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실명제·정치자금법 시행에서 보듯
기득세력의 저항 클수록 그 효과도 커
김영란법, 현정부의 개혁으로 연동되길

▲ 김두수 정치경제팀 서울본부장

23년전인 1993년 8월12일 오후 8시. 김영삼(YS) 대통령은 전격적으로 금융실명제 실시를 발표했다. 모든 금융거래를 실제 명의로 하도록 해 금융거래와 부정부패·부조리를 연결하는 고리를 차단, 깨끗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구현하자는 의미가 담겼다. 하지만 그동안 가명, 무기명 금융거래 등 잘못된 금융관행에 젖어 이른바 지하경제에 익숙해진 재계와 ‘돈을 만지는 사람들’은 큰 충격에 휩싸였다.

대통령의 측근 조차도 모르게 진행, 전격적으로 발표된 실명제 실시후 감춰진 돈의 실체가 곳곳에서 드러났다. 정국을 강타하는 메가톤급 사건도 터졌다. 전직 대통령의 이른바 4000억원 비자금 의혹은 결국 노태우·전두환 두 전직 대통령의 감옥행으로까지 이어졌다. YS식의 금융실명제는 벼랑끝 정치 9단의 승부사 기질이라는 평가도 나왔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난뒤인 1998년 말 IMF(국제통회기금), 즉 외환금융 위기가 발생했다. YS정권 말기에서 DJ(김대중 대통령)정권으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전경련을 비롯한 경제계는 외환위기의 원인이 금융실명제에 있다는 주장을 전방위로 펼쳤지만 IMF 등의 반대로 무위로 끝났다.

YS의 금융실명제와 외환위기의 함수관계는 단적으로 말할순 없다. 하지만 실명제실시 이후 YS정부의 미시적·거지석정책 로드맵을 통한 다각적이고도 심도있는 진단은 부족했다는 지적이다.

2003년 출범한 노무현 정부는 그해 4월 국회 국정연설에서 선거법과 정치자금법 개정 등을 거론하면서 정부와 정치권에 정당·정치개혁을 강하게 요구했다. 4년이 흐른뒤인 2008년 국회는 우여곡절 끝에 정치자금법을 개정했다. 정치권의 수입과 지출내역을 투명하게 공개하게 된 것. 특히 이 법안은 여의도 정치권, 그 가운데서도 기득권의 극렬 반대기류도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정치권에 대한 과감한 개혁을 요구하는 민심의 파도에 휩쓸려 결국 법에 의하지 않고선 정치자금을 기부하거나 받을 수 없게 된 법안이 통과됐다. 총선과 대선때마다 ‘차떼기’의 오명도 이때부터 사라졌다.

이처럼 YS식 금융실명제와 노무현식 정치자금법 마련의 이면엔 엄청난 논란과 함께 기득권의 반발, 그리고 일정부분 후유증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대체적 기류는 성공한 법과 제도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기득권의 저항이 크면 클수록 국민적 관심과 효과적 측면도 상대적으로 크기 때문일까. 그렇다면 2013 2월 출범한 박근혜 정부의 개혁의지는 어떠한가? 박 대통령은 취임사에서부터 ‘법질서’를 분명히 한데 이어 지난해 8월6일 국정운영 대국민담화에선 더욱 선명한 개혁의 그림을 제시했다. “앞으로 3~4년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결정할 분수령이 될 것”이라며 공공·노동·교육·금융의 4대 구조개혁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거듭 천명했다.

특히 그동안 연금개혁 등 일정부분 성과를 거둔 박근혜 정부 ‘개혁’의 대미는 오는 28일부터 시행되는 이른바 ‘김영란법’이다. 그동안 국회에서 통과되기까지 기득권의 저항과 반대로 우여곡절도 많았다. 법의 핵심은 ‘부정청탁금지’. 적용대상 기관은 언론사를 비롯해 무려 4만919개이다. 중요한 것은 법을 제대로 정착시키기 위한 의지다. ‘악법도 법’이라는 소극적 인식보다는 선진국의 길로 한걸음 더 나아간다는 확고한 실천의지가 중요한 것이다. 김영란법에 대한 순기능과 함께 제대로된 정착은 법시행 1년이 되는 내년 9월께 박근혜 정부의 개혁성공 함수관계로 연동될 수도 있을 것이다.

김두수 정치경제팀 서울본부장 dusoo@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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