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영진 사회문화팀 차장

물난리가 난 지 닷새째. 9일 울산 중구 태화시장은 여전히 전쟁통이었다.

수백미터 유곡로 대로변은 이 곳이 정말 시장통었는지 의심이 될 정도였다. 새마을금고와 울산축산농협은 아예 문을 닫았다. 상인들이 하루에도 몇차례씩 드나들던 현금창고였지만 물폭탄 이후 통신장애 때문에 결국 셔터를 내려야 했다. 언제 다시 문을 열겠다는 안내장도 찾아볼 수 없었다. 24시간 영업하는 등뼈 해장국집은 수저 한 벌 제대로 건사하지 못하고 점포를 빠져나와야 했다.

골목으로 들어가면 더욱 기가 찼다. 트라이 속옷가게 아줌마는 아직도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켜켜이 쌓아놨던 속옷을 거리로 끄집어 내 하나씩 말리는 손길이 분주했다. 가게의 절반이 물에 잠겼다며 그 날을 회상하는 아줌마의 목소리에 울컥울컥 울음이 배어났다. 맞은 편은 40여 년 터줏대감 태화 사진관이다. 사진사 아저씨는 카메라와 디지털 현상기, 손님이 찍고 간 수백여 장의 여권사진을 이번 비에 모조리 잃었다. 왕자고무상회 사장님도 수천켤레 신발을 어찌해 볼 방도없이 떠내려 보냈다. 영남떡방앗간 아저씨는 제분기의 부속품을 맞추느라 가게에 사람이 들어와도 몰라봤다. 반지하 점포였던 태화종합화장품할인매장, 코너의 과일가게와 바로 옆 건어물가게, 그 건너편 도우넛과 만두가게 역시 무엇 하나 건질 새 없이 쓸려가는 흙탕물에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내놓아야 했다.

태화장 시장통은 지난 20년을 한결같이 오가던 곳이기에 단골가게가 많다. 나이가 많으면 아줌마, 아저씨요, 그 보다 젊으면 새댁이나 삼촌으로 통하는 곳, 시장통의 단골가게 사장들이 겪었을 그 날의 물난리를 생각하니 한달 전 5.8 강도의 지진이 났을 때 이상으로 심장이 요동치고 가슴이 저려왔다.

돌아나오는 길, 옛 원유곡마을의 심씨 할머니를 만났다. 심 할머니는 지금도 그 주변에서 농삿일을 계속 하며 가끔씩 수확물을 태화장에 내놓는데, 이번 비는 할머니네 전답과 곡물창고 역시 예외없이 휩쓸고 지나갔다. 할머니는 “동사무소에 피해신고서를 내놓고 이제나 저제나 연락을 기다렸는데, 막상 태화장에 나와보니 ‘나 좀 도와주소’라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며 혀를 끌끌 찼다. 춤을 추는 한 무용인도 공연무대를 잠시 접고 동료들과 수해복구 자원봉사활동에 나섰다고 한다. 직접 목격한 수해현장은 TV나 신문으로 접하는 것 보다 몇 곱절은 더 심각했다며, 마음 같아서는 한 달이고 두 달이고 정리가 끝날 때까지 일손이 돼주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누구나 다 이와 같은 마음은 아닌가보다. 청소작업이 한창인 태화강 둔치에서는 젊은이들이 소란스럽게 족구를 하면서 여가를 즐기다가 한 주민에게 꾸지람을 들었다. 어르신 자원봉사자와 함께 저 멀리 충북 영동에서 지원 온 자원봉사단체까지 쓰레기를 치우는 상황이었다. 또다른 자원봉사자는 떼로 지나가는 사이클 동호회때문에 작업에 방해가 됐다고도 토로했다.

사람은 누가 굳이 일러주지 않아도, 다른 이의 처지와 속마음을 읽어낼 수 있다. 이웃의 실의는 어느 때고 내 경험이 될 수도 있다. 우리가 가져야 할 최소한의 배려가 무엇인지 조금 더 생각하자. 이심전심, 역지사지의 마음이 필요할 때다.

홍영진 사회문화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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