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김밥의 추억

어릴 적 어머니는 오일장을 돌며 장사를 다니셨고 아버지는 농사일에 바빠 자식들 학교생활은 늘 할아버지 몫이었다. 갑자기 장맛비라도 내리는 날이면 할아버지가 학교로 짐자전거를 타고 오셨다. 수업 중에 교실 문을 활짝 열고는 “○○야, 우산 여(여기) 있다”면서 우산을 툭 건네고 가셨다. 끝부분을 헝겊으로 꿰맨 기이한 모양의 우산에 허름한 옷과 밀짚모자를 눌러쓴 촌로의 모습. 동생들은 이런 모습이 친구들한테 부끄럽다며 집에 와서는 괜히 어머니에게 짜증을 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일은 그 후에도 계속되었고 그때마다 부끄러웠다는 기억과 함께 지금도 빠지지 않는 레퍼토리가 김밥에 대한 추억이다.

▲ 이창우 호텔현대울산 총주방장

새벽에 장사 다니셨던 어머니
자르지도 않은 김밥 싸주셨지만
양은도시락과 용돈 20원 꼭 챙겨줘
간편하게 음식 구매하는 요즘 시대
삶의 힘이되는 따뜻한 기억을 알까

우리 집 김밥은 참기름에 소금만 넣고 싼 것이었다. 다른 집은 최소한 계란, 단무지, 당근을 넣고 잘라서 싼 김밥이라면 우리 집은 맨밥에 둘둘 말아 자르지도 않았다. 젓가락이 필요 없이 그냥 손으로 잡고 베어 먹으면 되는 것이었다. 새벽에 장사를 다니셨던 어머니는 남들처럼 김밥을 싸 주고 장사 가기에는 준비할 게 너무 많았던 것 같다. 이렇게 간편한 김밥이었지만 늘 금빛 나는 양은 도시락을 삼베 보자기에 싸고는 용돈으로 20원을 주머니에 꼬옥 넣어주셨다.

어떤 날은 보물찾기를 하느라 정신이 팔려 돈을 잃어버렸다. 그것도 모르고 소풍에서 빠지지 않던 ‘아이스케키’(얼음과자)와 사이다를 사 먹지도 못한 채 혼이 났다. 동생들은 엄마가 싸주신 김밥이 굵기도 했지만 옆구리마저 터져 친구들 몰래 먹었다고 한다. 한번은 그 김밥마저 싸 줄 시간이 없어 맨밥을 싸간 적도 있는데 왜 김밥 싸 줄 형편이 안 되느냐며 심통을 부리다 혼이 난 적도 있다.

그때는 소풍 자체만으로도 설레는 일이고 일 년 중 가장 큰 행사였다. 요즘 초등학교 아이들은 소풍이 귀찮은 일 중 하나일 것이다. 부모 입장에서는 한가하게 소풍을 가서 뛰어놀 시간에 학원에 보내고 싶을 것이다. 그런 마당에 새벽같이 일어나 김밥을 싼다고 부지런을 떨 부모가 얼마나 되겠는가.

카드 한 장만 들고 나가면 24시간 영업하는 김밥집이 널려 있다. 여기에 시장 표 김밥, 편의점 김밥까지 있으니 궁상 아닌 궁상을 떨 필요성을 못 느낀다. 애들이 좋아하는 재료와 싫어하는 재료를 골라 가면서 살 수 있으니 굳이 밤잠을 설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입시위주, 성적지상주의로 인해 좁은 교실과 스마트폰 안에서만 살고 있는 아이들. 추억을 먹고 살 나이가 되었을 때 마음속으로 넘길 앨범 하나 없고 마음 터놓을 친구 하나 없는 세상을 살고 있지는 않을까. 살다가 힘들 때 유년의 기억들이 얼마나 힘을 주는지, 그 마음 안에 얼마나 따뜻한 물이 고이는지 알기나 할까.

 

●오늘의 별미 메뉴-차가운 복숭아 수프

◇천도복숭아 수프

△재료: 복숭아 3개, 닭 육수(생수) 200㎖, 양파 2분의 1개, 무염 버터 50g, 밀가루 50g, 와인 4큰술, 생크림 4큰술, 넛맥 1큰술(계피가루), 설탕 20g, 소금, 후추, 민트 잎 3개.

△만드는 법 :

● 팬에 무염 버터를 약한 불에 녹인 다음 밀가루를 넣고 갈색이 나게 루(roux)볶은 다음 식힌다.

● 닭 육수를 넣고 끓여 농도를 맞춘 다음 생크림을 첨가한다.

● 다른 팬에 버터를 두르고 잘라둔 양파, 복숭아를 넣고 살짝 익힐 때 소금, 설탕을 첨가한다.

● 모든 재료를 넣고 섞은 다음 마지막으로 소금, 후추, 설탕을 첨가해 마무리 양념을 한 다음 믹서에 곱게 갈아 채에 바친 것은 볼에 담아 냉장고에 보관한다.

● 2시간 정도 냉장고에 보관했다 접시에 담고 장식으로 민트 잎으로 장식한다.

◇복숭아 요거트 스프

△재료: 복숭아 3개(캔 복숭아 1캔), 플레인 요거트 3개, 설탕, 생크림, 우유 1컵, 설탕 3분의1컵, 샤프란 (치자)국물 1컵, 레몬즙 30㎖, 민트 잎 3개.

△만드는 법:

● 샤프란은 물과 와인(소주)을 넣고 물을 우려낸다.

● 냄비에 설탕, 우유, 우려낸 샤프란 국물(치자 물)을 넣고 설탕이 녹을 때까지 끓인다.

● 복숭아를 잘라 넣고 살짝 익힌다.

● 재료를 식힌 다음 플레인 요거트를 넣고 믹서에 갈아 냉장고에 보관한다.

● 2시간 후에 그릇에 담고 민트 잎으로 장식한다.

이창우 호텔현대울산 총주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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