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못생긴 매력덩어리

 

올 추석 때도 시골 친정마당의 호박이라고 생긴 것은 모조리 다 차에 실었다. 언제부턴가 매년 그랬다. 늙은 호박에 눈이 멀어 인물은 따지지도 묻지도 않고 무조건 집으로 데리고 왔다. 이번 추석 연휴 내내 냉전이었던 우리 부부는 호박 옮길 때만큼은 호흡이 척척 맞았다. 행여 누가 한 덩이라도 탐낼까봐 재빠르게 늙은 호박을 가득 싣고 기분좋게 차문을 닫았다.

시력·기침에 좋고 레시틴 성분도 풍부
죽·전·차 등 다양한 요리로 변신 가능
가열해서 먹어야 흡수율 높일수 있어

우리의 행동이 황당했는지 농작물 지킴이인 강아지 ‘은자’는 짖는 것도 잊어버리고 멀뚱멀뚱 쳐다만 보았다. 아무렇지도 않게 손을 툭툭 털며 방으로 들어서는데 작은언니가 한마디를 했다.

“이것 보소, 못난이가 올해도 또 호박을 다 가져가버리네.”

전혀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한 덩이라도 더 호박을 챙길 수만 있다면 못난이 소리가 어디 대수랴!

“누나는 맛도 없는 호박이 그리 좋은가?”

“내 나이 되어봐라. 그때쯤이면 못생긴 호박의 매력을 알게 될 것이다.”

사춘기 소녀시절에는 못생긴 호박은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 행여 누가 호박을 닮았다 할까봐 호박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20~30대에는 호박을 무슨 맛으로 먹느냐면서 산모의 부종을 빼는데 좋다고 해서 억지로 먹었다. 가을이 오는 길목에 시골에 가면 흔하디 흔한 늙은 호박은 그냥 그 자리에 항상 무의미하게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서서히 호박이 눈에 띄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50을 바라보는 나이에는 늙은 호박의 매력에 푹 빠져버렸다. 죽기살기로 호박을 사수하는 이유는 늙은 호박은 우리 가족의 건강을 지켜주는 가을보약이기 때문이다.

호박은 노랗게 잘 익을수록 당분이 늘어나 단맛이 증가하고 향이 진하게 난다. 늙은 호박의 당분은 소화 흡수가 잘 되어 위장이 약한 사람이나 회복기 환자에게 좋다. 또한 비타민과 미네랄 성분이 풍부해 고혈압과 당뇨병 치료에 도움을 주고, 중풍을 예방하는 효과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뇨작용을 하여 출산한 여성의 부기를 빼는 데도 효과가 있고, 포만감을 주어 비만한 사람에게도 좋다.

▲ 박금옥 개운초등학교 영양교사

늙은 호박의 주성분은 녹말이다. 날것으로 먹으면 비타민C를 파괴하는 아스코르비나아제(ascorbinase)가 들어있어 반드시 가열해서 먹고, 기름에 볶으면 베타카로틴의 흡수율을 높일 수 있다. 늙은 호박에 들어있는 카로티노이드(carotenoid)는 호박의 노란색을 내는 성분이며, 카로티노이드 색소의 일종인 베타카로틴은 체내에 흡수될 경우 비타민A로 바뀌는 성질이 있다. 비타민A는 야맹증 예방과 시력에 도움이 된다.

호박씨에는 머리를 좋게 하는 레시틴과 필수 아미노산이 많이 들어있다. 기침이 심할 때 구워서 꿀과 섞어 먹으면 효과가 있다. <동의보감>에 약식동원(藥食同源)이라는 말이 있다. 약도, 먹는 것도 그 근원은 하나라는 것이다. 음식도 잘 먹으면 약이 될 수 있다. 가을보약으로 전혀 손색이 없고 가격도 저렴한 늙은 호박을 권하고 싶다.

늙은 호박은 죽, 범벅, 전, 엿, 꿀단지, 식혜, 강정, 차 등 다양한 요리로 변신이 가능하다. 햇볕에 말린 늙은 호박을 양파와 함께 볶다가 삶은 동부와 밤, 찹쌀가루를 넣어 끓인 후 마지막으로 우유를 넣고 죽을 만들어 먹으면 맛과 영양이 풍부한 보약이 된다. 늙은 호박은 무겁고 진한 황색을 띠는 것이 좋다. 통풍이 잘 되는 곳에 보관을 잘 하면 이듬해 봄까지 단맛이 강하고 향이 좋은 늙은 호박 맛을 제대로 즐길 수 있다. ‘늙어서 좋은 것은 호박’이라는 말에 백배 공감한다.

숨 턱턱 막혔던 여름 더위를 이겨내고 지금은 여유롭게 놀고 있는 늙은 호박을 보고 있노라면 소중한 추억들이 스쳐지나간다. 따끈따끈한 호박설기를 나눠먹으면서 웃음꽃을 피웠던 지인들, 위암 투병 중 호박죽 한 그릇을 맛있게 먹고 하늘나라로 간 예쁜 ○○씨, 엄마가 구워준 윤기 자르르 흐르던 노란 호박전, 북천역 호박축제! 희로애락의 삶이 느껴진다. 이 또한 지나가겠지만…. 가을비가 촉촉이 내린 휴일 오후, 제일 못생긴 늙은 호박 한 덩이를 집어든다. 이래저래 못생긴 늙은 호박 한 덩이가 오늘은 내 친구다.

박금옥 개운초등학교 영양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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