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고시제도의 폐지 또는 축소로
인재 선발의 청렴·투명성 위협받아
자칫 부와 권력의 대물림 될까 걱정

▲ 최건 변호사

어떤 기관에서 인재를 채용하거나 구성원을 선발하고자 하나, 예정된 인원보다 많은 인원이 지원하는 경우 선발 기관은 나름의 전형절차를 거쳐 합격자를 선정한다. 그런데 지원자가 다수이거나 선발과정이 용이하지 않으면 일반적으로 해당 기관은 ‘시험’제도를 통하여 합격자를 선발한다. 그 중에서도 특히 국민의 신뢰를 필요로 하는 분야인 경우, 국가기관에서 종사할 인원을 선발하는 경우, 선발과정이 국민들과 이해관계가 있고, 전형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요구하는 경우, 합격자에게 일정 수준 이상의 능력을 요구하는 경우 등에는 ‘국가가 관할하는 시험’을 통하여 해당 인원을 선발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입시’ ‘고시’ ‘각종 자격증 시험’ 등이 이에 해당된다.

이른바 ‘국가가 관리하여 성적대로 줄을 세우는 방식’은 여러 문제점을 야기할 수도 있다. 그러나 부정과 편법을 차단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다. 또한 대중들 역시 선발과정의 공정성에 대해서 신뢰할 뿐 아니라 선발된 자들의 자격에 대해서도 아무런 의심을 하지 않는다. 우리나라 최고 기업의 경영자가 국내 명문 대학교를 졸업했다고 하면 사람들은 ‘공부를 잘했구나’라고 생각하지 ‘돈으로 입학했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반대로 대통령, 대법관, 국회의원, 대형 법무법인 대표의 자녀들이 입시나 고시에 낙방하여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입시, 고시 등으로 합격자를 선발하는 경우 관리 기관인 국가의 청렴성과 투명성이 확보돼야 함은 물론 그 제도가 형해화될 수도 있는 편법을 용인해서도 안 된다. 1957년께 당시 서울대학교는 이승만 대통령의 양자이자 이기붕 부통령의 친자이던 이강석을 아무런 근거도 없이 동 대학 법과대학에 편입학시켰다. 당시 동 대학 법과대학 학생들은 동맹 수업거부를 하면서 이강석의 불법 편입학에 반대했다. 이 사태가 국민적인 관심을 끌게 된 것은 당시 이승만 정권 하의 문교부 장관의 “총장의 재량으로 애국지사의 양자를 스페셜케이스로 입학시킨 것이 뭐가 문제냐”라는 발언이었다. 이 말은 국민 여론을 악화시켰고 여론에 부담을 느낀 이강석은 스스로 입학을 포기했다.

그러나 불과 몇 년 사이에 앞서 말한 것들은 모두 역사책 속의 이야기가 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돈이 많거나 권력이 있는 자들은 자신의 자식들을 공부 외의 다른 방법으로도 입학이 가능한 외국의 사립대학으로 진학시키거나(물론, 상당수 외국 대학의 입학 과정 및 학사관리는 우리나라 대학의 그것보다 철저하다.), 상당한 비용을 필요로 하는 스펙을 쌓게 만들어서 국내 대학에 특례입학을 시킨다. 이러한 과정으로 해당 학교를 졸업한 자들은 부모의 인맥을 기반으로 좋은 기업에 취직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부모들이 자녀들을 이른바 ‘폼 나는 직업’을 가지게 하는 것도 가능하다. 최근 각종 고시제도가 폐지되었거나, 폐지가 예정되었을 뿐 아니라 그나마 존재하는 시험 역시 선발 인원을 축소하기 시작했다. 특권층들은 이러한 상황을 기화로 자녀들을 전형절차의 투명성이 보장되지 않고, 자격증 취득도 어렵지 않은 ‘전문대학원’에 입학시켜 ‘사짜’직업을 가지게 만든다. 심지어는 민간 채용이라는 명목으로 자신의 자녀들을 고급 공무원으로 만들기도 한다. 이른바 부의 대물림뿐만 아니라 권력의 대물림도 가능한 시대가 도래한 것일지도 모른다.

입시, 고시제도 하에서는 부모들은 자식에게 좋은 낚싯대를 사줄지언정 직접 생선을 잡아줄 수는 없었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를 구 시대의 유물이라고 폄하하는 자들은 실상 직접 생선을 잡아 요리하여 자신의 자식들에게 먹이고 있다. 수개월 전 크게 이슈가 되었던 교육부 모 정책기획관의 “나는 신분제를 공고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발언이 이미 현실화된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든다.

최건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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