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훈처는 단주 유림 선생을 4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단주 선생은(1894~1961년) 계몽운동을 펴는 한편으로 비밀결사를 조직해 항일운동을 전개함으로써 민족독립과 자주화에 힘쓰고 임시정부요인으로 활약했던 선각자였다.  경북 안동에서 어린시절 한학을 배운뒤 중등학교인 협동학교에서 근대식 교육을 받았다. 협동학교를 졸업한 선생은 안동과 대구를 오가며 항일운동을 펴오다 기미년 3·1만세운동 주동혐의로 일제에 쫓기는 몸이 돼 망명길에 오르게 된다.  만주에 도착한 선생은 서로군정서에 가담했으며 북경에서는 신채호와 김창숙 선생을 만나 〈도고〉잡지 발행을 도왔다. 신채호 선생과의 만남은 단주 선생이 아나키즘을 수용하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이후 선생은 아나키즘을 바탕으로 신민부와 연대를 모색했으며 정의부에 가담해 교육관계 일을 담당하기도 했다. 그리고 국내로 잠입해 평양에서 조선공산무정부주의자연맹을 조직하기도 했다.  봉천에 의성학원을 설립, 광주학생운동 직후 만주로 탈출해온 학생들을 수용한뒤 예비교육을 시켜 중국의 각급 학교로 입학시켰다. 이같은 활동으로 일제의 만주침략 직후인 1931년 10월 일경에 체포돼 국내로 압송됐다. 이 일로 선생은 5년형을 받아 옥고를 치렀으며 출옥하자마자 또 만주로 망명을 하게 된다. 계속된 망명길에도 선생의 항일활동은 계속됐으며 1942년 임시정부가 있던 중경으로 옮긴뒤 임시정부와 임시의정원에서 왕성한 활동을 폈다.  해방이후 환국해서는 외세를 배격하면서 자주 통일정부 수립을 위해 독립노동당 결성과 노동신문 창간 등의 활동을 펼치다 1961년 68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이애정기자 love@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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