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활 시위에 날려버린 장애 - 범서고 김민수군

▲ 지난 19일 전국장애인체전 출전에 앞서 울산문수양궁장에서 만난 범서고 1학년 김민수군은 “올림픽 메달을 따서 귀국하면 면허증을 꼭 딴 뒤에 승용차를 사서 자유롭게 여행을 다니고 싶다”고 활짝 웃었다.

임규동기자 photolim@ksilbo.co.kr

사고는 느닷없이 찾아왔다.

호기심 가득했던 아이는 철제로 된 담장을 넘기로 했다. 발을 디디고 올라서는 순간 녹슨 철제담장이 힘없이 와르르 무너졌다. 펜스를 받치고 있던 벽돌도 함께 무너지면서 아이의 왼쪽 다리를 덮쳤다.

사고 후유증으로 발가락부터 피가 돌지 않았다. 오른쪽 다리 발가락과 종아리도 돌덩이처럼 변해갔다. 이대로 두면 다리가 썩고 목숨까지도 위험하다는 말에 어머니는 부산에 있는 큰 병원을 찾았다. 긴 시간의 수술에서 깨어난 아이의 양쪽 무릎 아래가 사라졌다.

2009년 1월29일. 아이가 10세가 되던 추운 겨울의 일이었다. 어머니는 아직도 사고가 일어난 날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울산 장애인 양궁의 유망주 김민수(18·범서고 1)군의 이야기다.

사고 이후 민수는 6개월 가량 학교를 가지 못했다. 재활에 들인 시간까지 합하면 1년의 세월을 치료하는데 들여야 했다. 수술비용만 4000만원 가량이 들었다. 딱한 사정을 듣고 주위에서 조금씩 돈을 모아 도와주기도 했다.

열살때 사고로 두다리 잃자
어머니가 운동 권해 양궁 시작
작년 전국체전서 金 3·銀 1 획득
“올림픽 메달 따면 車 여행하고파”

재활치료를 마친 그는 친구들보다 1년 늦게 다시 학교에 들어갔다. 내성적인 성격과 장애를 가진 민수에게 어머니 이유한(46)씨는 운동을 권했다. “사격할래? 양궁할래?” 텔레비전에서 금메달을 딴 양궁 선수들의 환호하는 모습을 본 민수는 바로 양궁을 선택했다.

그는 “2012년 런던올림픽때 오진혁 선수가 한국 남자양궁 최초로 개인전에서 금메달을 따는 모습을 TV를 통해 우연히 보게 됐는데, 국민들이 열광하는 모습을 보며 어렴풋하게나마 양궁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이씨는 집 근처 문수국제양궁장으로 아들을 무작정 데려갔다. “처음에는 고무줄만 땡기라고 하니까 민수가 재미가 없었나봐요. 며칠 하다가 안 갔는데, 가만히 집에만 있으면 뭐하겠나 싶어서 또 데려갔죠.”

운명처럼 다가온 양궁은 민수의 인생을 바꿨다. 하루 두시간씩 짬을 내 연습에 몰두했다. 손가락에 물집이 잡히고 굳은살이 박였지만, 그의 옆에는 매일 그를 데려다 주고 태워오는 어머니가 있었다.

이런 그에게도 기회는 찾아왔다. 2013년 대한장애인체육회가 신인 선수 발굴을 위한 육성캠프를 열었고 여기에 참가한 그는 본격적으로 양궁에 눈을 떴다. 그는 지난해 전국장애인체육대회에서 울산대표로 참가해 금메달 3개와 은메달 1개를 목에 걸었다. 올해 열린 국가대표 최종선발전에선 1위에 올라 리우 패럴림픽에 양궁 대표팀 막내이자 남자 최연소 선수로 출전했다.

금메달을 따서 꼭 어머니 목에 걸어드리고 싶다고 했지만 아직 그 꿈은 이루지 못했다.

그는 올해 열린 전국 장애인체전 리커브 개인전에서도 3관왕에 올랐다.

양궁을 하지 않았다면 평범한 일상과 좁은 세상 속에 갇혀 평생을 살았을 것이라는 민수. 그의 최종 목표는 올림픽 메달이다.

그는 “올림픽 메달을 따서 귀국하면 면허증을 꼭 딴 뒤에 승용차를 사서 자유롭게 여행을 다니고 싶다”고 활짝 웃었다.

휠체어에 앉은 채 양궁장 사대에서 입을 굳게 다물고 호흡을 조절하는 그의 모습에는 장애라는 어두운 그림자는 애초부터 없었던 것처럼 보인다.

김봉출기자 kbc78@ksilbo.co.kr

 

저작권자 © 경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