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우정에 놀아난 ‘기이한 국정 농단’
충격의 차원넘어 대한민국의 국격 추락
모든 의혹 밝히고 대가 치르는 게 우선

▲ 김두수 정치경제팀 서울본부장

박근혜정부 청와대 출입기자로 ‘반성문’을 쓴다. 두번째다. 첫번째는 박근혜 정부 출범후 1년여가 지난 2014년 4월16일 세월호참사 때(5월8일자.‘청와대 출입기자의 반성문’)다. “300여 생명이 바닷물속으로 잠기는 촌각을 다투는 상황에도 ‘전원구조’라고 태연하게 브리핑을 한 한심한 정부” “출입구가 꽉 막힌 기나긴 터날안에 갇히다시피 한 청와대”를 주내용으로, 정부 유관부처별 대통령 업무보고땐 대형재난·재해대책과 관련해 집요하게 캐물었어야 함에도 ‘수박 겉핥기’를 넘지 못했다. 대통령의 기자회견땐 국민들이 궁금한 현안에 대해선 질문공세를 퍼붓는 ‘출입기자’로서의 역할을 다해야 함에도 매번 ‘짜여진 각본’에 충실했다”고 고백하면서 새로운 각오를 다지기도 했다. 그로부터 2년여가 지난 뒤 헌정사에 유래없는 초대형 ‘기이한 국정농단’ 사건이 터졌다. 그것도 공직에 준하는 ‘검증된 사람’이 아닌 대통령과 ‘40년 우정’의 최순실이 중심부다. 대통령이 사과하고 머리를 숙이는 동안 정권의 심장부인 청와대 출입기자는 무엇을 했을까?

고백컨대, 역대 정부 가운데 박근혜 정부처럼 언론과 소통이 안되는 정부는 처음이라고 탄식하는 기자들이 많다. 연례행사와도 같은 신년기자회견에 이어 대통령이 춘추관을 들러 가벼운 애기를 나누는 것 외에는 간담회 형식의 자유로운 소통은 상상할 수도 없다. 대통령의 연설문은 행사직전 또는 한 두시간 후에 공식 배포된다. 물론 ‘풀기자’(제한된 2~3명의 취재를 통해 출입기자 전체에게 제공하는 시스템)가 현장취재를 하지만 이것 또한 일정부분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특히 대통령의 외부활동 관련 취재는 철저하게 엠바고(보도시한)가 정해져 있고, 상황에 따라선 오프더레코드(비보도)까지 지켜야 한다. 어기면 출입기자단이 만들어 놓은 징계를 통한 패널티가 주어진다. 상시적 청와대 현안 브리핑에서도 대변인의 발표는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청와대는 대통령의 안위는 물론 주요정책, 남북문제 등 민감한 사안이 가로놓여 있는 상황에서 언론의 무차별 취재는 국익에도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해 왔다.

그런데 ‘강남아줌마 최순실’은 어떻게 했을까? 청와대 안을 훤히 들여다 보고 있었다. 아연실색할 노릇이다. 대통령의 주요 연설문을 비롯한 국정 주요현안 등이 ‘보따리’로 최순실에게 전달되고 또한 수정돼 다시 청와대로 반입된 것은 충격의 차원을 넘어 대한민국 국격의 완전 추락을 의미한다. 최순실이 파놓은 ‘도가니’에서 대한민국이 허우적거리고 있는 것이다. 이 엄중한 상황을 어떻게 풀어가야 할 것인가? 유일한 해법은 박근혜 대통령의 ‘쾌도난마식’ 결단이 필요하다. 최순실의 조기 귀국을 통해 자신이 파놓은 ‘도가니’의 비밀과 각종 의혹들을 낱낱히 밝히고 대가를 치르는게 우선이다. 그게 국정을 농단한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고 자세다. 동시에 권부 핵심인사 가운데 법적·도덕적·정무적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판단한 관계자들은 국가를 위해, 국민을 위해, 대통령을 위해 결단을 내려야 한다.

여의도 정치권에도 주문하고 싶은 게 있다. 집권 새누리당은 코너에 몰린 박대통령을 겨냥한 무차별 공격보다는 동반책임과 더불어 박 대통령과 함께 끝까지 국정을 책임지겠다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특히 대통령의 탈당요구 등은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졸렬한 자세다. 야권도 마찬가지. 집권측의 잘못된 행태에 대한 준엄한 비판과 함께 책임과 해법에 방점을 찍되, 차기 집권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이유로 정치적 교만과 망동은 삼가야 할 것이다.

김두수 정치경제팀 서울본부장 dusoo@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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