앞바다를 바라보는 부지의 특성을 활용해 대왕암공원 지역과 슬도(등대와 바다)지역이 이어지고 있음을 건축 배치를 통해 표현하고 있다.
또한 육지의 소리와 바다 소리가 각기 다름을 조형물 등을 포함한 외부 공간의 구조물을 통해 알려주고 있다. 특히 두 개의 귀가 겹쳐 있는 듯한, 동서로 긴 건물 형태는 육지의 소리가 바다로, 바다의 소리가 육지로 이어지고 있음을 형상화 하고 있다.
소리체험관은 추상적인 느낌으로 인식할 수 있는 ‘소리’를 기승전결을 갖춘 소설처럼 인간의 사고를 통해 재미있게 맛 보고 엮어갈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2층 규모의 소리체험관 각 층마다 입체영상관과 전시공간이 들어서 있다. 방문객은 자연스러운 동선을 통해 내부시설을 두루 경험할 수 있다. 이는 이 공간을 찾는 이들이 울산 동구 9경소리를 체험하고 그들만의 스토리로 기억할 수 있도록 돕자는 취지로, 김 건축가의 의도적인 연출이다.
특히 소리체험관에서는 다른 유사한 건축물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공간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소리를 담는 공간이다. 소리체험관은 소리라는 감각적 개념을 담아놓는 그릇과 같다. 말로는 쉬워 보일 수 있으나 이를 공간적 개념으로 해석하는 일은 결코 만만한 작업이 아니다. 이를 위해 김 건축가는 귀를 통해 인지할 수 있는 소리를 또다른 감각기관인 눈을 통해 이해할 수 있도록 빛과 외부 경관을 공간이 오롯이 품을 수 있도록 배려했다.
소리체험관 각 층에는 넓은 전망창이 있다. 1층에서는 육지라 할 수 있는 방어진항을 바라볼 수 있다. 2층에서는 바다인 방어진항 앞바다와 슬도가 한 눈에 들어온다. 전망창을 통해서 방어진항과 대왕암 공원 산책로, 그리고 슬도와 바다 등의 수려한 경관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다. 그러나 일반적인 건축물에서처럼 체험관의 전망창은 단순히 풍경감상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전망창은 건물의 규모에 비해 상식 밖으로 클 뿐 아니라 마치 신체에 붙은 ‘귀’와 같은 역할의 담당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이 곳을 통해 보고 느끼는 무언의 빛과 경관은 그 속에 담긴 소리와 그 소리가 연상하는 이미지를 공간 안으로 전달한다.
전망창 앞에서 방문객들은 무형의 소리를 유형의 소리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 같은 해석을 가능하게 만드는 종결점이자 시작점이다. 김진한 건축가의 오랜 경험과 사람에 대한 배려에서 만들어진, 유·무형의 공간적 표현이 교차하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우세진 울산과학대학교 공간디자인학부 교수
■ ‘소리체험관’ 건축개요
- 울산시 동구 방어동
- 지하 1층, 지상 2층
- 대지 1466㎡, 건축 409.85㎡(연면적 654.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