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끝)무형에서 유형으로, 소리체험관

▲ 소리체험관은 무형의 주제인 ‘소리’라는 소재를 형상화 한 건축물로 울산 방어진항 주변의 정취와 자연의 풍광을 동시에 경험할 수 있다. 슬도에서 바라본 소리체험관의 낮과 밤 전경.

인간에게는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생각이나 감각을 구체적으로 형상화 할 수 있는 독보적인 능력이 있다. 이는 인간을 지구상의 여타 종과 확연히 구분짓게 한다. 인간이 범접할 수 없는 탁월한 존재가치임을 증명하는 방편이기도 하다. 인류 문명은 인간이 가진 이 탁월함을 표출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의 범위를 지극히 좁게 잡았을 때는 한 지역의 독특한 문화를 형성하는 하나의 원동력으로도 작용했다.

건축이라는 한 분야만 놓고 봐도,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감각이나 형이상학적 개념들을 구체적으로 형상화 해 온 몸으로 체험하게 만들고 해석의 재미까지 제공하고 있다. 이런 건축물들이야 말로 한 시대의 정신이 반영된 작품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 슬도에서 바라본 소리체험관의 낮 전경

최근 동구 슬도 인근에 소리체험관이라는 건물이 새로 지어졌다. 이 곳에서는 울산 방어진항 주변의 정취와 자연의 풍광을 동시에 경험할 수 있다. 참신함이 돋보이는 이 건축물은 울산 출신의 김진한 건축가가 설계했다. 김 건축가는 이 작품을 통해 시민과 관람객들에게 색다른 즐거움까지 안겨주고자 오랜 시간 고민했다.

각 층마다 넓은 전망창 있어서
빛·외부경관, 공간이 품도록 배려
귀로 인지한 소리, 눈으로 이해 가능
1층 방어진항, 2층 슬도가 한눈에
육지-바다의 연속성도 표현돼

소리체험관은 무형의 주제인 ‘소리’라는 소재를 형상화 한 건축물이다. 찾는 이로 하여금 인간의 사고와 오감을 형성하는 기관 중 오로지 귀 하나만으로만 체험가능한 ‘소리’를 건축물을 통해 온 몸으로 느끼고 확인할 수 있도록 디자인했다.

김 건축가는 무형의 소리를 유형으로 형상화 하기 위해 소리를 담는 공간, 소리 이야기가 있는 공간, 소리를 이어주는 공간 등 3개의 공간적 개념을 사용했다. 그는 또 독특한 건물 배치를 통해 방문객들이 육지의 소리와 바다의 소리를 구분해 인식하도록 노력했다. 방어진항 앞바다를 바라보는 부지의 특성을 활용해 대왕암공원 지역과 슬도(등대와 바다)지역이 이어지고 있음을 건축 배치를 통해 표현하고 있다.

▲ 2층 전망창에서 바라본 슬도와 바다.

또한 육지의 소리와 바다 소리가 각기 다름을 조형물 등을 포함한 외부 공간의 구조물을 통해 알려주고 있다. 특히 두 개의 귀가 겹쳐 있는 듯한, 동서로 긴 건물 형태는 육지의 소리가 바다로, 바다의 소리가 육지로 이어지고 있음을 형상화 하고 있다.

소리체험관은 추상적인 느낌으로 인식할 수 있는 ‘소리’를 기승전결을 갖춘 소설처럼 인간의 사고를 통해 재미있게 맛 보고 엮어갈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2층 규모의 소리체험관 각 층마다 입체영상관과 전시공간이 들어서 있다. 방문객은 자연스러운 동선을 통해 내부시설을 두루 경험할 수 있다. 이는 이 공간을 찾는 이들이 울산 동구 9경소리를 체험하고 그들만의 스토리로 기억할 수 있도록 돕자는 취지로, 김 건축가의 의도적인 연출이다.

▲ 소리체험관 주출입구.

특히 소리체험관에서는 다른 유사한 건축물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공간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소리를 담는 공간이다. 소리체험관은 소리라는 감각적 개념을 담아놓는 그릇과 같다. 말로는 쉬워 보일 수 있으나 이를 공간적 개념으로 해석하는 일은 결코 만만한 작업이 아니다. 이를 위해 김 건축가는 귀를 통해 인지할 수 있는 소리를 또다른 감각기관인 눈을 통해 이해할 수 있도록 빛과 외부 경관을 공간이 오롯이 품을 수 있도록 배려했다.

▲ 우세진 울산과학대학교 공간디자인학부 교수

소리체험관 각 층에는 넓은 전망창이 있다. 1층에서는 육지라 할 수 있는 방어진항을 바라볼 수 있다. 2층에서는 바다인 방어진항 앞바다와 슬도가 한 눈에 들어온다. 전망창을 통해서 방어진항과 대왕암 공원 산책로, 그리고 슬도와 바다 등의 수려한 경관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다. 그러나 일반적인 건축물에서처럼 체험관의 전망창은 단순히 풍경감상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전망창은 건물의 규모에 비해 상식 밖으로 클 뿐 아니라 마치 신체에 붙은 ‘귀’와 같은 역할의 담당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이 곳을 통해 보고 느끼는 무언의 빛과 경관은 그 속에 담긴 소리와 그 소리가 연상하는 이미지를 공간 안으로 전달한다.

전망창 앞에서 방문객들은 무형의 소리를 유형의 소리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 같은 해석을 가능하게 만드는 종결점이자 시작점이다. 김진한 건축가의 오랜 경험과 사람에 대한 배려에서 만들어진, 유·무형의 공간적 표현이 교차하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우세진 울산과학대학교 공간디자인학부 교수

■ ‘소리체험관’ 건축개요
- 울산시 동구 방어동
- 지하 1층, 지상 2층
- 대지 1466㎡, 건축 409.85㎡(연면적 65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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