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다오르간이 설치된 자다르 해변의 계단식 부두.

크로아티아 수도인 자그레브에서 아드리아 해를 향해 달리면 조용한 항구도시 자다르(Zadar)에 닿는다. 청량한 하늘과 강렬한 태양이 파이롯 잉크 빛 바다와 만나 영화 ‘태양은 가득히’의 배경장면을 연출한다. 규모는 작지만 역사도시이며 휴양지로 알려진 곳이다.

자다르는 아드리아 해에서 교통과 상업의 요충지로서 고대 로마시대로부터 도시 발전이 이루어진 항구도시이다. 중세시대에는 교황청이 직접 관리하는 달마티아 지역의 주도로 성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2차대전 중에 도시의 60%가 파괴되었다가 재건되었고, 1991년 유고와의 전쟁에서도 피해를 받았다. 현재의 모습은 수없이 복구와 재건이 이루어진 결과이다. 그러나 꼼꼼히 살펴보아도 전쟁의 상흔을 찾아내기는 쉽지 않다. 놀라우리만큼 중세의 모습을 원형대로 재현하고 있다.

아드리아해의 휴양지 자다르
전쟁으로 도시의 60% 파괴돼
수없는 복구·재건으로 되살려
파도가 연주하는 ‘바다오르간’
건축가 바시치의 상상력 산물
창발적 교육이 창조의 원동력

도시는 오랜 역사를 자랑하듯 로마시대 유적으로부터 중세유럽의 가로와 광장, 그리고 건축을 나이테처럼 축적하고 있다. 마치 건축형식의 시대별 사례들을 전시하는 건축박물관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건축역사에 기록될 만큼 거창한 유산은 없다. 게다가 도시중심을 종으로 연결하는 시노카 대로의 길이가 1km도 안 되는 작은 규모의 도시이다. 뒷짐 지고 어슬렁거리며 작은 골목까지 걷는다 해도 불과 두 시간이면 더 볼 곳이 없다.

중심가로를 빠져나와 해변가로 향한다. 아직 성하도 아닌데 작열하는 태양이 살갗을 태울 만큼 뜨겁다. 해변에는 계단식 부두가 조성되어 있다. 그 계단 위에 사람들이 양산도 없이 온몸으로 햇볕을 받으며 바다를 향해 열 지어 앉아 있다. 마치 무엇에 홀린 사람들처럼 넋을 잃은 모습이다.

가까이 다가가니 잔잔한 소리가 들려온다. 오디세우스를 홀리게 했던 세이렌의 노랫소리처럼 부드럽고 몽환적인 음향이 귓가에 스며든다. 아무리 둘러봐도 음향장치는 보이지 않는다. 부두바닥을 자세히 살펴보니 손가락 정도의 구멍을 발견할 수 있다. 이 구멍을 통해 애잔한 파이프 오르간의 음률이 나오는 것이다.

이것이 현지 건축가인 니콜라 바시치가 설계한 바다 오르간이다. 방파제의 돌계단 밑에 구멍을 뚫어 그 안에 파이프와 휘슬로 된 장치를 설치하고 파도의 움직임에 따라 공기를 불어 넣으면 소리가 나도록 설계된 것이다. 배가 지나면서 큰 파도를 만들면 소리의 음량도 커지게 되어 있다. 애잔하고 최면을 거는 듯한 오르간 소리는 이미 음악이었다. 파도가 만들어내는 자연의 음악이 끊이지 않고 연주되는 것이다.

그는 부두 바닥에도 태양광 집열장치 하나를 더 설계하여 바다 오르간과 연계시켰다. 지름 22m 너비의 원형 바닥에 집열판 300장을 깔아 만든 태양광 집열판을 설치한 것이다. 낮에 태양에너지를 모아두었다가 이를 전기에너지로 바꾸어 해맞이 광장(Sun Salutation) 전체의 조명시스템에 전력을 공급한다. 뿐만 아니라 바다오르간 소리에 맞추어 환상적인 빛의 향연을 펼친다. 촉박한 일정으로 밤의 모습을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관광객뿐만 아니라 현지인들까지 몰려들어 발 디딜 틈이 없다고 한다. 이를 구경하기 위해 하루를 머물게 만들었으니 고부가가치의 관광 상품이라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 강영환 울산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자다르 부두에 앉아 파도가 연주하는 음악을 들으며 한 건축가의 기발한 상상력을 생각한다. 그것은 거창한 산업설비와 비싼 원료없이 만들어낸 고부가가치 상품이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파도와 공짜 태양을 밑천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봉이 김선달’이며, 지속가능한 생산이다. 공해도 없고 쓰레기도 남지 않으니 친환경적 산업임은 말할 나위가 없다.

무엇이 이러한 발상을 가능하게 했던 것일까? 여러 가지 사회적 배경이 있겠지만 창발적 교육 풍토가 전제되지 않고는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창조의 원동력은 상상력이며, 상상력은 교육에 의해 길러지기 때문이다. 상상력은 다양하고 새로운 시각에서 발현한다. 우리네 교육현장에서 엉뚱한 상상은 종종 ‘삐딱한 생각’으로 무시되거나 핀잔을 받는다. 획일적이고 단선적인 교육풍토의 단면이다. 줄 세우기식, 암기식 교육으로 과연 기발하고 창의적인 상상력이 길러질 수 있을까? 우리 사회의 미래는 바로 그 ‘발칙한 상상력’이 열어줄 텐데….

강영환 울산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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