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30년 살았으니
이제 여기가 고향이제!
하던 김씨도
고향 찾아 떠났다

집 팔고 논 팔고
광 속의 종자씨까지 모조리
훑어왔다던
이씨도
홀린 듯 훌훌 나섰다

다 떠나버려
졸지에 유령의 城이 된 도시
-중략-

회한이 번지는
회색 지붕 위엔
달마저
어느 놈이 챙겨 가버리고 없다.

▲ 박정옥 시인

우리에게 추석은 커다랗고 둥근달을 기다리는 마음입니다. 그런 연유로 달빛더미에 깔리고 싶은 사람들의 행렬은 해마다해마다 이어집니다. 달동네에 안착하고도 명절이면 두레밥상 위에 놓인 음식으로, 조상이 잠든 둥근 집으로, 하나가 되는 그 둥글음을 못잊어 귀성하는 노마드족.

다시는 오지 않을 거라고 모조리 훑어 온 세간을 꼭꼭 여미어 몇 십 년 토박이로 살았으나 저 달이 이 달은 아니어서 그런가. 텅 빈 도심은 유령이 사는 동네처럼 ‘회색 지붕 위엔 /달마저 /어느 놈이 챙겨 가버리고 없다.’는 진술에서 시의 묘미는 한껏 살아납니다. 고향을 떠나도 저마다 가슴속에 돋을새김으로 그려 넣은 달입니다. 힘들어도 넉넉한 모양의 동그란 보름달이 떠오르고 푸근한 달빛에 젖어들면 당신의 망가진 눈은 더는 외롭지 않을 것이므로. 토끼가 방아 찧던 그때의 사람들이 다시 달덩이 같은 토끼들을 만나러 도시로 가는 긴 행렬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입니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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