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명절 몸과 마음 정성 다하던
옛 조상들 삶의 지혜를 떠올리며
풍성하고 꽉찬 한가위 빌어보자

▲ 윤시철 울산시의회 의장

추석이 목전에 다가왔다. 이미 우리의 마음은 모든 걱정과 근심을 뒤로 한 채 고향으로 달려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언제 달려가도 반겨주는 고향의 산천, 그리고 따사로운 인정, 어느 새 삶의 찌꺼기를 털어내며 마음은 넉넉해진다. 한 여름의 더위가 꺾이는 처서가 오래 전에 지나고 이슬이 짙어가는 백로가 저 만치 멀어져 가면 어느 새 아침저녁으로 서늘한 바람이 불어온다. 햇빛이 길게 눕고 바람이 차면 이제 가던 길을 멈추고 속을 다질 때다. 온갖 무성하던 풀도 자람을 멈추고 곡식은 탐스럽게 제 속을 채운다.

추석이 오면 청명한 하늘을 이고 비치는 따사로운 햇살을 밀짚 모자에 숨긴 채 아버지 산소에, 어머니 산소에, 혹은 조상님 산소에 벌초를 간다. 여름내 웃자란 풀을 한 줌 한 줌 베다 보면 산소는 말끔해 진다. 지금은 예초기로 벌초를 해 힘도 덜 들고 시간도 아낄 수 있지만 예전에는 온통 낫으로 베어야 했다. 낫질이 보기보다 쉽지 않다는 것을 경험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마음이 급하다고 서둘다 보면 제 손을 베는 수도 있고 금방 지친다. 마치 높은 산을 오르듯 꼭대기를 쳐다보지 않고 제 발 앞만 보고 한발, 한발 걸으면 어느 새 저 만치 정상이 나타나듯이 낫질도 그렇게 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게 된다.

추석이 가까이 오면 마을마다 집집마다 굴뚝에 긴 연기 피어 오르고, 온 동네가 구수한 향으로 가득해진다. 그 중 송편은 단연 으뜸이다. 송편을 예쁘게 만들면 배우자가 곱고 딸이 예쁘게 태어난다는 속담도 있지 않던가. 모든 일에 자기의 정성을 기울이라는 가르침이다. 조그맣고 예쁘게 빚은 송편은 보기에도 좋고 더 맛나 보인다. 일상에서 항상 말씨를 곱게, 맵씨를 단정히, 솜씨를 바르게 하라는 의미가 있다. 송편을 찔 때 솔잎을 먼저 깔았던 까닭은 향긋한 솔잎 향을 배게 해서 맛깔을 더 해 보려는 지혜가 숨어 있다. 최근에 그 속내에는 더 깊은 과학에 바탕하고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솔잎에 들어있는 테르펜이라는 성분이 살균과 방부력이 강력하고 신진대사를 촉진하며 체내의 독성물질과 노폐물을 배출시켜 준다는 것이다. 옛 조상들의 숨은 지혜가 달달하게 묻어나는 이유다.

드디어 아침이 밝아오면 깨끗한 몸으로 밤새 마련한 음식이 정성으로 차려진다. 몸을 정갈히 하고 마음은 정성을 다해야 한다. 대개 제사는 음을 받드는 일이라 음이 충만한 밤에 지내지만 차례는 양의 기운이 솟는 아침에 지낸다. 그런데 음이 가득 찬 보름달이 뜨는 날(태음)을 택한 것이 참으로 묘하다. 생각해 보면 음양의 조화로 만물이 생성되고 인간의 길함과 복, 오곡백과도 해와 달의 운행에 따라 생장하고 사멸하는 것이어서 음과 양이 다 귀한 것이다. 오곡의 결실은 하늘과 바람과 땅, 그리고 알맞은 비의 조화까지 어우러져 만들어 진다. 땅의 풍성함은 은혜이며, 이를 감사하는 마음의 발로가 바로 추석이다.

짧은 가을의 하루가 훌쩍 지나면 동산 어두운 숲 위로 보름달이 휘영청 떠오른다. 터질 듯 부푼 둥근 달이 우리의 눈으로 쏘옥 들어온다. 산마루에 걸린 달, 나뭇가지에 어린 달, 굽이굽이 강물 위에 잠긴 달, 길 따라 물 따라 벗이 되어 주던 보름달, 머리 위에 보름달 비추면 우리 모두 온갖 시름 잊고 소원을 빌어 보자. 부모님 만수무강하시고, 형제자매 잘 살라고, 어린 자녀 조카들 바르게 맑게 자라 달라고, 인정 가득한 세상이 오라고, 통일의 세상이 오라고, 더 이상 다툼이 없고 서로 화목하며 살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욕심 줄이며 살게 해달라고, 그래서 어디에서 무엇을 하던지 모두 행복하고 보람되고 아름다운 삶이 되어 달라고. 무엇보다, 울산경제가 힘차게 재도약할 수 있게 해달라고 한번 빌어 보자.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으라고.

윤시철 울산시의회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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