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최고 산지습지 무제치늪
천연기념물 서식하는 신불산 습지
화엄늪엔 멸종위기 식충식물 서식

▲ 신불산 정상부에 형성된 습지의 물 주변에 습지식물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김상희 ‘숲이랑꽃이랑’(울산생명의숲 들꽃모임)회장 제공

늪은 수심 5m이하의 호수와 비슷한 물웅덩이이다.
호수(lake)보다 작고 못(pond)보다 크며, 습지(swamp, marsh)라고도 한다.
깊이가 얕아서 침수식물이 바닥으로 무성하고, 실지렁이가 풍부해 영양분이 많은 편이다.
바람에도 섞일 만큼 물이 교란되기 때문에 여름철에도 물이 정체되는 일이 거의 없다.
이러한 습지는 지구 표면의 약 6%를 차지하고 있다.
육지도 아니고 호수도 아닌 중간지대 성격이어서 한때는 쓸모없는 땅으로 인식돼 있었다.

그러나 람사르 협약을 통해 습지를 범지구적 차원에서 보존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생물종 다양성 유지와 인간의 복지에 매우 유용한 자연공간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습지는 지구상에서 가장 다양한 생명체의 서식지다.
수많은 수생식물이 오염물질을 걸러내는 정화조 역할을 하기 때문에 ‘자연의 콩팥’이라고도 부른다.
하천과 지하수의 물 공급원인 동시에, 홍수 때 물을 저장하거나 흐름을 지연시키는 댐 기능도 한다.
우리나라의 습지보호지역은 지난 6월말 현재 총 36곳 356.045㎢가 지정돼 있다.

환경부 지정 21곳 124.241㎢, 해양수산부 지정 12곳 225.170㎢, 지자체 지정 3곳 6.634㎢이다. 람사르(Ramsar)협약의 습지로 등록된 국내 습지는 22곳 191.627㎢에 이른다.

울산 정족산 무제치늪(18만4000㎡)을 비롯해 강원도 인제 대암산 용늪(136만㎡), 경남 창녕 우포늪(860만9000㎡) 등이 이름을 올렸다.

▲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원시 자연 늪인 우포늪의 아침 풍경. 경남 창녕군 제공

무제치늪은 1999년 8월9일 환경부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됐다. 이어 2007년 12월20일에는 국내에서 일곱 번째로 람사르 습지로 지정됐다.

경남 양산의 ‘신불산 고산습지’(30만8000㎡)와 ‘화엄늪’(12만4000㎡), 밀양의 ‘재약산 사자평 고산습지’(58만7000㎡)는 환경부 지정 내륙습지다.

창녕 우포늪(860만9000㎡)은 후빙기 기후변화에 따라 형성된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원시 자연 늪이며, 람사르 습지로 1998년 3월2일 등록됐다.

◇무제치늪

정족산(鼎足山, 해발 700m) 정상 부근에는 약 1만년 전에 형성된 무제치 제2늪이 있다. 국내 학계에 보고된 현존 산지습지 중에서 가장 오래전에 만들어졌다.

무제치늪은 다양한 생성 연대와 크기를 가지는 10여 곳 이상의 자연 늪들이 연이어 발달하고 있는 독특한 지역이다.

1995년 9월30일 이들 늪의 존재를 학계에 보고하고 무제치(舞祭峙)늪으로 이름 지은 이는 울산대학교 생명과학부 최기룡 교수다.

울주군 웅촌면 은현리 덕현마을 뒤편에 있는 무제치늪은 ‘늘 물이 마르지 않는 곳’이라는 의미로 마을사람들이 ‘물티’라 불렀으며, 가뭄이 심할 경우 기우제를 지내던 곳으로 ‘무제치’(舞祭峙)라는 이름이 지어졌다.

무제치늪은 1999년 환경부 습지보호지역, 2007년 람사르협약 공식습지로 등록됐으며 현재 4개의 습지를 시민들에게 공개하고 있다.

제1늪(해발 510m)은 약 2000년 전에, 제2늪(해발 558m)은 약 1만년 전에, 제3늪과 제4늪(해발 630m)은 거의 붙어있는데 약 6000년 전에 각각 형성된 것으로 조사됐다.

제주도 물영아리늪이나 강원도 대암산 용늪과는 달리 화강암의 심층풍화와 차별침식으로 형성된 습지이며, 빗물과 지표수에 의해 대부분의 물이 공급되고 있다.

두터운 심층풍화층 밑으로 형성된 화강암 기반암이 물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아주면서 습지가 형성된 것이다.

물 공급 체계가 독특하기 때문에 심한 가뭄에도 견딜 수 있도록 진화된 물이끼류와 식충식물 등 습지식물 50여 종을 포함한 257종의 동식물이 살아가고 있다.

이들 늪들이 만들어진 시기도 매우 다양하며 현재도 늪의 구조와 기능이 온전히 유지되고 있다. 한반도의 자연환경 변천과정을 그대로 기록하고 있는 자연의 타임캡슐이 1만년 전부터 꾸준히 현재도 작동하고 있다.

한강 이북의 민통선 내에 위치한 대암산(해발 1304m) 용늪이 학계에 보고된 후 약 30년 만에 산업수도 울산에서 그 모습을 드러냈다는 것은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

그 사이 용늪은 민통선 내에 위치함에도 불구하고 그 원형이 크게 훼손되어 버리고 말았다. 대암산 용늪이 군부대 공사로 파괴되면서 무제치늪이 ‘한국 최대’라는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무제치늪의 발견은 불모지로만 인식돼온 한국 습지에 대한 가치를 새롭게 평가하게 된 획기적인 계기가 됐다.

외국의 장대한 늪만 접해온 대부분의 시민들에게 면적은 상대적으로 좁으나, 세계의 유명 늪과 견주어 손색없는 한국의 독특한 자연 늪을 보여줄 수 있는 획기적인 계기가 된 것도 자랑스럽다.

◇신불산 고산습지

경남 양산시 원동면 대리에 있는 신불산 고산습지는 ‘달포늪’ 혹은 ‘신선늪’이라고 불리며, 늪이 입지한 신불산(神佛山)의 이름을 딴 명칭이다.

신불산 정상부 계곡을 따라 해발 730~750m지점에 자연적으로 형성된 3개 습지로 구성돼 있으며 순수 습지 면적은 약 3만1295㎡이다.

이곳 습지식물로는 진퍼리새, 억새, 끈끈이주걱, 솔이끼 군락은 물론 그 주변에 호랑버들, 신갈나무, 떡갈나무, 상수리나무, 미역줄나무 군락 등이 우위를 점하고 있다.

또 물매화, 이삭귀개, 자주땅귀개, 애기사초, 꽃창포, 잠자리난초, 보풀, 애기나리, 은방울꽃, 하늘나리, 방울새난, 물미나리아재비 등이 분포한다.

동물로는 천연기념물인 검독수리, 수리부엉이, 소쩍새 등과 환경부 지정 보호야생동물인 삵, 수리부엉이, 조롱이 등이 서식하고 있다. 또 검은등뻐꾸기, 뻐꾸기, 꾀꼬리 등의 조류도 서식하고 있다. 검독수리는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 야생동물이기도 하다.

신불산 고산습지는 한반도 남동부 내륙지방에 분포하는 전형적인 고산 습지로 자연환경 및 지질학적 가치가 높다.

신불산 고산습지는 2002년 8월 양산녹색연합에 의해 발견됐으며 2004년 2월20일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됐다.

◇화엄늪

화엄늪은 천성산 제2봉(해발 812.7m) 자락 해발 800m부근에 형성돼 있는 0.124㎢규모의 고산습지다.

양산 용주사에서 시작해 지프네골을 거쳐 천성산1봉으로 오르는 길목에 있으며 정족산 무제치늪과 약 10㎞가량 떨어져 있다.

화엄늪은 백두대간 태백산에서 부산 금정산까지 뻗은 낙동정맥의 한가운데 위치하고 있다. 이 고산습지에 도달하면 아직은 풋풋한 억새들이 피기 시작하며 알프스 너른 평원처럼 이국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화엄늪은 자연사박물관이다. 억새와 진퍼리새 군락 사이에 식충식물인 끈끈이주걱(Drosera rotundifolia)과 물봉선, 고마리, 송이풀, 물이게, 물이끼, 비비추, 은난초, 다래, 꽃창포 등 다양한 습지성 식물들이 자라고 있다.

그중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식충식물이다. 일반적인 자연생태계의 먹이사슬에서는 곤충이 식물을 잡아먹지만, 식충식물은 곤충을 잡아먹곤 한다.

우리나라에는 끈끈이귀개과와 통발과에 속하는 12종의 식충식물이 있는데, 식충식물은 개체수가 적어 멸종위기 야생식물로 지정되어 있다. 식충식물인 끈끈이주걱(Drosera rotundifolia)을 비롯한 희귀한 생물들이 살아가는 화엄늪은 생태학적 가치가 매우 높다.

박철종기자 bigbell@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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