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효문동 산성(孝門洞 山城) - 신라성인가? 왜성인가?(하)

▲ 효문동 산성의 왜성 추정 구간.

효문동 산성의 성벽은 대부분 무너져 있기 때문에 그 자체만으로 조성시기를 가늠하기는 어렵지만, 직경 30㎝ 내외의 깬 돌이 무더기로 무너져 내린 모습은 다른 신라성의 무너진 모습과 매우 유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효문동 산성 주변에 ‘율동고분군’, ‘산성고분군’, ‘효문동고분군’ 등 대규모의 고분군이 위치한다는 점도 주목된다. 일반적으로 해안이나 접경지역에 위치한 신라성은 그 주변에 대규모 고분군이 위치하고 있다.

신라성과 고분군의 관계를 다룬 여러 연구자들은 고분군이 인접해 있는 성곽은 행정치소였을 가능성이 높고, A.D. 6세기 신라의 한강유역 진출 이후부터 고분이 축조되기 시작하여 신라 통일기 이후 그 사례는 더욱 증가한다고 하였다.

산성 조성시기 통일신라로 추정
북서쪽 일부 왜성 축조법 흔적은
임진년에 왜군들이 점거한 증거
시대 넘나들며 적·아군 모두 사용
역사성 재정립·콘텐츠 개발 시급

이러한 상황을 놓고 보면, 효문동 산성은 신라성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하지만, 숲을 헤치고 산성을 따라 성벽의 면면을 살펴보면, 성의 북쪽 가장자리에서 기존의 신라성에서는 보기 어려운 묘한 장면을 만날 수 있다. 높이 7m 내외의 경사면으로 구성된 성벽이 남동쪽으로 곧게 60m 이상 이어지며, 그 끝에서 남쪽으로 거의 직각에 가깝게 꺾어진다. 그리고 성벽으로 둘러싸인 윗면은 3개 정도의 단(壇)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는 왜성(倭城)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수법들이다. 이러한 축조법이 차지하는 면적은 효문동 산성의 북서쪽 일부에 불과하다고 하더라도 고문헌과 지금까지의 여러 연구에서 효문동과 양정동 일원에 왜성이 축조되었다고 알려진 바가 없기 때문에 이러한 모습은 매우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효문동과 양정동 일원에 전하는 몇몇 지명(地名)을 분석하고, 새로운 고문헌 기록들을 찾아보면, 그러한 의문은 약간이나마 풀릴지도 모른다. 율동마을과 양정마을 사이의 들판(현재 자동차공장부지 포함된 곳)을 왜시들(倭尸野)이라 불렀는데, 임진왜란 때 죽은 왜군들이 묻혔다는 것에서 유래하였다.

그리고 새로운 자료로 조선후기의 문인(文人)인 성대중(成大中, 1732~1809)이 당대의 풍속과 기층민의 삶, 지역에 전하는 이야기를 엮은 <청성잡기(靑城雜記)>에서 왜군(倭軍)과 관련된 ‘백련암(白蓮巖)의 전설’을 찾아 볼 수 있다. 간단히 소개하면, ‘울산(蔚山)의 백련암은 옛 전쟁터인데, 돌들이 어지러이 치솟아 있어 여기에 잡귀들이 산다고 전해 온다. 어떤 사람이 귀신이 무섭지 않다면서 돌에 불을 놓았는데, 귀신들이 그 사람의 집에 돌을 마구 던져 낭패를 보았다. 불을 놓은 사람이 사죄하는 마음을 담은 글을 돌에 써서 밖으로 던지자, 귀신도 돌에 글을 써서 다시 방으로 던졌는데, 그 내용이 ‘임진사월대군하륙(壬辰四月大軍下陸, 1592년 4월에 대규모 군대가 상륙했다)’ 라고 한 것으로 볼 때, 왜병 귀신이었던 것 같다’는 내용이다.

백련암이 위치하였던 효문동 일원은 현재 공단개발로 원래의 지형을 찾아보기 어렵지만, <청성잡기>에 언급된 ‘백련암 옛 전쟁터에 돌들이 어지러이 치솟아 있는 곳’은 효문동 산성밖에 없다. 그리고 임진년에 상륙한 대규모 군대는 왜군밖에 없기 때문에 위의 내용은 효문동 산성에 왜군들이 주둔하였다는 것을 우회적으로 알려준다. 이와 더불어 임진왜란 때 의병으로 참여한 이경연(李景淵)의 <제월당유사(霽月堂遺事)>에서 ‘치진(雉津)의 적(賊)과 싸워 이겼다’는 기록도 찾아 볼 수 있다. 치진은 효문동 산성 남서쪽 바로 아래의 해변을 일컫는데, 현재의 자동차공장 운전시험장 일원이다. 즉 고문헌의 기록을 종합해 보면, 임진왜란 때 효문동 산성 또는 그 주변에 왜군이 주둔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 신라시대 태화강과 동천강의 합수부 일원.

이러한 점들과 경남 진해에 위치한 웅천왜성(熊川倭城)이 우리나라의 웅포성(熊浦城)을, 기장의 두모포왜성이 두모포진성을 개조해 사용한 것을 보면, 신라성인 효문동 산성을 왜군이 점거하여 그들의 왜성으로 일부 개조했을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할 수 있다.

동해를 맞대고 고대부터 울산을 지켜왔던 북구지역에는 그와 관련된 기박산성(신흥산성)과 유포석보, 어물동 마애여래좌상, 효문동 산성 등이 위치해 있다.

특히, 효문동 산성은 시대를 넘나들며 때로는 방어기지로, 또 한편으로 적들의 소굴로 이용되며 다양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것은 향후 역사성의 정립과 풍성한 콘텐츠 개발을 통해 적극 활용하기 위해서 시급한 조사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창업 울산광역시 문화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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