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법) 시행 첫날인 28일 오후 서울 송파구청에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 금지 준수 서약서가 적힌 현수막이 걸려있다. 연합뉴스.

부정청탁을 금지한 소위 ‘김영란법’이 28일로 본격 시행에 들어갔다.

법 시행으로 그동안 몰래몰래 이뤄졌던 과도한 접대문화가 개선되고, 우리사회의 뿌리깊은 부정·부패가 사라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아졌다.

하지만 법 적용 대상인 공직사회와 교육계, 언론계 등은 광범위한 법 규정을 어떻게 해석하고 일일이 대응할지 등을 놓고 우려와 함께 혼란속으로 빠져드는 모습이다.

일부 고급식당 등은 손님이 뚝 끊기며 울상을 짓기도 했다.

◇ 이럴 땐 어떻게?…문의전화 폭주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김영란법) 시행 전부터 공직사회에는 법 해석을 두고 의견이 분분했다.

워낙 다양한 경우가 발생할 수 있는 만큼 법이 시행된 28일까지도 곳곳에서 문의가 잇따르고 있다.

광주광역시의 경우 공직자들은 담당 언론인 등과의 식사, 업무 출장때 외부인이 낀 경우 등 구체적인 사안에 대해 법 적용을 어떻게 하는지 등을 감사위원회에 문의했다.

법 시행에 대비해 만든 경남도청 감사관실 감사관실 청렴윤리담당에 설치한 전화콜센터(☎ 080-211-0999)에도 “중앙부처나 상급기관 방문 때 간단한 식사나 선물을 해도 되는지” 등을 묻는 공무원들 문의가 잇따랐다.

경남도교육청에도 일선 학교 등으로부터 김영란법에 대한 문의 전화가 폭주했다.

경남교육청 감사관실의 한 관계자는 “문의 내용이 수천, 수만 가지여서 다 말로 못한다”며 “국민권익위원회와 교육부에서 그동안 확인한 사례 등을 기준으로 안내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주요 지자체 공무원들은 28일 당일까지도 ‘우리끼리 밥을 먹어도 안되는 거야?’, ‘내가 사는 것도 걸리나’ 라는 식으로 개별 사례에 대해 갑론을박하는 모습이었다.

서울의 한 정부 부처 대변인실은 이날 담당 언론사 기자들과 점심식사하러 가자고 했다가 멋쩍은 상황을 겪었다.

언론대응 업무를 맡는 대변인실 직원에게서는 금액과 무관하게 식사 대접을 받으면 안 되는 줄 아는 기자들이 함께 가기를 거절했기 때문이다.

결국 국민권익위원회 홈페이지에서 ‘대변인실 직원과 출입기자 간 원활한 직무수행 등 목적으로 3만원 이내 식사 제공은 가능하다’는 유권해석을 찾아 기자들에게 알렸지만 기자들의 반응은 여전히 시큰둥했다.

◇ 다양한 경우의 수…담당기관도 혼란

이처럼 다양한 사례에 대한 질의가 잇따르자 감사실 등 담당기관들도 정확한 해석을 내리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광주시 감사위원회는 사례별 적용 실태를 정확하게 숙지하기 어려워 문의가 오면 매뉴얼을 참고해 관련 규정을 읽어주는 정도의 안내를 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감사위원회 관계자는 “엄밀하게 판단이 어려운 사례에는 개인적인 의견을 덧붙이기도 하지만 되는지, 안되는지 모호하면 되도록 하지 말 것을 권하고 있다”고 말했다.

부산시 감사관실은 권익위원회 매뉴얼을 토대로 소책자를 만들어 전 부서에 배포했다.

부산시교육청은 법이 제대로 정착될 수 있도록 사안별로 법 적용 사안을 점검하고 홈페이지에 공지하는 방법을 택했다.

교육청 홈페이지에 직종별 매뉴얼, 청탁금지법 학교용 매뉴얼,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신고사무 처리지침 표준안, 청탁금지법 Q&A 등 각종 자료를 올려 활용하도록 했다.

학부모에게는 가정통신문을 발송했다.

학부모들은 ‘아이 같은 반 친구들에게 간식을 돌려도 되나’, ‘아이 담임교사와의 면담에 1만원짜리 롤케이크는 사가도 되느냐’, ‘어린이집 차량 선생님에게 음료수 드리는 것도 안되나’ 등의 질문을 하거나 저마다 아는 내용을 공유하기도했다.

이일권 부산시 교육청 감사관은 “법 적용 대상이 광범위하고 사안별로 여러가지로 해석을 할 수 있는 곳이 많아 교원들이 매우 혼란스러워하고 있다”며 “법에 저촉되지 않기 위해서는 법을 보수적으로 해석해 적용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소나기는 피하자…몸 사리는 관가

혼란이 계속되자 공직사회는 전반적으로 ‘시범 케이스에 걸리지 말자’며 몸을 사리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경남도 감사관실은 도비 200만원으로 식권 600장을 구매해 각 부서에 나눠줬다.

이 식권은 민원인이 도청에 들러 민원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점심시간을 넘겨서 민원 처리가 필요할 경우에 활용하기 위한 것이다.

감사관실 관계자는 “업무관련 민원인들이 11시쯤 도청에 들어와 민원을 처리하면서 담당 공무원들에게 밥 먹으러 가자고 한 뒤 밥값을 계산하는 경우가 있다”며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청렴 식권을 배포했다”고 전했다.

광주광역시 한 부서는 29일 예정됐던 언론사 기자들과의 오찬 간담회를 취소했다.

부산경찰청도 허영범 신임 청장이 최근 부임했지만 출입기자단과의 간담회 자리를 마련할지를 아직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경기도청 구내식당은 점심 직원들이 평소보다 많이 몰릴 것으로 보고 28일 점심을 평소 800명분보다 많은 950명분 정도를 준비했다.

광주광역시 구내식당도 이날 점심으로 550인분 식사를 준비했다가 120인분을 더 늘렸다.

김영란법 시행 첫날 비까지 내리면서 구내식당 앞에는 수십m 줄이 늘어서기도 했다 충북도의 한 간부 공무원은 “향우회 참석은 괜찮다고 해 오늘 가보려 하지만, 직무 관련성이 있다 싶은 약속은 모두 뒤로 미뤘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법원 판사는 “어떤 사건이든 실제 상황과 사정을 따져봐야 하고, 시행 전 가상의 시나리오를 만들어 적용 여부를 따지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며 “어쨌든 판사들도 일단 ’납작 엎드려 있자‘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 관가 주변 고급식당 파리 날리며 ‘울상’

김영란법 시행 첫날 관가 주변 고급식당들은 그야말로 파리만 날렸다.

부산시청 주변의 한 고급식당은 법 시행 하루 전인 27일까지만 해도 막바지 예약이 몰려 북새통을 이뤘으나 법 시행에 들어간 28일에는 점심때 딱 2개 테이블만 손님을 받았고, 저녁 예약은 아예 없었다.

충주시청의 한 부서는 외부 약속이나 직원 회식 때 단골로 이용할 식당을 새로 발굴했다.

착한 가격 업소로 지정된 이 식당은 음식 가격이 3천500원에서 4천원으로 15년 전 그대로다.

저녁때 술을 곁들여 식사해도 1인당 1만원이 채 안 된다.

평소 손님들로 북적였던 서울 여의도 앞 일식집들도 이날 점심시간 한산한 모습을 보였다.

국회 앞의 한 고급 일식집은 홀에 있는 2∼3개 테이블에 손님들이 앉아 식사할 뿐 나머지 10여 개의 테이블은 텅 비었다.

15개 방 중에서 5개 방만 손님들이 들었다.

이 일식집은 점심 메뉴 가격을 1인당 3만8천원에서 이날부터 2만7천200원으로 인하했지만 손님들의 발길은 뚝 끊겼다.

서울 종로구의 한 유명 한식당도 이날 점심때 빈방이 수두룩했고, 신발장은 텅텅 비었을 만큼 손님이 뜸했다.

식당 관계자는 “어제까지도 예약이 꽉 찼는데 오늘 점심부터 뚝 끊겼다”며 “3만원 미만 메뉴 중심으로 운영해보려 하지만 역부족인 듯하고, 직원을 일부 내보내야 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라고 말했다.

문을 연지 70년이 넘은 종로구의 고급 일식집은 이전에는 저녁 예약이 하루 20~30건 정도였으나 28일에는 단 한 건에 그쳐 김영란법의 위력을 실감하고 있다.

일식집 지배인은 “오늘 점심은 평상시같았지만 저녁예약은 크게 줄어든 상황”이라며 “70년 역사의 우리집이 이렇게 문을 닫아야하는가 싶다”고 말했다.

이 식당은 특히 이맘때 쯤이면 연말 송년회 예약이 줄줄이 잡혀야 하지만 올해는 문의 자체가 거의 없다고 덧붙였다.

서울 중구 특급호텔의 일식당과 한식당도 이날 점심 손님이 전날보다 3분의 1이 줄었다.

비교적 단가가 비싼 저녁식사의 경우는 예약이 40% 감소했다.

호텔 관계자는 “김영란법 영향인지는 모르겠지만 예약이 크게 감소해 우려스럽다”고 전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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