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쌀’은 ‘살’이 아니다

 

‘마당 한 귀퉁이/ 개밥 풍성히 주었더니/ 먹을 만큼 먹었는지/ 남은 밥 맨땅에 엎어놓고/ 참새 서너 마리 오다가다/ 시장기 때우게 하는구나/ 일개미 떼 불러 모아/ 식량 준비 시키는구나/ 밥이여 저 눈물겨운/ 우주의 생명이여.’ 허형만 시인의 ‘밥’이라는 시다.

눈물겹고 우주의 생명이었던 밥이 요즘 푸대접을 받고 있다. 학교 급식에서도 같은 현상이다. 학생들은 쌀로 만든 밥보다 밀가루로 만든 면과 빵, 쿠키 등을 더 선호하는 경향을 보인다.

여름휴가 기간 중에 울산에는 없는 모 백화점에 갈 일이 있었다. 백화점은 아이들과 부모들로 미어터질 듯했다. 식사를 하려고 보니 밥과 반찬을 곁들인 것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모두들 강렬한 외식 맛에 젓가락질이 바쁜 모습을 보니 전통 의식주 중에 애오라지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전통 식문화마저 머지않아 사라지지 않을까 우려됐다.

밀보다 비만·당뇨병 예방에 효과적
영양소 면에서도 질적으로 우수
서구권에서도 다이어트 음식으로 주목

한국인은 ‘밥심으로 산다’는 말이 무색해질 정도로 쌀 소비량이 점차 감소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한국인의 1인당 하루 쌀 소비량은 2012년 191.3g, 2013년 184.0g, 2014년 178.2g, 2015년 172.4g으로 꾸준히 줄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밥 한 공기에 들어가는 쌀이 100~120g인 점을 고려하면 하루에 밥 두 공기를 채 먹지 않는 셈이다.

참 이상한 일이다. 쌀 소비량은 감소하고 있고 국민건강통계에 따르면 비만 유병률은 증가하고 있다. 그런데 살을 빼려면 밥을 적게 먹으라고 하니 말이다. 이것은 쌀에 대한 오해 때문이다. 쌀의 많은 영양소가 현미와 쌀눈에 있지만 도정과정에서 떨어져 나가면서 영양가가 적어진다는 것. 맞는 말이다.

하지만 밥만 먹는 사람은 거의 없다. 반찬을 곁들이므로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 현미는 백미에 비해 영양소가 많으나 소화흡수율이 떨어진다. 현미에는 파이테이트(phytate)라는 섬유성 성분이 체내 칼슘을 몸 밖으로 끌고 나간다. 따라서 소화에 자신이 있는 건강한 상태라면 현미를, 나이가 많거나 골다공증이 염려되면 백미를 선택하는 것이 유리하다.

또 다른 오해는 당뇨병과 비만의 주범이라는 것. 쌀 전분은 밀 전분에 비해 소화흡수가 느리다. 이것이 급격한 혈당 상승을 방지하므로 비만과 당뇨병에 효과적이다.

요즘 빵을 주식으로 하는 서구권에서 다이어트 음식으로 쌀을 주목하고 있다. 미국 듀크(Duke)대 의대에서 70년간 쌀 다이어트 프로그램을 운영한 결과 4주 동안 여성은 평균 8.6㎏, 남성은 13.6㎏ 감량에 각각 성공했다. 놀라운 사실은 1년 후 전체 대상자의 68%가 요요현상을 경험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쌀’은 ‘살’이 아니다. 당뇨병과 비만은 서구식 식습관과 과다한 단순 당(설탕, 액상과당 등), 육류, 지방 섭취가 주요 원인이다.

쌀은 밀보다 영양소도 질적으로 우수하다. 쌀에는 7%, 밀에는 10% 정도의 단백질이 함유돼 있다. 그러나 체내 이용률을 표시하는 기준인 단백가(蛋白價, Protein score)로 보면 밀가루는 42지만 쌀은 70이다. 단백가는 표준단백질에 대한 백분율이며 이것이 클수록 영양가가 높다. 쌀이 밀가루보다 더 우수하다고 말하는 근거다.

▲ 박미애 울산공업고등학교 영양교사

윤기 좌르르 흐르는 쌀밥은 너도 나도 아무나 손쉽게 먹는 시대가 됐다. 우리 민족의 오랜 역사 속에서 굶주림이 숙명이었던 때가 있었다. 그래서 속담 속 밥 이야기는 밥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하다. 수많은 속담의 숫자가 이를 뒷받침해준다.

‘밥줄 떨어진다’ ‘밥이 보약이다’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때린다’ ‘밥맛 떨어진다’ ‘가마가 검기로 밥도 검을까’ ‘제 밥그릇은 제가 지고 다닌다’ ‘제 밥 먹고 컸는데 남의 말 들을 리가 없다’… 그리고 속담은 아니지만 현대에서 ‘제 밥그릇 챙기기’ ‘밥그릇 싸움’은 그야말로 밥 먹듯 듣고 있다. 밥은 이 얼마나 생활밀착형인가.

밥은 물외에 인공적으로 첨가되는 것이 없다. 건강하다. 그래서 모든 반찬을 부둥켜안을 수 있다. 해도 비도 바람도 달도 별도 부둥켜안고 계절 속에 익어간다. 그래서 고개도 숙일 줄 안다. 수천 년 동안 ‘밥’ 중심의 식생활을 해온 조상의 지혜가 되새겨지는 대목이다. 오늘도 ‘밥값’을 다하겠다는 열망으로 하루를 보낸다.

박미애 울산공업고등학교 영양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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