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에 대항해 민족의 자존을 지키기 위해 민중이 떨쳐일어났던 기미년 만세운동. 3월1일 서울에서 처음 시작됐기 때문에 3·1운동이라고 통칭되는 만세운동이 울산에는 4월초에 일어났다.  언양에서 4월2일 만세운동이 시작됐고 4월4~5일 병영, 그리고 4월8일 남창에서 대대적인 만세시위가 일어나 울산에도 독립을 향한 결연한 의지가 널리 전파되었다.  이날 만세운동의 정신을 되살려 울산병영3·1사봉제회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오는 6일 중구 병영삼거리에서 만세운동 재현 행사를 마련한다. 오전 9시 의장대 시범 등의 식전행사를 시작으로 오전 10시 3·1사당에서 추모제를 지내고 10시40분 병영초등학교에서 기념식과 출정공연을 가진다. 만세운동 현장 재현은 오전 11시10분병영사거리에서 시위행진과 4열사 순국장면 재현, 진혼무 공연 등으로 진행되고 이어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에 대한 화형식도 가진다.  1919년 4월4일과 5일 두차례에 걸쳐 일어난 병영 만세운동은 일제에 항거할 목적으로 결성한 비밀청년회 간부 7명이 서울유학생으로부터 3·1운동소식을 접하면서 시작됐다.  일경의 눈을 피해 한달여 대형태극기와 "대한독립만세"라고 쓴 큰 깃발을 만드는 등 사전준비를 마친뒤 4월4일 병영청년회원 30여명은 일신학교(현 병영초등학교)운동장에서 학생들과 위장 축구경기를 펼치다 이문조가 차올린 축구공을 신호로 대대적인 만세운동을 폈다. 이때 거리의 주민들이 참여해 시위대는 100여명에 이르렀다. 출동한 외경에 의해 주동자 14명이 체포 구인되면서 이날 시위는 강제해산 됐다.  주동자중 체포를 모면한 이종근 이문조 등은 2차시위를 모의하고 다음날 다시 같은행로로 시위행진을 벌이고 병영주재소 앞에서는 체포된 동지의 석방을 요구하기도 했다. 군중은 800여명으로 불어났다. 일본 수비대는 늘어난 시위대를 감당못해 결국 총격을 가하고 그 자리에서 엄준 문성초 주사문 김응룡 등 4명이 순국하고 10여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해방이후 병영절도사영의 객사였던 건물을 개축해 영모각이라 이름짓고 4열사의 위패를 모셨으며 이후 다시 3·1사라 개칭했다. 그리고 병영3·1사봉제회를 재조직해매년 4월6일에 추모제를 지내오다 지난해부터는 추모제와 함께 선열들의 애국충정을 본받자는 취지로 만세운동 재현행사를 마련하고 있다.  언양의 독립만세운동은 천도교구가 중심이 됐다. 1910년 9월이후 울산군 상남면(현울주군 상북면)에 포교되기 시작한 천도교는 교세 확대와 함께 구국운동의 중심역할을 했다.  서울에서의 3·1만세운동을 목격한 울산교구장 김교경은 독립선언문과 국민회보 등에 게재된 기사를 울산으로 보냈다. 서울소식을 접한 이무종 이규인 이성영 강경찬최해선 이규경 등 6명은 지역에서 만세운동을 모의하고 거사일을 4월2일 언양장날로 잡는다.  언양장날 이들은 밤을 세워가며 만든 태극기를 상북 언양 두동 두서 중남 등지에서모여든 2천여명의 장꾼들에게 나줘주고 대한독립만세 시위를 벌였다. 놀라 출동한 일본수비대 헌병과 순사 수십명은 시위군중에 총격을 가해 17명의 부상자를 내고 주동자 26명을 검거하게 된다. 검거된 시위주동자들은 경찰의 혹독한 고문취조를 받았으며 부산지법 울산지청에 송치돼 보안법 위반죄로 최고 1년6월의 실형을 받았다.  광복이후 이들의 애국충정에 정부에서는 훈장을 수여했으며 이후 92년 조직한 언양지구 3·1독립운동 사적비 건립추진위는 같은해 10월3일 작천정에 사적비를 제막하고 매년 3·1절에 이곳에서 기념식을 올리고 있다.  남창 4·8운동은 고종황제의 인산에 참배하기 위해 상경했던 웅촌면 석천리의 유림이재락이 서울의 3·1운동을 목격하고 귀향한뒤 문중의 여러사람에게 설명하게 된다.그의 이야기를 들은 이수락 이희계 이쾌덕 이용락 등 네 사람은 지역에서의 만세운동을 도모하고 많은 군중이 모일 수 있는 남창장날 거사를 결의한다.  4월8일 오전 11시 한창 장이 어우러질 즈음 4인은 미리 만든 태극기 등을 장꾼들에게 나눠주며 독립만세를 외친다. 150여명의 장꾼이 함께 외친 만세소리는 급히 출동한 일경의 서슬퍼른 총검 앞에 무너지고 주동자 4인이 체포되기에 이른다.  이날 만세운동으로 남창 애국청년 10명이 체포돼 혹독한 고문취조를 받았으며 부산지법 울산지청에서 실형을 받고 옥고를 치른다. 이들은 출감뒤 3·8계를 조직해 거사일인 음력 3월8일에 매년 비밀모임을 가지며 조국광복을 기원했다.  온양면 유지들로 구성된 4·8정신선양을 위한 조직은 94년 광복절에 남창 3·1의거기념비를 건립해 매년 4월8일 기념행사를 마련하고 있다. 이애정기자 love@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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