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수준 못따라가는 부패지수
아직도 치유못한 ‘문화지체’현상
‘김영란법’ 계기로 공정사회 진화를

▲ 김용진 한국동서발전(주) 대표이사 사장

“대한민국은 왜 그렇지요?” 필자가 주영한국대사관에서 재경관으로 근무할 당시 외국 외교관으로부터 질문을 받은 적이 있었다. 질문요지는 “대한민국이 경제수준은 세계 10위권으로 선진국인데, 부패지수는 여기에 미치지 못하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는가?”였다. 갑작스럽고도 난처한 질문에 당황하면서 물질문화와 비(非)물질문화간의 변화속도 차이로 인한 부조화 현상을 뜻하는 ‘문화지체(Cultural lag)’라는 교과서적인 답변으로 마무리 지은 기억이 난다.

소위 ‘김영란법’을 둘러싼 우리 사회의 논란을 지켜보면서 이 기억이 다시 떠오른 것은 우연일까? 올해 초 국제투명성기구가 발표한 국가별 부패인식지수에서 우리나라가 OECD 34개국 중 체코와 함께 27위를 기록했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우리나라의 문화지체 현상은 아직도 진행형’이었다는 사실을 새삼 느꼈다.

도덕이나 윤리수준은 그 나라의 중요한 사회적 자본이다. 도덕적으로 건강하지 않은 나라는 지속성장할 수 없다. OECD가 올해 5월에 발간한 ‘뇌물척결(Putting and End to Corruption)’ 보고서는 ‘부패가 민간 부문의 생산성을 낮추며 공공 투자를 왜곡하고 공공재원을 잠식한다’면서 경제에 직접적으로 악영향을 미친다고 분석한 바 있다.

경제성장을 따라오지 못하는 윤리 도덕수준이 나라를 주저앉게 하거나 오히려 끌어내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의 목소리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조선·해운산업 불황 등 경제침체에 직면하면서 1990년대 말에 외환경제위기의 큰 고통을 겪은 기업인들에게 ‘변화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위기의식이 확대되고 있음을 경영일선에서 감지할 수 있다. 뭔가 제대로 된 처방이 필요하다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하지만 정작 필요한 것은 이미 우리 곁에 와있는지도 모른다. 느끼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지난 9월28일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소위 김영란법)’이 시행되었다. 그동안 관행화 되었던 부정청탁을 당당히 거절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된 셈이다. 반론도 있다. 미풍양속을 해치고, 경직된 사회를 만들며, 내수를 침체시킨다고 한다. 소수의 비윤리적인 사람 때문에 많은 선의의 피해자가 생겼다는 하소연도 있다. 일견 타당해 보이기까지 한다.

하지만 법의 취지는 간단하다. ‘부정한 청탁이나 금품은 주지도 말고 받지도 말자’, ‘내가 부담할 것은 내가 내자’이다. 이것이 그렇게 지키기 힘든 일인가? 그 만큼 부적절한 문화가 우리 사회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우리는 그동안 수많은 ‘도덕적 위기’의 징후들을 애써 외면해왔다. 그 결과가 오늘날 우리의 모습이다.

‘김영란법’은 우리나라를 뿌리부터 개혁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인지도 모른다. 이 법이 추구하는 것은 오래된 관행과 습관, 문화를 바꿔 공정한 경쟁이 이루어질 수 있는 투명한 사회를 만드는데 있다.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더치페이를 하느냐’라고 푸념하지 말자. 어떻게 하면 빠져나갈 수 있을지 골몰하지 말고 더치페이를 생활화하자.

사회가 투명해지면 경쟁은 공정해진다. 기업은 서비스나 제품의 가격과 품질로 시장에서 평가받고, 사람은 자신이 노력해 얻은 산물로 평가받으며,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시장에서 공정하게 경쟁한다. 공정한 경쟁은 이내 국가 경쟁력을 강화하는 힘이 된다.

지금까지 우리가 사람들 간의 ‘정(情)’을 강요에 의해서, 물질을 주고받음으로 표현했다면 이제는 자발적이고 진심어린 마음을 주고받는 ‘정’을 생활화 하자. 모쪼록 의식과 문화발전의 속도를 높여 문화적 지체를 해소하고 국가경쟁력을 확보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해본다.

김용진 한국동서발전(주) 대표이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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