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지역문화예술계도 전전긍긍

구체적인 가이드라인 없어 ‘혼선’

각종 문화행사 축소·취소 잇따라

▲ 예술인단체, 언론사, 기획사, 복합문화시설, 기업체, 법조계는 김영란법의 취지를 제대로 살리기 위해서는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좀더 보강돼야 한다는 의견이다.
#지역언론사 문화부에 근무하는 A모씨는 음악과 연극 등 주로 공연예술 분야를 담당해 왔다. A씨는 앞으로 각종 공연행사를 본 관람객의 소감이나 평가를 취재한 리뷰 기사를 자제할 생각이다. 김영란법이 시행됨에 따라 그 동안 기획사나 공연기관이 제공하던 ‘취재용’ 관람권을 더이상 제공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법 적용을 받지않는 티켓가의 마지노선은 5만원이다. 하지만 독자들의 관심도가 높은 최신 뮤지컬이나 대형 클래식음악회는 10만원을 호가하는 경우가 적지않다. ‘법대로’라면 A씨는 기사를 쓸 때마다 수만원씩 관람료를 내고 리뷰를 쓸 수 밖에 없게 됐다.

#김영란법 시행 이후 곧바로 개막하는 지역문화예술축제 사무국도 골머리를 앓고 있다. 비슷한 시기에 개막하는 타 지역 축제들이 하나둘씩 초대권을 없애거나 리셉션 등의 부대행사를 축소하면서 이 관계자는 사무국 직원들과 밤샘 토론까지 하며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행사 사업비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공직사회 관계자를 초청하던 일이나, 참가자의 편의를 위해 제공해 온 각종 물품 가격들도 다시 점검하고 있다. 이 역시 전면 재검토할 수밖에 없게 됐다.

‘김영란법’ 후폭풍에 문화예술계 또한 노심초사하고 있다. 김영란법은 각종 문화행사장에서 주어지는 모든 혜택을 합산해 5만원을 초과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 동안 아무렇지않게 각종 행사장을 출입해 온 언론사 기자들과 평론가들, 행사 관련 공직기관 관계자들마저도 이제는 자비로 티켓을 구매해 입장해야 할 처지에 놓인 것이다.

이와함께 울산지역 한 공연기획사 대표는 ‘직원들의 문화회식’ ‘문화접대 형식의 마케팅’ 명목으로 티켓을 대량 구매하던 기업체 활동까지 위축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이 관계자는 “업계에서는 대형 뮤지컬의 전체 객석 중 기업(단체) 구매량을 20% 내외로 추정하고 있다”며 “하지만 이미 수개월 전부터 기업체 구매량이 줄어든 게 사실이며, 이대로 가다간 연말로 예정된 각종 공연행사에도 영향을 미칠 것 같다”고 말했다.

공연기획사와 공동으로 공연사업을 추진해 온 지역 공공복합문화기관 관계자 역시 “법 시행 초창기의 분위기 탓인지 관련법의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이 아직 명시되지 않았다”며 “객석점유율로 성패를 가늠하는 문화행사의 특성상 홍보활동에 적극 나서야하나, 지금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어정쩡한 상태로 업무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부울경지역 문화예술회관연합회의 실무를 담당해 온 이 관계자는 “연합회 차원의 전국단위 간담회가 10월 초 열린다”며 “일체의 초대권없이 당분간 사업을 진행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각종 문화행사에 영향력이 있는 이들의 관심이 줄다보니 장기적으로 행사의 규모나 위상이 축소될 수밖에 없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모 비영리민간단체의 경우 올 하반기 창립10주년 기념으로 그 동안 도움을 준 기관 및 후원단체를 위해 지역예술인과 함께하는 문화행사를 기획했으나 최소한의 후원마저 어렵게되자 이를 축소하거나 아예 취소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해당기관 관계자는 “건전하고 검소한 행사가 될 수도 있지만 예술계 전반이 침체되는 수순을 밟을 수 있어 이에 대한 고민도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 법조계 인사는 “공직자들이 김영란법을 이유로 정당한 민원 제기에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기업이 김영란법을 빙자해 문화예술에 대한 지원을 회피하는 것, 언론인의 적극적인 취재활동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는 점, 그로 인해 예술 전반에 대한 관심도가 낮아지는 것이 부작용으로 나타날 수 있다”며 “이 법이 문화예술에 대한 무관심과 회피의 빌미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한 노력이 병행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홍영진기자 thinpizza@ksilbo.co.kr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