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백두대간 제25구간(우두령~석교산~삼도봉~부항령)
거리 19.2㎞, 시간 7시간50분 - 산행일자 : 2016년 5월22일

▲ 암봉으로 솟구친 해발 1172m 무명 봉에 서니 일망무제로 산을 열어 보이는 풍광은 여느 산에도 뒤지지 않을 듯하다.

제25구간 산행 들머리 우두령에 도착하니 비가 두런거린다. 남부 일부에 비 예보는 있었지만 이 지역에는 비 소식이 없었는데 뜻밖이다. 다행히 대원들이 기초적인 장비를 잘 준비해 와서 우두령 생태터널 안에서 비를 피해 분주하게 우중산행 채비를 한다. 봄이 지나고 초하로 접어들었지만 아직 산에서 온전히 비를 맞으며 산행을 하기에는 좀 이른 계절이다. 비옷과 스패츠(spats)로 채비를 마치고 우두령을 상징하는 소 형상 앞에서 단체촬영을 한 뒤, 내리는 비와 함께 진한 신록의 향이 전해오는 산길로 접어든다.

구름이 하늘을 가린 가운데 듬성듬성 옅은 하늘이 투영된다. 비가 내리는데도 습도가 높지 않다는 느낌이더니 이번 구간의 첫 산, 석교산 오름 전에 비는 멈춰주었다. 비온 뒤, 의례히 나타나는 산 아래 골짝 안개가 깔리지 않고 옅은 박무가 먼 산들을 은근히 가리고 있다. 석교산 오름 전 폐 헬기장에서 갑갑하게 걸쳤던 비옷을 벗고 산정을 향해 약 20분정도 오르니 우두령에서 약 3.6㎞지점, 정상 표석이 있는 석교산이다. 산정에 서니 가야할 삼도봉으로 이어지는 대간능선이 구불거리고 김천지역의 연봉들이 줄지어 늘어선 모습이 시원스레 열렸다. 오늘 열어가야 할 오름 중, 가장 경사가 급하고 높은 오름이지만 산행 초반이고 아직 체력이 왕성할 때 산정에 오른 대원들은 밝은 표정으로 산이 주는 느낌을 깊이 흡입하고 있다.

행정구역은 전북 무주군 무풍면이지만
덕유산에 둘러싸여 부항령을 넘나들며
경북 김천을 생활근거로 삼았던 사람들
삼도봉 터널 개통과 함께 추억 속으로

석교산 정상 표석에는 산의 높이가 해발 1207m로 새겨져 있다. 그러나 산행을 끝내고 GPS에 기록된 실 트랙 고도표를 열어보니 1200m에 못 미치는 것으로 나온다. 국립지리원의 공인된 지도에는 정상석이 있는 현 위치가 가래골 뒷산으로 표기돼 있고 높이는 1195m로 되어 있다. 또한 석교산 위치도 정상석이 있는 현재 장소가 아니라 삼도봉 방향으로 안부에 내려섰다가 첫 번째로 올라서게 되는 암봉, 1172m 무명 봉을 석교산(화주봉)이라고 표기해 놓았다. 정상 표석에 1207m라고 잘못 새겨 넣은 산의 높이와 지도에 표기된 산의 위치가 자못 혼란스럽다. 관계당국에서 바로잡아 주었으면 좋겠다.

▲ 삼도봉 가는 길.

석교산을 떠나 약 1.3㎞ 이동한 뒤, 암봉으로 솟구친 해발 1172m 무명 봉에 서니 더한 산의 그림을 열어준다. 산정에 들기 직전 로프를 잡고 올라야 할 정도로 경사가 급하고 산정은 협소하지만 일망무제로 산을 열어 보이는 풍광은 여느 산에도 뒤지지 않을 듯하다. 둘러봐지는 그림이 한없이 넉넉하고 마냥 평화로운 곳이다. 기대하지 않았던 뜻밖의 정취에 산꾼의 마음이 벅차오른다.

물한리 계곡으로 유명한 충북 영동군 상촌면과 경북 김천 부항면을 이어주던 옛길 밀목령을 지나고 삼도봉 아래 삼막골재까지 이어지는 산길은 대체로 경사가 완만하다. 부드러운 능선 길은 계절이 주는 풍광과 어우러져 종주산행의 치열함을 덜어준다.

 

이윽고 삼도봉(三道峰). 백두대간에서 삼도봉으로 불리는 곳은 세 곳이다. 백두대간에서 서쪽으로 분기해서 충북과 전북을 가른 뒤 민주지산, 각호산을 아우르고 도마령에 내려섰다가 천만산, 백마산을 지나 영동 심천 초강리 금강에서 맥을 다하는 47㎞의 산줄기 각호지맥을 낀, 오늘 오른 삼도봉과 곧 거쳐 가게 될 대덕산 삼도봉, 그리고 지리산 삼도봉 등이다. 대덕산 삼도봉은 경북과 경남, 전북의 경계이고 지리산 삼도봉은 전북과 전남, 경남의 경계이다. 그러나 오늘 든 삼도봉은 경북, 충북, 전북을 가르는 봉우리로 어쩌면 진정한 삼도봉이 아닐까 생각되는 곳이다. 매년 10월10일이면 삼도 주민들이 이곳에서 만남의 날 행사를 가진다고 하니 그 의의가 참으로 큰 봉우리이기도 하다.

오늘 아침 비가 내리는 가운데 산행을 시작하면서 우중 안전산행을 돌아보게 되었지만 이 지역을 산행할 때는 특별히 안전과 관련된 생각을 다시금 다지게 되는 곳이다. 1998년 4월1일, 산악행군을 하던 특전사 장병들이 이곳 삼도봉에서 갈래를 친 민주지산에서 조난을 당해 7명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4월이면 산 아래에서부터 봄이 시작되어 산정으로 오르는 시점이다.

그러나 군인들이 민주지산을 향해 행군이 시작될 즈음에는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민주지산 7부능선에 올라설 무렵 비가 폭설로 변하고 거친 바람이 불어 닥쳤다. 비에 온 몸이 젖은 상태에서 폭설과 바람이 몰아치니 강인한 체력으로 다져진 젊은 군인이라 하더라도 악천후 속에서 저체온증이라는 급박한 상황을 이겨내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이후 민주지산 정상부에는 다른 산에서는 볼 수 없는 무인대피소가 생겨났고 여타 지역의 산보다 이정표 설치가 잘 되어 있다. 당시 젊은 군인들의 산악사고가 엄청난 충격으로 우리 사회에 파장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난해 겨울, 12월16일에 있었던 삼도봉에서 이어지는 덕유산 지봉의 눈 속 27명의 어처구니없었던 조난사고다. 신고 후 3시간여 만에 구조대가 접근을 하고 8시간의 사투 끝에 사고 수습을 했지만 1명 사망, 2명 부상이라는 아픈 대가를 치러야 했다. 자칫 대형 사고가 나지 않은 것을 다행이라 여길 정도의 사고였다고 한다.

사고를 수습했던 구조대 전언에 따르면 몇몇 사람은 변변한 방한복도 없이 겨울 산행을 감행했고 27명의 조난자 중 란탄을 가진 사람이 아무도 없었을 정도로 동절기 산행에 나선 사람들이라고 하기에는 믿기지 않는 채비였다고 한다. 더욱이 실소를 금치 못했던 후일담은 오전 11시30분께 신풍령에서 산행을 시작해 갈미봉, 대봉, 지봉을 거치고 횡경재까지 간 뒤 송계사로 하산을 계획했던 사람들이 설경에 취해 시간개념 없이 산행을 즐기다 하산시간을 놓쳤다고 하니 와전이 아니었다면 무모해도 너무 무모했던 것이다.

사람이 산에서 얻을 수 있는 값어치는 잴 수 없이 무량하고 도전정신과 용기는 자연을 대하는 사람의 덕목이라고 한다. 그러나 자연에 대한 경외심을 가지지 않고서는 절대 누릴 수 없는 것이 자연의 가치라고 생각한다. 산에서의 대책 없는 무지와 만용은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길 뿐이다. 삼도봉에서 안전과 관련되어 오래 간직해야 할 단상이었다.

▲ 김두일 대한백리산악회 고문

삼도봉을 떠나 부항령을 향해 길을 이으면 해발 1000m 이상을 유지하는 능선이 약 4㎞에 걸쳐 장대하게 펼쳐진다. 해발고도에 비해 크게 부침이 없고 능선이 각박하지 않아 주변 식생도 건강해 보인다. 나무가 들어선 능선은 무성한 나뭇잎으로 빼곡히 하늘을 가려 군데군데 빛내림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 같은 현상이 연출되고 하늘이 열린 초원길을 대원들이 걸을 때면 말 그대로 ‘평화’의 한 장면과 같다. 자연이 주는 건강한 에너지를 원 없이 받으며 걷는다.

오후 2시30분을 전후해서 마지막 정점, 백수리산(해발 1304m) 정상에 전 대원이 모였다. 산이 주는 느낌만큼이나 모두 건강미 넘쳐나고 환하게 웃는 모습이다. 산길 40여리를 거칠게 헤치고 나온 사람들이 아니라 자연휴양림 삼림욕장에 산책 나온 사람들 같은 모습이다. 백수리 산정에서 넉넉한 휴식을 취한 뒤 날머리 부항령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백수리산에서 부항령까지는 3㎞가 채 안 되는 거리…. 산행 종료 시점도 이를 것 같고 남은 거리도 부담이 되지 않으니 길을 이어가는 대원들의 발걸음도 여유가 묻어난다.

오후 4시께 부항령(釜項嶺)에 내려서면서 산행이 종료되었다. 전북 무주군 무풍면과 경북 김천시 부항면을 이어주던 이 고갯길은 이제 백두대간을 종주하는 사람들만 넘나드는 옛길이 되었고 잡초만 무성하다. 백두대간과 각호지맥, 덕유산이 둥글게 에워싸고 있어 행정구역은 전북 무주에 속하지만 주민생활권은 경북 김천을 근거로 했던 무풍 사람들이 주로 넘나들던 부항령이었다. 부항령 아래 삼도봉 터널이 1999년 개통되면서 부항령은 이제 잊혀져가는 고개가 되어가고 있다.

참! 좋은 계절 오월…. 꽃이 아프게 피어 불어가는 바람에 소식을 전한다. 산새가 애달픈 가락으로 가슴에 멍울이 들도록 연가를 부르고 풀잎 끝에 성근 이슬이 영롱하게 왔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가는 계절이 되었다. 산길을 가는 산꾼들은 그 사연 다 몰라도 산기슭 꽃이 전하는 말, 울림이 큰 산새의 연가, 영롱한 이슬의 자취를 가슴에 담아두려 한다. 우리도 운명처럼 저 자연과 닮았으니까….

김두일 대한백리산악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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