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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그림이 있는 에세이
[그림이 있는 에세이]몇 장의 휴지조각 - 조숙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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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9.01  17:5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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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찾기 - 김성동 作. 50x90㎝ 캔버스에 혼합재료.아주 천천히 빛 바래고 닳고 부서지기도 하지만 그 소박하고 은은한 질감과 색감은 오랜 시간 만큼이나 깊이를 더한다.

지난 주말 남편과 함께 원주에 있는 예담요양원에 다녀왔다. 그곳엔 몇 년 동안 치매를 앓고 있는 시어머님이 계신다. 작년까지는 자리에서 일어나 앉기도 하고 기어 다니기도 하였다. 올해는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 치매를 앓기 전 어머님은 꿋꿋하고 강단이 무척 센 분이었다.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3년 뒤부터 어머님의 노화는 눈에 띄게 진행되었다. 시댁이 파산했기 때문이다. 시아버님과 성실하게 노력해서 장만한 집과 논 서너 마지기, 밭, 산 등등이 큰 시숙의 사업 실패로 인해 모두 은행으로 넘어갔다.

요양원의 앙숙 두 할머니가 벌인
보잘 것 없는 휴지 쟁탈전은
살아온 자취 잃은 치매환자에게도
잠시 뜨거운 피 돌게한 삶의 유희
피하고만 싶은 미운 사람도 없으면
우리 삶이 얼마나 심심하고 외로울까


어머님은 그 당시 상황을 꿈속이라 치부하고 싶으셨는지도 모른다. 심한 우울증으로 기억력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이십여 년 동안 우울증에서 벗어나지 못하시다가 결국은 요양원으로 들어가셨고 지금은 치매로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신다. 고단하게 살아온 삶에게 보상을 받기는커녕 기초적인 인지능력은 물론 살아온 모든 추억들과 사랑하는 가족도 잊어야 하는 치매는 참 냉정하고 잔혹한 병이다.

작년까지 어머님이 계시던 방에는 다른 할머니들이 두 분이 더 계셨는데, 그 중 한 분이 유난히 욕심이 많았다. 평소 그 할머니가 어떤 분이었는지 잘 모른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욕심쟁이 할머니로 호칭을 쓰기로 한다. 우리 어머님은 키가 작고 허리를 꼿꼿이 펴지 못해 주로 앉아서 기어 다니며 생활하고 있었다. 그런데 욕심쟁이 할머니는 보통 할머니들 보다 키가 훨씬 크고 말도 그럭저럭 잘하시는 분이었다. 심장이 안 좋아 손발이 풍선처럼 탱탱해졌지만 우리 어머님과는 다르게 기억도 맑고 의식도 선명했다.

두 분은 의식하지는 못하셨지만 서로 의지하며 미운 정 고운 정을 나누며 하루하루 보내고 있었던 것 같다. 욕심쟁이 할머니는 간호조무사의 눈을 피해 어머님의 식사를 가로 채는가 하면 사물함에 있는 어머님의 간식을 슬쩍슬쩍 가져가기도 했다. 어머님은 그 할머니를 다소 경계하며 살았겠지만 그 할머니의 사소한 행동이 나는 왠지 귀엽게 느껴졌다.

작년 가을 우리가 면회 갔던 그 날, 어머님이 이상한 행동을 하셨다. 베개를 무슨 보물처럼 깔고 앉아 꾸부정하고 엉거주춤한 자세를 보여 주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두 다리를 오므리며 긴장된 눈빛으로 안절부절 못하는 것이었다. 소변이 마려웠던 것이다. 남편과 나는 어머님을 일으켜 세우려고 안간힘을 썼고 앙상한 뼈만 남은 어머님은 어디서 온 힘인지 거칠게 나를 제압하며 베개를 더욱더 누르며 좀처럼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으려고 했다. 애기처럼 달래보기도 하고 어르기도 했지만 어머님의 신경은 오직 그 베개 사수에만 있는 듯했다.

그때 우리를 지켜보던 간호조무사가 재미있는 일화를 들려주었다. 얼마 전 병실이 발칵 뒤집히는 사건이 있었단다. 거동이 불편하고 말도 못하는 우리 어머님과 심장병을 앓고 있는 욕심쟁이 할머니가 싸웠단다. 원인은 몇 장의 휴지 때문이었다.

간호조무사는 점심식사를 마치고 입 주위를 닦으라고 할머니들한테 휴지 몇 장씩 나누어 주었다. 어머님은 그 할머니에게 빼앗길세라 그 휴지를 나름 곱게 접어 베개 밑에 감추었다. 그런데 욕심쟁이 할머니는 안 보는 척하면서 곁눈질로 어머님의 거동을 주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머님이 간호조무사의 도움을 받으며 화장실에 다녀오는 사이였다. 그 할머니가 슬며시 자신의 자리에서 일어나 어머님의 자리로 가서 베개를 들추고 휴지를 잽싸게 꺼내 자신의 속바지 주머니에 몰래 넣었던 것이다.

화장실에 다녀온 어머님은 그 휴지의 존재를 잊어버리지 않았고 베개 밑을 먼저 들춰 보았다. 욕심쟁이 할머니의 속바지 주머니에 들어간 베개 밑 휴지가 있을 리 만무했다. 어머니는 우우 소리를 지르며 그 할머니 옆을 기어 다니며 이불이며 베개를 들추려 했고 그 할머니는 시치미를 뚝 떼고 어머님을 밀치며 이 할머니가 노망이 들었나! 며 소리를 쳤다. 급기야 어머님은 아이처럼 엉엉 울었고 간호조무사들이 어머님에게 새로운 휴지를 주어서 사건은 진정되었다. 그 후로도 그 방에서 두 분의 휴지 찾기 놀이는 한동안 계속 이어졌다고 했다.

보잘것없는 휴지 쟁탈전이 그 분들에게는 잠시 뜨거운 피가 흐르게 하는 삶의 유희였다는 것을 나는 뒤늦게 알게 되었다. 올 2월 우리가 다시 어머님을 찾아뵈었을 때, 그 할머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작년 연말에 심장병이 더 악화되어서 결국 돌아가시고 말았던 것이다. 그로부터 어머님의 병세도 더욱 악화되었다. 결국 어머님은 2급 중증치매환자 등급을 받았다. 살아가면서 정말 피하고 싶고 만나고 싶지 않은 미운 사람이 더러 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이 옆에 없으면 우리의 삶이 얼마나 심심하고 외로울까. 그 할머니의 작은 욕심이 우리 어머님을 요양원에서 살아가게 하는 삶의 원동력이었던 것 같다.

   
 

■ 조숙향씨는
·시인
·2003년 ‘시를 사랑하는 사람
들’로 등단
·한국작가회의 회원
·울산작가회의 회원
·시집 <도둑고양이 되기>·한우리독서토론논술 울주지부장

 

 

 

   
 

■ 김성동씨는
·개인전 3회
·프랑스 에꼴드보자르(Ecole
de Beaux-Arts)단기과정
·ART SEOUL(예술의전당)
·具象展( 국립현대미술관)
·한국신표현작가그룹전
·울산사생회 회장, 울산미술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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