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베테랑 바베큐

▲ 사랑채의 별미 오리백숙. 도라지를 포함해 10여 가지가 넘는 온갖 재료로 다시물을 우려내고, 깨끗하게 장만한 오리를 넣어 한소끔 푹 끓여낸다. 육수의 깊은 맛 때문에 20년 가까이 단골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추석 명절이 시작됐다.
올해는 그 어느 해보다 연휴가 길다.
오가는 귀경귀성길의 불편함 때문에
명절마다 선뜻 문밖을
나서지못했던 이들도 올해는 주저없이
부모나 일가친척이 살고있는
고향으로 달려간다.
대도시의 팍팍한 일상에서 벗어나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는데는
넉넉한 시골인심만큼 좋은 것이 없다.
이번 주 맛집 이야기는
그리운 시골풍경,
고향집과 꼭 닮은 ‘사랑채’의
사연을 소개한다.

사랑채는 울산 도심에서 자동차로 5분 거리에 있다. 중구 성안동 고갯길을 넘은 뒤 약사동 방면 내리막길로 운전대를 꺾자마자 정겨운 ‘사랑채’ 간판이 바로 보인다. 이 곳의 주 메뉴는 전혀 특별하지 않다. 어느 곳에서나 흔히 맛 볼 수 있는 음식이다. 그런만큼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대중적인 음식이라고도 할 수 있다. 오리와 닭으로 백숙과 탕을 끓여내고, 매콤한 불고기를 만든다. 곁가지로 나오는 밑반찬도 늘 먹는 반찬 그대로다. 매일 아침 손질하는 싱싱한 가지무침, 한 입 배어물면 입안 가득 시원한 물이 고이는 오이무침, 달콤한 감자조림. 어느 것 하나 특별한 구석이 없는 듯 하나, 그래서 더 손이 가는 정겨운 음식으로 한 상이 차려진다.

큰형님-막냇동서 손잡고
오래된 시댁 기와집 고쳐 식당으로
오리·닭으로 만든 백숙·탕·불고기에
우리콩 직접 갈아만든 집두부도 인기
특별한 것 없는 메뉴지만
정겨운 고향의 맛에 단골손님 많아

오리백숙은 주문을 하면 1시간 정도는 넉넉히 기다려야 나온다. 살이 부드러우면서도 쫄깃하다. 걸쭉한 국물은 감칠맛이 그만이다. 처음에는 밋밋한 듯 느껴지나 입 속에 맴도는 구수한 맛이 수저질을 멈출 수 없게 만든다. 도라지를 포함해 10여 가지 한약재가 들어간 다시물과 오리에서 우러난 깊은 맛이 그 동안 쉽게 접할 수 없었던, 맛의 신세계를 경험케 한다. 식사를 마치고나면 몸 구석구석까지 따뜻함과 건강함이 전해져 보약을 먹은듯한 착각이 들 정도이다. 별미 중 별미 죽맛이 그리워 찾아오는 단골손님도 있다.

▲ 또다른 별미 사랑채 손두부. 봉화에서 공수한 100% 우리 콩으로 직접 만들어 고소한 맛과 부드러운 질감이 여느 손두부와 차별화를 이룬다.

이 집에는 백숙이나 불고기에 곁들여 꼭 시키게 되는 메뉴가 또 하나 있다. 봉화에서 공수한 우리 콩을 직접 갈아만든 집두부다. 백숙 단골이 많은 이 집의 특성상 늘 자주 오는 손님의 다양한 입맛을 맞춰 줄 새로운 메뉴가 필요했다. 주 메뉴인 오리나 닭백숙과 어울리면서 한 상에 올라도 전혀 부담스럽지않은 것이 무엇인지 오랫동안 고민했다. 그렇게 낙점된 손두부였지만 처음에는 원하는 맛이 만들어지지 않아 애를 먹었다. 전국의 소문난 손두부를 찾아가 맛을 비교하고, 전문가를 찾아가 도움말을 듣기도 했다. 그렇게 완성된 손두부가 차츰 인기를 끌면서 요즘은 이 손두부와 두부전골을 먹기위해 찾아오는 손님도 꽤 늘어났다.

사랑채가 영업을 시작한 지는 올해로 딱 17년째다. 개업하는 곳보다 폐업하는 곳이 더 많다는 요식업계 풍파가 이 곳만큼은 비켜간다. 숨은 듯 자리한 식당 위치는 사람들의 발길을 끌어들이는 묘한 힘이 있다. 하지만 이 집 성업의 진정한 비결은 다른 곳에 있다. 사랑채는 오래 된 기와집을 고쳐서 식당으로 개조한 곳이다. 그 옛날 200년 된 고가에는 원래 한 부모 아래 여섯 명의 형제자매가 사이좋게 살았다. 사랑채는 6남매 중 장남에게 시집 온 ‘큰 형님’ 송경자(62)씨와 막내에게 시집 온 ‘막냇동서’ 김경일(54)씨가 함께 손잡고 만들었다. 넉넉한 품성에다 손맛 좋기로 소문한 큰 형님은 사랑채를 지금의 맛집으로 일궈 낸 일등공신이다. 큰 살림의 경험치가 오늘의 사랑채를 있게 한 비결이다. 매사 맺고 끊음이 정확한 막냇동서는 온갖 자지렛일 투성이인 식당일을 도맡는다. 똑부러진 성품에다 말재주도 뛰어나다. 좋은 원자재를 선점하고, 골치아픈 일도 단번에 해결한다.

▲ 사랑채는 6남매 중 장남에게 시집 온 ‘큰 형님’ 송경자(62·왼쪽)씨와 막내에게 시집 온 ‘막냇동서’ 김경일(54)씨가 함께 운영한다.

동서지간에 함께 식당을 운영한다니 당연히 주변에서 무슨 깊은 사연이 있는 것은 아닌지 궁금해 하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비슷한 질문이 나올 때마다 두 사람은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늘 같은 답변을 내놓는다. “이유가 따로 있나. 한 집에 시집와서 다 같이 묵고 살라고 고민하다보이, 이래 됐지.”(큰 형님) “할 줄 아는 기술이 농사짓고 밥 하는 기술이니, 그 걸로 울 알라들, 공부 좀 시킬라고 시작한 거이 지금까지 이어진기다.”(막냇동서)

큰 형님은 내륙 양산이 고향이다. 막냇동서는 바닷가 기장이 친정이다. 생김새도 다르고 성격 또한 다르다. 두 사람은 약사골 한 집으로 시집 온 인연으로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어주며 고된 식당일을 웃는 낯으로 이어간다.

사랑채를 있게 한 원인제공자(?)들은 이제 모두 어엿한 20대 중반의 대학생이자 사회초년생으로 성장했다. 모두 외지에 있지만 여느 때처럼 이번 추석 연휴에 모두 집으로 돌아온다. 차례를 지내기도 하지만 일년에 단 며칠 만이라도 ‘큰 엄마’와 ‘작은 엄마’가 어렵사리 일군 식당일을 돕기 위해서다. 개점 초기에는 그저 엄마손이 그리운 코흘리개였지만, 4~5년 전부터는 명절전후 더 바빠지는 사랑채의 임시 직원으로 맹활약을 하고 있다. 사랑채는 추석 당일 딱 하루 문을 닫고, 그 뒷날은 곧 바로 문을 연다. 매해 명절마다 그랬다.

 

“명절에 집집마다 음식이 넘쳐날 것 같지만, 실상은 안 그렇더라. 온 가족이 손을 잡고 연휴에 문 여는 맛집찾아 외식하는 집이 더 많다. 올 가을 추석은 날이 더워 음식도 마이 몬 할 기다.”(큰 형님) “우리 영업을 한다고, 주방일 봐 주는 직원들까지 명절을 못 쉬게 할 수는 없잖아. 직원들 빈 자리는 당연히 우리 자식들이다. 일을 얼마나 잘 돕는지. 올 추석이 빨리 오면 좋겠다.”(막냇동서)

글=홍영진기자·사진=김동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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