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약점 없는 스타일...타수 못줄여도 서둘지 않아
LPGA 에비앙 챔피언십 등 메이저서 강한 면모 과시

▲ 전인지(22.하이트진로)가 18일(현지시간) 프랑스 에비앙 레뱅의 에비앙 리조트 골프클럽에서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시즌 마지막 메이저대회 에비앙챔피언십에서 4라운드 합계 21언더파 263타로 우승했다. 연합뉴스

에비앙 챔피언십에서 우승을 차지한 전인지(22·하이트진로)는 두드러진 강점이 잘 눈에 띄지 않는 선수다.

압도적인 장타력을 지닌 것도 아니고 아이언샷이나 퍼팅이 남달리 빼어나지도 않다.

지난해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를 휩쓸 때 전인지는 장타 부문 10위, 아이언샷 정확도 4위, 평균 퍼팅 10위였다. 그러고도 평균타수 1위에 올랐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에서도 마찬가지다. 장타 부문 66위, 아이언샷 정확도 18위에 평균 퍼팅은 4위다. 하지만 평균타수는 리디아 고(뉴질랜드)에 이어 두번째다.

전인지는 메이저대회 성적이 유난히 좋다.

한국에서도 3년 동안 메이저대회에서 3승을 올렸다. 통산 우승 5번 가운데 67%가 메이저대회에서 나왔다.

프로 첫 우승도 메이저대회인 한국여자오픈에서 거뒀다. 작년에는 하이트진로 챔피언십과 KB금융 스타 챔피언십 등 2차례 메이저대회 우승을 따냈다.

해외 원정 때는 메이저 편식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에비앙 챔피언십을 포함해 해외 투어에서 올린 4차례 우승을 모조리 메이저대회로 장식했다.

LPGA 투어 루키 시즌인 올해 메이저대회에서 우승 한번, 준우승 한번을 포함해 세번 ‘톱10’에 들었다.

전인지가 메이저대회에서 유독 빼어난 성적을 올리는 비결은 유별난 강점은 없지만 약점이 없는 경기 스타일이다.

전인지는 못하는 게 없다.

폭발적인 장타는 아니라도 파4홀에서 드라이버를 잡으면 두번째샷을 그린에 올리는데 지장이 없을만큼 멀리 보낸다. 파5홀에서 라이가 나쁘지만 않다면 투온을 노릴 수 있다. 어느 정도 장타력을 지녔다는 얘기다.

아이언샷이나 퍼팅 역시 정상급 선수로서 빠지지 않는 기량이다. 쇼트게임과 벙커샷도 실수가 많지 않다.

게다가 전인지는 모든 클럽을 골고루 잘 다룬다.

선수마다 드라이버, 롱아이언, 미들아이언, 웨지, 퍼터 가운데 잘 다루는 클럽이 따로 있다. 전인지는 특별히 잘 다루는 클럽도 마땅히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잘 다루지 못하는 클럽도 없다.

14개 클럽을 골고루 다 써야 하는 메이저대회에서 이런 능력은 요긴하다.

무엇보다 전인지는 영리한 경기를 펼친다.

메이저대회일수록 함정이 많다. 영웅적인 샷에 대한 보상보다는 잘못 친 샷에 징벌이 더 큰 코스 세팅이다.

전인지가 그린 적중률이 빼어나지 않으면서도 평균 스코어가 좋은 이유는 실수한 샷이라도 치명적인 장소는 피하기 때문이다. 실수할 때 실수해도 피해를 최소화하는 코스 매니지먼트는 전인지의 숨은 무기다.

에비앙 챔피언십 4라운드 18번홀(파4)에서 전인지는 지혜로운 코스 매니지먼트의 진수를 보였다.

티샷한 볼이 러프에 잠기자 끊어가는 결단을 내렸다. 페어웨이 우드로 그린을 직접 노릴 수도 있었지만 위험 부담이 컸다. 그린 앞에는 개울이 흐르고 있고 그린 양쪽이 모두 해저드인데다 뒷쪽은 벙커가 버티고 있어 자칫하면 더블보기 이상 스코어도 나올 수 있었다. 95야드를 남기고 친 세번째샷은 홀 3m 옆에 안착했다. 3m 퍼트는 프로 선수라도 넣을 수도, 못 넣을 수도 있다. 전인지는 그걸 넣었다. 사실 넣지 못했어도 우승에는 전혀 지장이 없었다.

그렇다고 전인지가 안전 위주로만 플레이하지 않는다.

지난 4월 ANA 인스퍼레이션 최종 라운드 18번홀(파5)에서 전인지는 페어웨이우드로 그린을 직접 노렸다. 그린을 살짝 넘어갔지만 세번째샷을 잘 쳐서 기어코 버디를 잡아낸 전인지는 “1타차 2위라서 승부를 걸어야 할 때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메이저대회에서 우승하려면 꼭 필요한 게 인내심이다.

메이저대회는 코스 세팅이 어렵기에 버디가 잘 나오지 않을 때가 많다. 아차하는 순간 타수를 잃는다.

버디가 나오지 않는 홀이 이어지면 초조해지기 마련이다. 조급해진 선수는 홀에 더 가깝게 붙이려고 무리한 샷을 시도하다 실수를 하게 된다.

타수를 잃으면 더 초조해진다. 까먹은 타수를 만회하려고 서두르게 된다.

선수들은 이게 지옥으로 가는 함정이란 걸 다 알지만 웬만한 선수는 참지 못한다.

전인지는 이럴 때 미소로 넘긴다. 참고 견디다 보면 기회가 온다는 걸 알기때문이다.

부정적인 생각을 지우려고 혼잣말을 할 때도 더러 있다.

3라운드 때 전인지는 티샷 실수로 9번홀(파5)에서 더블보기를 적어냈다.

그러나 잃어버린 2타를 머리 속에서 금세 지웠다.

전인지는 “차분하게 (결과를) 받아들이고 플레이하려고 노력한 게 이글이라는 선물로 돌아왔다”고 나중에 밝혔다.

최종 라운드 땐 악천후로 분위기가 어수선했다. 전인지는 8번홀 버디 이후 5개홀에서 버디 기회를 번번이 놓쳤고 14번홀(파4)에서 보기를 적어냈다. 타수차가 컸지만 전인지는 흔들리지 않았다. 15번홀(파5)이 쉽게 투온해서 버디를 잡아낼 수 있는 홀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15번홀에서 버디를 잡아내고선 활짝 웃었던 이유다.

전인지는 “메이저대회가 주는 압박감이 오히려 즐겁다”고 했다. 또 “메이저대회는 생각할 것도 많고 다양한 샷을 구사해야 하기에 경기가 흥미진진하다”고도 말한 바 있다.

전인지가 메이저에 강한 이유를 설명해주는 대목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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