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태풍에 파손된 공공시설들
집중호우 때문만은 아니었을듯
부실시공은 없었는지 정밀분석을

▲ 박철종 사회문화팀 부장

제18호 태풍 ‘차바’(CHABA)가 지나간 태화강은 누런빛이다. 물폭탄이 쏟아진 뒤 보름째지만 푸른 물빛은 어디서도 찾을 수가 없다. 십리대밭은 복구는 마쳤으나 본래 모습을 회복하려면 상당시간이 걸릴 듯하다. 한가로이 노닐던 새들도, 펄쩍펄쩍 날아오르던 민물고기들도 자취를 감췄다. 시간이 정지된 듯한 느낌에 공포감마저 엄습한다.

경주 지진에 이은 태풍의 위력 앞에서 그동안 여유를 부렸던 재해대책은 힘없이 주저앉았다. “고층 아파트는 지진이 무섭고 저지대는 태풍이 겁나서 고지대의 저층 주택을 찾아봐야겠다”는 자조 섞인 농담도 오간다.

이번 태풍은 자연의 무서운 힘을 여지없이 보여주었다. 많은 비를 뿌릴 것이라는 사전예보는 내려진 상태였다. 기상청은 지난 5일 오전 2시께 태풍주의보 발효에 이어 오전 6시30분께 태풍경보로 대치했다. 250㎜ 이상의 비가 내리는 지역도 있을 것으로 예보됐다. 실제로 울산에는 이날 하루 266㎜의 비가 내렸다. 상상을 초월하는 물폭탄을 맞았다.

‘차바’는 말문이 막힐 정도로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사전예보가 내려진 시각이 피해를 줄이기에는 촉박했을 수도 있다. 구조현장에 출동한 소방관과 지하주차장의 차량을 옮기려던 여성 등 3명이 목숨을 잃었다. 태화강 둔치와 아파트 주차장 등에 있던 차량 1692대가 물에 잠겼다. 지난 18일 현재 이재민은 1199가구에 2676명에 이른다.

울산시는 19일 브리핑을 통해 “2만3663개 시설이 피해를 입었고, 1964억여 원의 재산피해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피해 응급 복구에는 연인원 6만7500여명, 4000여대의 장비가 동원됐다. 울산시는 “주택침수와 도로·하천, 산사태 등 응급 복구율은 97%이고, 이번 주 안으로 마무리 될 것“으로 내다봤다.

피해시설 복원과 기능개선 사업도 본격 추진된다. 하천, 도로, 상하수도 등 공공시설의 원상 복구와 함께 신명천·보은천 등 피해가 컸던 제방은 새로 쌓고 교량을 신축해 나갈 계획이다. 총 사업비 1061억원이 투입된다. 더불어 태화시장과 우정시장이 집중호우에 견딜 수 있도록 배수펌프장과 유수지 설치를 추진하게 된다.

울산시의 브리핑 내용을 보면 은근히 자기자랑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다. 전무후무한 태풍 피해를 입었지만 복구를 서둘렀기 때문에 그나마 수습국면에 접어들었다고 큰소리를 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복구상황과 지원계획, 향후 대책을 설명하는데 그쳤기 때문이다.

천재지변은 인간의 힘으로 피해를 줄일 수는 있지만 완벽하게 막을 수는 없다고 한다. 틀린 말이 아니다. 전쟁이나 천재지변때 특별한 사정이 아니고는 보험사의 면책을 인정해주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번 태풍 이후 재해 대비정책과 대응시스템, 시민의식은 여러 경로를 통해 진단이 되었고 대책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전달됐다.

하지만 피해를 본 개인주택과 상가를 빼더라도 공공시설 모두가 집중호우만이 그 원인이었을까? 하천, 도로, 상하수도 등의 일부라도 부실한 설계나 시공에서 선행요인이 잠복해 있지는 않았는지 의문이다. 태풍이나 집중호우가 붕괴나 파손의 원인이었다면 모든 공공시설에서 그 피해가 나타나야 설득력이 있다.

정밀하게 살펴봐야 한다. 태풍을 핑계로, 집중호우를 무기삼아 복구나 재시공만 염두에 둔다면 부실업체에 면죄부를 주는 꼴이다. 이를 사전에 파악하지 못한 담당 공무원을 스스로 면책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시민들이 낸 세금을 탕진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하는 말이다.

박철종 사회문화팀 부장 bigbell@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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