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두희와 태화나루

▲ 1962년 태화나루 줄 나룻배.

울산 고유의 전통민속놀이 마두희는 놀이가 끝난 뒤 ‘줄’을 처리하는 방식이 매우 독특하다. 현재 전국에서는 많은 줄다리기 행사가 치러지고 있으며, 그 중 삼척 기줄다리기, 영산 줄다리기, 아산 기지시줄다리기, 밀양 감내게줄당기기, 남해 선구줄끗기, 의령 큰줄땡기기 등은 유네스코의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이들 대부분은 행사를 치른 뒤 줄을 끊어 가서 신앙의 목적으로 사용하거나, 잘라서 논밭에 뿌려 거름으로 사용한다. 태워서 없애는 곳도 있다.

그러나 마두희에 사용된 줄은 태화진(太和津, 태화나루)에 주어 배를 매는 줄로 사용하게 하였다. 지금까지 마두희 줄은 민속학적으로 태화나루 곁의 황용연의 용(龍)을 매어두는 의미로 해석되어 왔다. 그런데 태화나루의 사공과 배를 매는 줄의 관계 속에서 실용성을 고려해보면, 또 다른 가능성도 엿볼 수 있다.

학성지·청대일기 등에 기록
튼튼한데다 해마다 교체 가능
조선시대 나룻배는
단순 통행수단 넘어 군사용 활용
왜적방어·무사안녕 기원하는
화합의 장으로 승화

조선시대 여러 고문헌을 검토해 보면, 나룻배는 ‘진선(津船)’ ‘진부선(津夫船)’ 등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국가가 배의 건조에서부터 수리 및 폐선에 이르기까지 직접 관리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이유는 나룻배가 평상 시 고을주민들에게 유용한 통행수단이 되지만, 전쟁 시 군사의 원활한 이동과 적의 진입 차단에 매우 중요한 시설로 전환되기 때문이다. 심지어 전라도 광양현 섬진수군진의 1872년 옛 지도에는 나루터에 군사용 배와 나룻배가 나란히 그려져 있기도 하다. 이처럼 태화나루의 나룻배도 국가가 관리한 중요한 시설중의 하나였고, <학성지>에 수록되어 있는 지도에도 나룻배가 명확히 그려져 있다.

▲ 충남 아산 기지시 줄다리기 줄.

그리고 일반적으로 한 고을에서 줄다리기를 위해 사용하는 줄은 암컷과 수컷으로 나뉘는데, 그 하나의 굵기는 여러 가닥을 엮어 가장 굵은 쪽의 지름이 1m 이상이다. 그리고 암수줄을 모두 합쳐 뭉쳐 놓으면 그 부피가 웬만한 집 한 채의 크기를 넘기기도 한다. 따라서 태화나루의 사공이 이 줄을 관리하거나 유지하기에는 매우 어렵고, 태화강의 범람과 연계해 보더라도 여러모로 한계가 있다.

따라서 마두희 줄다리기 행사 뒤에 태화나루 사공에게 준 줄은 나루터 운영에 보다 적극적으로 사용되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태화 나룻배는 노를 저어 강을 건너기도 했지만, 1960년대 사진을 보면, 나루의 양쪽에 서로 줄을 연결하고 그 줄을 잡아 당겨 건너는 줄나룻배(줄배)가 설치되었음을 찾아 볼 수 있다. 이는 반구동과 삼산동을 이었던 내황나루에서도 마찬가지였다.

▲ 전남 곡성 호곡마을 줄나룻배 구조.

마두희 줄다리기는 수 백 명의 사람들이 양쪽에서 서로 잡아당기는 놀이인데, 그 과정에서 줄은 튼튼하게 잘 버틴다. 즉 나룻배 사공의 입장에서 튼튼한 줄임이 검증된 것이라고 할 수 있고, <학성지>의 내용에서도 찾아 볼 수 있듯이 칡과 짚을 섞어 만든 것이기 때문에 일정 강도 이상이 확보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마두희는 매년 치러지는 행사이기 때문에 그 줄도 해마다 새롭게 교체하는 것 또한 가능하다.

현재 줄나룻배가 원형에 가장 가깝게 남아있는 곳은 전남 곡성 호곡마을과 침곡마을을 이어주는 섬진강 상류의 호곡나루터이다. 이 줄은 강변 양쪽을 이어주는 몸줄이 있고, 몸줄에 당김줄이 쇠(철)고리에 걸쳐 연결되어 있다. 사공이 실제로 당기는 줄은 당김줄이며, 나룻배의 닻줄은 땅이 아닌 몸줄에 연결되어 있다.

▲ 1872년 전라도 광양현 섬진수군진의 지도.

이를 참고해 보면, 조선시대 태화 나룻배는 마두희 줄을 적당히 해체하여 굵은 것은 강 양쪽을 길게 연결한 몸줄로, 가는 줄은 당김줄과 닻줄로 사용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철산지인 달천철장과 그 인근의 여러 쇠부리터에서 쇠고리 철물을 쉽게 생산할 수 있는 여건이었기 때문에 나룻배 줄 조성에 최적화 되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를 두고 <학성지>와 <청대일기>에 ‘태화나루의 사공에게 주어 배를 매는 줄로 사용하게 했다’고 기록하였을 것이다.

이처럼 울산의 전통 줄다리기인 마두희는 그 시작에서부터 끝까지 울산고을의 효과적인 운영과 활용의 체계 속에서 중요한 연결고리로 작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성곽도시 울산의 풍년을 통한 안정적인 왜적방어와 무사 안녕을 이루어내기 위해 화합의 장(場)으로 승화한 마두희 줄다리기는 현재의 행정구역에 비추어 보더라도 울산 전역과 연계되어 있다. 동대산을 안고 있는 북구(北區), 말머리에 마성을 두고 있는 동구(東區), 마두희의 ‘도을줄’과 나룻배로 이어진 세곡의 터전이 되어왔던 남구(南區)와 울주군(蔚州郡), 그리고 마두희가 벌어지고 경상좌병마절도사와 울산도호부사가 머물렀던 중구 등 그야말로 마두희는 울산 전역을 끌어당겼던 줄다리기였다.

▲ 학성지 울산지도에 표기된 태화나루와 나룻배.

최근 수년 간 울산 중구는 잊혀져가는 마두희를 복원하기 위해 학술연구와 축제를 통한 여러 실험을 진행해 오고 있다. 이는 울산의 소중한 ‘전통 문화’를 발굴해 내는 첫걸음이다. 그리고 다른 지역에서 이어져 오고 있는 줄다리기들이 지역의 이름을 빌리는 것에 비해 ‘마두희’는 줄다리기의 목적을 반영한 이름이며, 줄의 이름도 ‘도을(徒乙)줄’로 고유성이 있기 때문에 그 격(格)이 한 차원 더 높다.

이토록 소중한 울산의 문화유산이자 ‘전통 문화’인 마두희는 올바르고 효과적인 계승을 통해 ‘문화적 전통’으로 가꾸어 나갈 필요가 있다. ‘전통 문화’는 과거로부터 이어져온 역사적 산물이다. 그리고 ‘문화적 전통’은 현재 우리들에게 주어진 여건에 맞게 ‘전통 문화’를 효과적으로 적용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울산 전역이 참여하는 ‘울산 통합의 마두희 줄다리기’ 행사 구현, 태화나루의 줄나룻배 재해석을 통한 관광자원화, 성곽도시 울산과 마두희 이미지의 연계, 마두희 의미의 교육 자료화, 마두희의 지속적 복원을 통한 세계문화유산 등재 등이 있을 수 있다.

성곽도시 울산은 단순히 성곽이 많기 때문만은 아니다. 다양한 유형의 성곽과 그 속에서 구현된 질퍽한 삶이 성곽도시 울산을 만들어왔다. 그리고 그 ‘전통 문화’는 우리들에게 ‘문화적 전통’으로 가꾸어 알찬 삶을 꾸려나가는데 보탬이 되도록 간절히 바라고 있다.

이창업 울산광역시 문화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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