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NEVERLAND -The Yellow Tree

장은경 作. 91.0×116.7㎝ 캔버스에 아크릴.

아주 천천히 빛 바래고 닳고 부서지기도 하지만

그 소박하고 은은한 질감과 색감은 오랜 시간 만큼이나 깊이를 더한다.

선선해진 젖은 들판, 익은 벼이삭의 고개가 더 무거운 듯 허리까지 숙이고 있습니다. 풍년 들었겠지요? 올 여름이 뜨거웠지 않습니까. 잦은 가을비가 근심이 되기는 합니다만, 결실의 계절입니다. 가을엔 열매만 풍성한가 했더니 봄부터 차례로 피기 시작한 꽃들이 화려한 여름꽃을 거쳐 농밀한 가을꽃으로 바뀌었습니다. 가을에 피는 꽃도 의외로 많습니다. 봄과 여름에 꽃을 피우지 않았던 단일식물들이 일제히 꽃을 피우는 게지요.

여름철 무더위가 지나갔나 싶을 때 가을 햇살은 정말 뜨겁습니다. 오곡을 익혀야 하기 때문이지요. 뜨거운 햇살에 벼이삭이 여무는 동안은 국화꽃은 피지 않습니다. 국화는 낮이 짧아 어둠이 빨리 내려야 피는 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초가을부터 이미 국화꽃을 볼 수 있지요.

알고 보면 초가을 국화는 사람들이 피우는 꽃입니다. 성장기에 밤새도록 전등을 켜 놓아 재우지 않습니다. 밤이 없는 백야 (白夜)인 것이죠. 그때부턴 다시 밤낮 없이 캄캄한 어둠 속 극야(極夜)에 있어야 합니다. 아름다운 꽃을 일찍 피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억지로 피었어도 가을 국화의 향기는 더없이 그윽하지요. 꽃들은 그래도 이름값을 합니다.

꽃은 꽃대로, 물·바람은 또 그대로
자연이 부여해준 이름값을 합니다
기록적인 폭우로 우리 혼을 쏙 빼놓았던
‘차바’도 태풍이라는 이름값을 한게죠
그래도 이만하길 천만 다행입니다

금목서를 아시나요. 구월의 끝과 시월의 시작, 금목서 꽃이 피는 열흘남짓입니다. 남부수종이므로 자연월동을 할 수 있는 지역이 제한적입니다만 울산까지는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지구온난화가 조금씩 금목서의 한계를 넓히고 있기는 합니다. 금목서의 다른 이름은 만리향입니다. 향기가 일만리를 간다지요. 천리향은 천리를, 백리향은 백리에서 그 향기를 맡을 수 있다고 붙여진 이름입니다. 어림이나 있겠습니까.

천리만리 날아가는 꽃향기가 어디 있을까요? 동네마다 몇 그루씩 있다면 가능할 것도 같습니다. 천리향은 이른 봄에 피는 꽃입니다. 그 향기가 봄처럼 부드럽고 은근합니다. 만리향엔 짙은 가을 향기가 들어 있습니다. 고급향수의 대명사 샤넬5 보다 고급스럽고 달콤한 향기가 천지사방으로 퍼집니다. 이름값을 하는 꽃송이를 갖고 있을 줄 알지만 금색의 자잘한 꽃이 나무줄기에 다닥다닥 핍니다.

지구상에서 가장 큰 꽃 이름이 시체꽃이라지요. 7년에 한번 피는 4m 높이의 거대한 꽃은 악취가 나는 향으로 파리를 불러 모아 수정을 합니다. 몇미터 밖에서도 고기 또는 시신이 썩는 냄새가 난다지요. 그나마 이틀이면 시들고 만답니다. 워낙 희귀한 꽃이라 시체꽃이 핀다는 사실은 뉴스가 됩니다. 그 지독한 냄새를 맡으려고 사람들도 몰려든다죠. 겨우 이틀 남짓이니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만합니다. 역시나 이름값 좀 하는 건가요.

태풍 ‘차바’가 기록적인 폭우를 쏟아 부었습니다. ‘차바’는 태국의 꽃이름이라지요. 꽃말이 ‘섬세한 아름다움’, ‘남몰래 간직한 사랑’이라네요. 도심이 아닌 시골에 살다보니 자연의 위력이 더 도드라집니다. 집근처에 30m 고가다리는 수십 개 물통마다 비릿한 타이어 씻긴 물을 콸콸 쏟아냅니다. 다리 아랫길을 지날 때 무섭기만 하더니 높은 망루에서 보니 바람에 휘날리는 멋진 폭포가 됩니다. 비 피해를 입을까 허둥대다가 자칫 짧은 감탄사가 새 나옵니다. 처한 위치에 따라 너무 쉽게 양면적인 것에 놀랍니다. 7호 국도가 마비되는 것도 고스란히 지켜봤습니다. 근처에 공사 중이던 흙탕물이 남북으로 난 아스팔트길을 가로 질러 넘쳐 흘렀습니다. 부산과 울산 양방향 차들은 꼼짝없이 멈춰 서 버렸습니다. 향기롭던 꽃송이도 자연스럽게 떨어졌습니다. 향기 가득하고 갈 곳 참 많은 가을이었는데 상처가 큽니다.

옛말에 물길과 바람 길은 억지로 막지 않는다고 했던가요. 경관 좋기로 이름난 부산 마린시티에선 영화 ‘해운대’ 같은 장면이 일어났습니다. 80층 아파트가 바람 길을 막았을 테죠. 원래 수벽높이가 3.4m 계획이었답니다. 사람들이 바다를 조망하는데 수벽이 너무 높다고 반대를 했답니다. 결국 수벽을 절반도 넘지 않게 시공했습니다. 바다는 만조, 하늘은 바람과 물 폭탄을 퍼 부었습니다. 마린시티는 수중도시로 변했습니다. 육지로 올라온 바다고기는 얼마나 당혹스러웠을까요. 이만하기 천만 다행입니다. ‘차바’나 ‘마린시티’나 이름값을 한 것일까요.

▲ 유금오씨

■ 유금오씨는
·시인
·나무야나무야 대표
·대구가톨릭대학교 산학협력 강사
·(사)한국원예치료복지협회 울산지부 지부장
·(사)한국조경사 울산지회 부회장
·2003년 <시를사랑하는사람들> 신인상 당선

 

 

▲ 장은경씨

■ 장은경씨는
·경희대 미술교육과 졸업 ·개인전 10회
·아트페어 및 비엔날레 33회
·2011올해의작가상 수상(울산 미협)
·제주조각공원, (주)메탈로그 아트서비스(서울),
NISSAN Trading(일본), 에이원갤러리(서울),
상하이 윤아르떼갤러리(상하이)외 개인소장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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