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60년대 울산씨름대회 성황
울산 장사씨름대회 부활 시키자

▲ 이철수 울산사회교육연구소장

1950년대에서 60년대에 이르기까지 울산에서 가장 성황을 이루었던 민속행사중 하나는 추석 명절에 벌어지는 전국씨름대회였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던 울산의 씨름대회는 태화강 금모래 삼각주에서 벌어진다. 정확한 위치는 성남동과 우정동 삼거리 지하차도가 마주치는 태화강뚝 너머 금모래벌이 펼쳐지는 모래톱에서 열린다.

중추가절이 다가오면 노련한 울산체육회 임원과 인부들이 소달구지에 볏짚가마니를 수천장 싣고 앞강물을 힘겹게 건너와 삼각주 모래톱에 볏짚 가마니를 펼쳐 거대한 원형의 노천 경기장을 만든다. 황금빛 원형 경기장 한복판에는 또다시 보름달같은 둥근 씨름판이 만들어지고 뒷강쪽으로는 긴 본부석도 만들어진다. 물론 씨름판 주변으로는 각종 장터국밥집과 주막집도 형성된다. 아마도 60년대를 울산에서 살았던 남정네라면 이 가을에 태화강 모래톱에서 천하장사들이 운집, 한판 승부를 겨루는 씨름장에 한번쯤 가보지 않은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본래 울산사람들은 가까이에 높은 산과 바다를 접하고 있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강인한 격투기같은 남성적인 스포츠를 무척 좋아하는 기질을 가지고 있다. 문수산 중턱에는 지금도 옛 신라시대 화랑들이 무술을 연마했던 흔적이 남아 있다. 그중에 씨름과 축구가 타 도에 비해 월등히 우세했다. 특히 울산은 씨름선수들이 전국을 재패하고 또한 뛰어난 힘과 기술을 갖춘 역사들과 거인들을 많이 길러낸 고장이기도 하다.

당시 장사들의 이름을 열거해 보면 일본 레슬링의 전설 역도산과 둘도없는 친구사이로 씨름으로 우정을 맺었다는 울산 출신의 전설적인 역사 김짝지씨를 위시해 병영의 우성열 내황의 김용준 장군, 남화리 출신의 농고장군 김영태, 성남동의 최흥락, 이종진, 황치근, 정문수, 박두진장사, 또 해마다 원정을 와 씨름의 묘기를 보여주었던 경주의 배서감, 대구의 고우주장군도 잊을 수가 없다.

70년대 초반까지 태화강 모래톱에서 벌어진 전통있는 전국장사씨름대회에서 자웅을 겨루던 선수들로,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서울에서 해마다 전국씨름대회가 열리고 나면 곧이어 추석에 울산의 전국씨름대회가 태화강에서 열렸다. 특히 근 10년간 전국씨름을 제패했던 천하장사 김학룡 장군을 꺾고, 우리 울산사람들에게 충만한 힘과 용기 그리고 기쁨을 안겨준 내황장군 김용준 거인을 잊을 수가 없다. 그는 병영초등학교를 졸업한 내왕 출신의 거인이다.

그가 성장하면서 남긴 일화 가운데 한가지 재미있었던 집안 소사를 소개하면 하루하루 성장하는 속도가 너무나 빠르고 놀라워 어떤 시기에는 시골방이 너무 비좁아 그가 도저히 발을 뻗고 잠을 잘 수가 없어서 부친은 하는 수 없이 안방과 건너방 벽을 헐고 그가 바로 누울 수 있게끔 집구조를 고쳤다고 한다.

씨름은 실전을 직접 치뤄보거나 그도 아니면 모래판 옆에 둘러 앉아서 선수보다 더 용을 쓰고 고함과 기합을 지르지 않고는 그 멋과 신명을 알 수 없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요즘 TV를 통한 씨름 중계를 보면 도대체 씨름대회인지 아니면 CF용 상금 타먹기 경쟁인지 도무지 분간을 못할 정도로 재미없다는 느낌을 받는다.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씨름의 멋과 진수마저 날려버릴 듯 해 얼른 채널을 돌려 버린다. 씨름협회는 왜 오늘날 국민들에게서 씨름의 인기가 시들해져 가는지 그 이유를 아는지 모르는지 참으로 답답하다.

좌우간 우리의 전통있는 씨름대회는 그 옛날 김학룡 역사와 울산출신 김용준 거인 간의 모래판이 땀으로 뒤범벅 되도록 10여분간에 걸친 3판 양승의 밀고 당기(밀어내기)는 세기의 대결을 끝으로 태화강의 오염과 함께 점차 시들해 가다가 이젠 아예 경기장의 멋진 모래톱 삼각주와 함께 울산씨름도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울산씨름을 다시 부활시키자. 이젠 태화루도 복원했으니 전통있는 울산의 전국장사 씨름대회를 그때 그 시절처럼 전 군민 아니, 110만 광역시민이 함께 즐기고 참여하는 멋진 태화강 축제로 부활시켰으면 한다.

이철수 울산사회교육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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