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산을 이고 사는 사람들 - (5)가지산표범과 일목장군

▲ 표범의 궁전 입석대. 상북 주민들은 부처바위라 부른다. 영남알프스학교 제공

홀갱이꾼을 만나기 위해 득달 같이 달려간 곳은 석남사 인근의 살티마을. 천주교 교우촌 살티는 예로부터 호사가 많았던 오지마을이었다. 살티공소에서 만난 공소지기의 말이다. “어른들 말로는 포졸한테 잡혀 참수된 사람보다 호랑이한테 물려 죽은 사람이 더 많았데요. 행방불명된 석남사 빡빡머리 스님 머리통도 저기 보이는 잣발등에서 찾아냈죠.” 공소지기가 가리키는 곳은 산이 자빠질 형태를 한 잣발등이었는데, 두 손을 합장한 부처바위가 하늘을 찌를 듯 서 있었다.
 

 

홀갱이꾼이 사는 집은 흑백세상에나 볼 수 있는 오막살이였다. 녹슨 문을 열고 나를 맞은 사람은 일목장군(一目將軍) 정원석(87)씨였다. 낯선 사내를 흩어보던 정 노인이 나를 마당으로 불러들였다. 나는 천성산 이 포수에게 받은 표범 사진을 보여주며 정씨의 기억이 되살아나길 기다렸다.

“최 포수에게 넘긴 표범이 맞소. 이 사진은 어디서 났소?”

여차저차 그동안의 사진 입수과정을 설명했다. 고개를 끄떡이던 정씨는 구석진 방으로 나를 안내했다. 병색이 짙어 보이는 정 노인과 마주 앉았다. 나는 천성산 이 포수에게 전해들은 포획과정을 밝혔다. 석남재 인근에서 표범이 먹다만 뼈를 발견한 최 포수는 가지산 일대를 추적했고, 운문산 상봉 바위틈에 숨어있는 두 마리의 표범을 발견, 한 쪽 팔을 물리는 사투 끝에 한 마리는 사살을 하고 다른 한 마리는 놓친 전황과 김덕동 포수와 함께 부산 최 포수 집을 찾아간 사실을 낱낱이 까발렸다.

부산포수가 잡았다던 표범 실제 사냥꾼 찾아 전말 들어
표범은 가지산에 올무 150개 쳐야 한마리 걸릴만큼 귀해
잡은 표범에 수염이 없어 쌀다섯가마 가격에 넘겼지만
부산서는 호피·쓸개 등이 엄청난 가격에 팔려나가기도

“최 포수가 꾸민 말이야. 그 냥반 그러고도 남을 위인이지. 영험한 산찌끔(산 지킴이) 잡으면 집안에 흉사가 일어나. 그 냥반 천벌을 받아 병신 아들을 낳았지. 나도 산찌끔 잡는 바람에 눈이 이렇게 되었고.”

정씨는 안경을 벗어 외눈박이 눈을 드러냈다. 젊은 시절 아버지를 따라 가지산 돼지옹티골에서 옥돌 사이에 파묻힌 금을 캐다가 돌이 튀어 한쪽 눈을 실명하는 불행을 맞았다. 표범이 눈을 빼갔다는 나쁜 소문은 평생 가슴에 올린 맷돌이었다.

호피라면 환장을 하던 시절이었다. 가난한 살티마을 사람들 너도나도 산짐승을 잡아 생계를 꾸렸다. 자욱포수 소리를 들었던 그의 부친은 산짐승을 잡아 살림을 일구었을 정도였다. 아버지로부터 사냥술을 익힌 그는 표범을 잡기 위해서 산에 살다시피 했다.

▲ 가지산표범이 잡힌 잣발등. 범이 진노하면 바위는 자빠지고 산천초목은 벌벌 떨었다. 영남알프스학교 제공

수 년 간 표범을 추적해 온 발품은 짐승이 나다닐만한 길을 꿰뚫게 했다. 올무를 거는 데는 똑바른 길보다 굴곡지고 비탈진 곳을 골랐다. 도저히 비켜나갈 수 없는 나무와 나무 사이에 찌개틀을 놓고, 짐승도 마다하는 된비알에 멧돼지를 잡는 대형 범틀을 놓았다. 이때 조심해야 할 것은 나무에 사람 체취를 남기지 않는 것. 설치가 끝나면 ‘토끼똥구멍닦게’라는 억센 풀로 덮었다. 탄력이 센 범틀에 걸린 노루는 다리가 잘린 채 도망을 치기도 했는데, 산 채로 잡은 노루는 그 자리에서 목을 잘라 피를 받아 마셨다.

1960년 12월 크리스마스가 가까울 무렵이었다. 밤새 들린 괴성을 심상찮게 여긴 정씨는 아침을 든든히 챙겨먹고 산엘 올랐다. 짐승이 많은 가지산 응달 영장골 골짜기에는 사흘 두루 노루나 토끼가 걸려들었다. 새질내기 능선길을 타고 잣발등, 물팍등, 부처바위 고개로 내려왔다. 고개를 넘을 때마다 한 개씩 빼 먹던 곶감 한 첩은 마지막 부처바위에서 마지막 한 개가 남았다.

 

밤새 짐승 울부짖는 소리가 났던 잣발등에 도착한 그는 남의 눈에 띄지 않은 곳에 쳐놓았던 목매들을 꼼꼼히 살폈다. 양달 붉은 바위를 눈여겨 살펴보니 옴팡진 곳에 짐승 눈발자국이 나있었다. 표범은 겨울에는 응달을 타고 여름에는 양달을 탔다. 발뒤축이 간장 종제기 모양인 걸로 봐서는 분명히 뭔가 걸린 것 같은데 짐승 행방을 찾을 수가 없었다. 해는 이미 배내고개로 떨어진 터라 내일 다시 오기로 마음먹고 집으로 돌아갔다. 다음날 정씨는 아들을 데리고 산을 올랐다.

“그날 되게 추웠어요. 아버지가 앞서고 저는 뒤따라갔어요. 전날 혼자 간 아버지가 그 놈을 찾다가 어두워지자 다음날 날 데리고 간기라. 짐승은 걸리면 위로 안 올라가고 아래로 내려와요. 꺾어진 나무와 발자국을 쫓아가니 경사진 숯구디(숯가마터)에 뭔가 있더라고. 처음엔 잘린 나무 둥친 줄 알았어요. 그땐 민둥산이라 웬만한 숯구디는 구분 되질 않던 시절인 기라.” 정씨 아들의 표범 사냥담은 갈수록 흥미를 더해갔다.

“바위를 타던 아버지가 저 밑에 뭐가 있다는 겁니다. 바위 뒤에 숨어서 보니 움푹한 숯구디에 얼룩무늬 표범이 드러누워 있는 기라. 죽어가는 내내 강한 이빨로 나무를 얼마나 물어 뜯었던지 생나무가 반쯤 잘려 있더라고. 난 무서워서 곁에 가질 못했어요. 높은 바위에서 돌을 던져도 미동이 없자 아버지는 살금살금 다가가 통나무로 범 대가리를 사정없이 한 방 내리친 기라.” 그는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매화 무늬의 털가죽과 긴 꼬리 표범을 잊지 않고 있었다.

“햐, 기가 막혔어요. 일자로 쭉 뻗은 꼬리가 너무 대단했던 기라.”

표범은 죽어 있었다. 올무에 걸린 표범은 발버둥칠수록 더 옥을 죄고 힘이 빠졌다.

“죽은 걸 확인하고서야 내려갔어요. 강철 올가미는 어릴 때 책보자기 맨 모양으로 목과 앞발 사이에 걸려있었어요. 꼼짝마라죠. 볼펜 심 정도로 가는 강철 올가민 얼마나 강한지 표범이 나무뿌리째 뽑아 당겨도 안 끊어져요. 평지보다 암반 위를 좋아하는 이놈은 한 달에 한두 번 밖에 안 나타나요. 천황산 사자평을 둘러서 가지산으로 오는 걸 우리 아버진 꿰고 있었어요. 아버진 그 놈 잡으려고 올무 150개 이상 깔아놓았는 기라. 얼마나 정밀하게 놓았는지 우리가 봐도 모른다 캐도.” 잡힌 표범의 무게는 쌀 반가마니 무게인 35~40㎏가량 됐다.

▲ 120년 된 표범 지게. 특수 제작된 표범지게는 지게 다리와 받침대가 없다. 영남알프스학교 제공

“잡힌 놈이 암놈이었어요. 숫놈이 내려와 절단 났는기라. 한 달간 우리 집 근방에 와서 괴성을 질러 온 동네사람이 잠을 못 잤대도요. 우리 아버진 이놈도 잡으려고 노렸어요. 암놈 잡은 데가 붉은 바위였는데, 이번에 암벽 타는 숫놈 잡으려고 백호등에 올무 치러 다녔지만 안 걸렸어요.”

부자(父子)는 잡은 표범을 번갈아가며 지고 내려왔다. 표범 지게는 지게 다리와 뒷받침 없이 특수 제작된 것이다. 누가 볼까 싶어 산죽을 덮어 칡줄기로 단단히 묶었다. 다시 그 위에 솔가지를 덮어 감쪽같이 위장을 했다. 산에서 어두워지기를 기다렸다가 집엘 들어가니 놀란 개가 똥을 싸댔다. 표범 팔 궁리를 하던 정씨는 부산 최 포수에게 연락을 했다.

“그거 잘 됐다. 부산으로 가져 오소.” 정씨는 표범을 가마니로 위장해 언양으로 지고 나가 버스 편으로 부산 최 포수 집으로 갔다. 이종사촌 부산 최 포수는 사냥개를 몰고 다니던 하이칼라였다. 사냥철이면 살티를 찾아와 며칠씩 먹고 자며 짐승을 잡으러 다녔다.
 

▲ 배성동 소설가

“얼마 못 받았어요. 30만원인가 그랬심더. 범 수염이 다 뽑혔다 해서 반값 밖에 안쳐준 기라. 최 포순 자기가 잡은 걸로 단단히 입조심까지 시켰어요.” 당시 30만원이면 쌀 다섯 가마니 값이었다. 그 돈으로 염소 40마리를 사고, 삼촌 결혼 밑천으로 썼다.

최 포수는 죽은 표범을 리어카에 싣고 부전시장을 다니며 자신이 잡은 호랑이라 떠벌리고 다녔고, 사진사를 불러 기념사진을 남겼다. 가죽은 벗겨 돈쟁이에게 넘기고, 귀한 약이 되는 호골과 쓸개, 고기는 추려 팔았다. 귀한 호골과 호피는 부르는 게 값이었다. 호골 뼈는 논 두 마지기, 호골 가죽은 논 세 마지기에 팔렸다는 소문이 돌았다. 1960년 12월22일 이후 자취를 감춘 은둔의 제왕은 여태껏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배성동 소설가

*영남알프스학교 다음산행 10월1~3일(3일간) 영남알프스 복합웰컴센터 울주세계산악영화제 힐링트레킹   문의 010·3454·7853(교무팀장), (http://cafe.naver.com/ynalpsscho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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