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화학연구원 창립 40돌
인류를 위한 연구에 더욱 매진

▲ 이동구 한국화학연구원 화학산업고도화센터장 RUPI 사업단장

오늘은 한국화학연구원(이하 화학硏)이 창립된 지 40돌이 되는 날이다. 사람 나이로는 불혹인 셈이다. 1986년 화학硏에 첫발을 내딛은 필자는 꼬박 30년을 한 직장에서 일하고 있다. 그리고 그중 10년은 대전과 울산을 오가며 울총(울산총각)으로 보내고 있다. 하지만 화학硏과의 인연은 훨씬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직도 그날 밤 기억이 또렷하다. 1968년 1월21일, 31명의 북한 무장공비가 청와대를 습격한 사건이 일어났다. 당시 청운국민학교 4학년 겨울방학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필자가 살던 집은 종로구 청운동이었다. 청와대가 500m도 안 되는 곳으로 경복고등학교 정문 앞이었다. 늦은 밤 갑자기 콩 볶는 듯한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판사 신분으로 공산당을 벌주며 6·25를 겪은 아버지는 “빨리 불을 다 끄라”고 하셨다. 2층으로 올라가보니 밤하늘에는 조명탄이 터져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북한산을 넘어 서울 시내로 들어가려면 반드시 자하문을 거쳐야 한다. 그리고 경기상고 벽을 따라 자하문길을 쭉 내려오면 국립과학수사연구소가 있었고 그 너머가 칠궁이다. 칠궁은 청와대와 맞닿아 있다.

국군 차림으로 아무런 제지 없이 진군하던 북한특공대와 이 곳에서 교전이 벌어졌다. 그리고 이들을 맨손으로 저지한 영웅은 그 자리에서 순국했다. 당시 종로경찰서장인 최규식 경무관이다. 버스에 수류탄을 투척, 민간인도 여러명 죽었고, 인왕산으로 뿔뿔이 흩어져 도망치던 공비의 손에 경복고 경비 아저씨도 운명을 달리 했다. 학교는 임시휴교에 들어갔고 집에서 꼼짝달싹할 수 없는 공포의 나날이었다.

미국 정보함 푸에블로호 납치와 120여명의 무장공비가 1개월 이상 침투했던 울진·삼척 침투사건 등으로 1968년 당시 남북관계는 준전시상태나 마찬가지였다. 박정희 대통령은 1970년 방위산업 육성계획을 지시했다. 북한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한 군 무기의 현대화를 위해서는 선진국 수준의 중화학공업과 기술이 절대적으로 필요했고, 당장 전문 연구기관을 세우는 게 시급했다. 그래서 만들어진 곳이 바로 대덕연구단지다.

화학硏은 이렇게 대덕연구단지에 창립되었다. 일반 국민들에게는 2005년에 지정된 대덕연구개발특구보다는 대덕연구단지로 더 널리 알려져 있다. 대덕연구단지는 대전의 북쪽에 자리 잡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과학연구단지이다. 대덕연구단지 조성사업은 1968년에 수립된 과학기술개발 장기종합계획에서 처음으로 거론됐다. 전국 각지에 분산돼 있던 각종 연구기관들을 한 곳으로 집적화시켜 상호간의 연구 시너지를 높이자는 의도였다.

대덕연구단지는 입지적으로 여러가지 강점을 지니고 있다. 우리나라 중심부에 위치한 대전은 경부고속도로와 호남고속도로 및 경부선과 호남선이 분기 교차하는 교통의 요충지로서, 우수 두뇌의 집결이 쉬우며 전국 산업기지와의 연결이 편리하다. 또한 각 공업단지에 대한 기술지원이 용이하고, 금강을 옆에 끼고 있어 용수의 공급과 처리 등 연구 환경이 적합하다. 과학기술의 요람, 대덕연구단지는 그동안 다양한 분야에서 성과를 내왔다.

대한민국 최고의 화학 전문 연구기관인 화학硏은 과거 40년 동안 우리 의식주 부문에서 많은 연구와 공헌을 해 왔다면 미래 40년은 지구환경 보존과 그린에너지 연구개발 부문에서 더욱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그리고 화학硏이 지역으론 유일하게 뿌리내린 울산에서, 저성장에 빠진 울산경제에 새로운 성장동력을 제공하고 첨단기술을 이용해 시민 삶의 질을 높이는 데에 최선의 노력을 경주할 것이다. 친환경자동차, 경량소재, 스마트시티, 탄소자원화, 미세먼지, 바이오신약, 고기능 스페셜티 등 새로운 성장동력 창출에 울산과 함께 매진할 것이다.

북한 무장공비의 청와대 습격 사건으로 대덕연구단지가 생겨났고, 그 총소리에 놀란 아이는 화학硏에서 30년을 보내고 있다. 그리고 울총 10년이 되었다. 울산이 참 좋다. 앞으로의 남은 인생도 울산과 어떤 끈으로 연결될 지 예단할 수 없지만 어떤 형태로든 울산과 계속 이어지리란 예감이 든다. 화학硏 창립 40주년을 자축하면서 ‘우리를 위한 화학, 지구를 위한 화학’을 더욱 계승 발전시켜 나가겠다.

이동구 한국화학연구원 화학산업고도화센터장 RUPI 사업단장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