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산을 이고 사는 사람들 - (6)고헌산표범과 호사가

▲ 1944년 신불산표범

영남알프스의 본고장인 상북은 호사(虎事)가 많은 곳이다. 상북 능산마을의 영호지총(靈虎之塚)은 그 옛적 호사를 입증해 준다. 석남사 가는 지방도의 야트막한 언덕배기에 있는 뗏장 벗겨진 호랑이 무덤을 세모 대가리 독사가 지키고 있다. 호사는 이곳만이 아니라 도처에 널렸다. 조선조 말 무렵만 해도 신불산 호랑이는 근동 100리를 설치고 다녔다. 그래서 영남알프스 일대의 실타래 고갯길을 넘나들던 장꾼들은 물불을 가리지 않고 달려드는 호랑이를 만날까 싶어 가슴 졸여 넘어야 했다.

▲ 1944년 신불산표범(위)과 1944년 고헌산표범. 고헌산표범은 일제강점기 상북주재소에서 찍은 사진이다. 사진 속 인물은 상북 궁근정에서 술도가를 운영하던 박정택이다. 표범 사진을 유심히 보면 콧수염이 보이지 않는다. 몸에 지니고 다니면 잡기를 쫓는다는 수염을 너도나도 빼갔기 때문이다. 영남알프스학교·이돈수씨 제공

올해 초, 중국 만주에서 날아든 한 장의 표범 사진(‘1944년 고헌산표범’으로 명명(命名)했다)은 영남알프스 일대의 맹호를 추적하는 나를 흥분시키게 했다. 거기다 사진 속 표범은 마치 살아있는 모습을 하고 있었고, 당시 포범을 직접 본 목격자까지 생존해 있어 흥분은 더했다.

“이놈 살아있는가 봐. 죽었으면 모가지가 쳐지고 눈도 감길 텐데 꼿꼿이 섰어.”
“아니야. 수염이 하나도 없는 걸로 봐서는 죽은 놈이 분명해.”
“이 사람아! 죽었다면 사람이 붙잡아도 목이 쳐지지. 귀를 쫑긋 세워 인기척을 경계하고 있잖아. 눈도 빤히 살아있고.”
정말 살아있는 모습을 한 고헌산표범 사진은 호사가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기에 충분했다.

1944년 신불산서 포획된 표범 또다른 사진 찾았지만
고헌산 표범으로 사진 둔갑돼 중국 만주 떠돌던것
내막은 배내골 숯쟁이 영감에 잡힌 표범을 배경으로
지역 유지들이 기념촬영한 사진중 한장 유출로 드러나

 

그렇다면 1944년에 포획된 신불산표범과 비교해 보자. 아무리 뜯어봐도 동일 표범임이 틀림 없다. 사진 속 인물만 다를 뿐, 주변 풍경은 오히려 선명하다. 사진 제공자에 따르면 사진을 수집한 곳은 중국 만주였다고 한다. 그렇다면 표범은 자기가 태어난 고헌산을 떠나 이국만리 중국으로 망명을 간 셈이다.

나는 즉시 사진 속 인물 수소문에 나섰다. 1, 20년도 아닌 70여 년 전의 인물을 찾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오랜 발품 끝에 결정적인 제보를 해주신 분을 만날 수 있었다. 일제강점기에 우체부를 한 구순 노인이 요행히 사진 속 인물을 알아보았다. 사진 속 인물은 상북 궁근정에서 술도가를 운영했던 박정택 씨였다. 궁근정은 고헌산과 가지산, 운문산, 호거산 등 큰 산으로 에워쌓인 호랑이 왕국이었다. 좀더 자세히 말하자면 밀양 석남재와 청도 운문재, 경주 외항재를 드나들던 장꾼들이 모여드는 외진 마을이다. 궁근정은 사람과 바람이 모이는 곳이고, 언양 봇디미는 빠져나가는 곳이라는 말이 있다. 배내고개는 배의 꼬리, 궁근정은 배꼽, 외항재는 뱃머리 격이다.

 

까면 깔수록 미스터리는 더해갔다. 알고보니 표범을 잡은 사람은 사진 속 인물 박정택이 아닌 육지의 섬 배내골에 살던 일자무식 숯쟁이 영감이었다. 숯쟁이 영감은 담력이 좋기로 호가 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어쨌든 고헌산에 살던 표범이 상북주재소에 잡혀온 사연을 여차여차 꿰맞춰 보면 이렇다.

고기가 그리운 배내골 숯쟁이 영감이 멧돼지를 잡으려고 설치해둔 올가미에 생각지도 않은 호랑이가 걸려들었다. 숯쟁이 영감이 전전긍긍하는 사이 어느새 소문은 꼬리를 물어 주재소까지 알려지게 되었다. 당시에는 산짐승을 잡으려면 주재소에 수렵 신고를 해야 했는데, 포수가 아닌 숯쟁이가 호랑이를 잡게 되자 주재소에서 출두 명령을 내린 것이다. 겁을 잔뜩 집어 먹은 숯쟁이 영감은 동네 장정의 목도로 석남사까지 나른 후 산판 차에 옮겨 싣고 상북주재소에 출두하게 되었던 것이다.

당시 목격자에 따르면 상북주재소 앞마당에는 호랑이를 구경하려던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고 한다. 상북주재소 앞마당에서 표범을 목격한 강창회(87) 씨와 박정순(96) 씨의 목격담은 그럴싸하다.

“숯쟁이 영감이 잡은 호랭이는 거적때기에 덮여있었어. 말로만 듣던 표범을 처음 봐 점박이 가죽이 얼룩무늬 꽃인가 했지. 덩치가 큰 놈이었어. 황소만한 호랭이가 벌떡 달려들 것 같아 담력 약한 사람은 가까이 가지를 못했어.”

“범은 얼룩무늬 매화꽃 점박이였심더. 주재소 앞에서 머리 둘 달린 범을 끌어안고 좋다고 사진 찍는 걸 봤심더. 왜놈 순사가 찍어주대요.”

숯쟁이 영감이 상북주재소에 출두했을 무렵은 동짓달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호랑이에 대한 호기심은 대단했던 모양이었다. 울주 여섯 고을에서 몰려든 구경꾼들과 호기심 많은 동네 조무래기, 위세등등한 왜나막신들로 장사진을 이루었다. 배내골에서 숯쟁이 영감이 잡은 범을 지고 온 목도꾼, 산에서 잔뼈가 굵은 벌목꾼, 맨손으로 호랑이를 때려잡았다는 범장군, 범을 보았다는 약초꾼도 산에서 내려왔다.

“주개덤 숯쟁이 영감이 멧돼지를 잡으려고 목매를 놓았는데 범이 덜컥 걸렸다지.”
“온몸에 검은 줄 테가 있는 화덕 같은 저 눈깔 좀 봐.”
“매화무늬 가죽 봐. 몸 길이가 여자(여섯자·2m)가 넘고 수염은 대침 같애.”
“저 멋진 호피 일본으로 건너갈 텐데 턱수염이라도 하나 뽑자구.”
“호랭이 눈썹을 몸에 지니고 다니면 감기가 안 온대. 소장수들은 호랭이 눈썹을 늘 지니고 다니던걸.”
“호골을 먹으면 죽던 사람도 벌떡 일어나고, 쓸개는 위장에 좋다던데.”
“호랭이 고기를 삶아 먹은 임산부가 아들을 낳으면 장군이 나지만 딸을 낳으면 말괄량이가 된대.”

▲ 1939년 제37회 상북면협의회 기념. 상북면소는 영남알프스가 속한 행정관청이다. 사진 속 인물들은 당시 영남알프스의 본고장인 상북 지역의 유지들이었다. 영남알프스학교 제공

잡힌 표범은 수컷이었다. 짝을 잃은 암컷은 밤이면 이산저산 옮겨다니며 지러지게 울어대 주민들은 밤잠을 설쳤다고 한다. 대통골 산고동 소리와 곰지골 샛바람 소리와 섞여 으응~ 으응~ 괴성을 냈다.

범을 청동부처처럼 모시는 궁근정 사람들은 산신을 건드린 죄로 우물 앞에서 제사를 지내며 산신령에게 용서를 빌었다고 한다.

표범을 잡은 숯쟁이 영감은 상북주재소에 출두하여 조사를 받았다. 주재소엔 지서장과 순사가 두 명, 조선인 순사보, 급사 노릇을 하던 서기 한 명이 근무했다. 순사는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존재였다. 잡혀가면 피를 한 말씩 짜낸다는 울산경찰서로 이첩된 숯쟁이 영감은 다행히 벌금형을 받고 무사히 풀려났지만 표범은 압수당했다.

상북주재소에 모인 지역 유지들은 번갈아가며 사진을 찍었다. 상북주재소 순사, 총검을 찬 헌병분견소 병졸, 산림조합 영림청(營林廳) 직원, 좋은 땅을 차지한 일본인 지주들도 자리를 차지했다. 일제강점기에 잡힌 호랑이 사진들을 볼라치면 일제 권력자나 순사들이 단골로 등장한다. 아마 호랑이가 없는 섬나라 쪽발이들의 호기심은 식민지 조선 사람들보다 더 했을 것이다. 총질을 한 상북 김해동 포수를 비롯한 지역 유력인사들도 기념촬영을 했다. 방귀깨나 뀌는 인사가 아니고서는 사진 촬영은 엄두를 낼 수 없는 일이었다.

사진 속 인물인 박정택도 기념촬영을 했다. 그는 상북면협의회 면의원이기도 했다. 1939년 산전리 상북면소에서 촬영된 상북면협의회 인물들 중에서 그가 나온다. 이들 15명은 상북지역의 유지들로, 앞줄 중앙에 앉은 인물이 2대 면장 김교완이고, 오른쪽 한 사람 건너는 면의원 박정택이다. 그리고 맨 오른쪽이 석남사 주지를 지낸 강우운, 뒷줄 맨 왼쪽 제복차림의 남자가 당시 주사였던 이갑종이다. 이갑종은 해방 후 면장을 역임했다.

▲ 배성동 소설가

1944년 동짓달 상북주재소 앞에서 목덜미에 철심을 박고 포즈를 취했던 영남알프스의 표범은 가죽 대신 사진 두 장을 남기고 우리 곁을 영원히 떠났다. 매화무늬 가죽은 우아하기 그지없고, 번개 눈은 살아있는 듯 매섭다. 귀는 인기척을 느낀 듯 쫑긋하다. 동일 표범이지만 먼저 발견되어 ‘신불산표범’으로 이름 붙여졌다. 신불산표범과 함께 있는 인물은 수렵증을 가진 김해동(당시 상북 양등 거주) 포수와 안재영(양등 출신, 부산 거주)이고, 납작모자를 쓴 사내는 정진천(양등 거주)이다. 두 번째 사진인 ‘고헌산표범’에 등장하는 두루마기 차림의 박정택은 이 땅의 맹주를 끌어안고 독사진을 남겼다. 중국으로 유랑 간 영남알프스표범이 다시 돌아올 그날을 기대해 본다.

배성동 소설가

*영남알프스학교 다음산행
10월22일(토) 사자평 사명대사길
문의 010·3454·7853(교무팀장),
(http://cafe.naver.com/ynalpsscho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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