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반홉 소주에 취했다 남편은 내내 토하는 아내를 업고 대문을 나서다 뒤를 돌아보았다 일없이 얌전히 놓인 세간의 고요

아내가 왜 울었는지 남편은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영영 알 수 없을지도 모른다 달라지는 법은 없으니까 남편은 미끄러지는 아내를 추스리며 빈병이 되었다

아내는 몰래 깨어 제 몸 무게를 참고 있었다 이 온도가 남편의 것인지 밤의 것인지 모르겠어 이렇게 캄캄한 밤이 또 있을까 눈을 깜박이다가 도로 잠들고-후략-

▲ 엄계옥 시인

사랑에도 무게가 있습니다. 특히 부부 사랑의 무게는 묵묵히 견딘 세간의 무게라서 결코 가볍지가 않습니다. 면목동으로 가서 한 번 확인해 볼까요? 허름한 주택가군요. 아내는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마셔서 토하고, 남편은 그런 아내가 가난 탓인 것만 같아 빈병이 되길 자처합니다. 아내가 왜 술을 마신지 모를 정도로 무뚝뚝한 남편이지만 이들의 모습이 애틋해서 시인과 별이 함께 훔쳐보고 있군요.

프랑스 작가 샤토브리앙은 사랑은 시작하는 순간 줄어든다고 했습니다. 이 부부의 사랑은 조금도 줄 지 않았습니다. 등을 내어주고 제 몸무게를 줄이며, 토한 입을 닦아주고 빈병이 되어 허물을 받아주는 것, 독자 여러분도 오늘은 면목동에서 사랑을 시작하는 것이 어떨까요.

엄계옥 시인이 오늘부터 ‘시를 읽는 아침’을 집필하게 됐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약력: <유심> 시(詩) 등단, 시집 <내가 잠깐 한눈 판 사이>, 울산문인협회 회원.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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