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어둠속에서 희망의 불 밝히는 행복전도사-시각장애인 김민서씨

▲ 긍정적인 사고방식으로 시각장애인의 한계를 극복하고 다양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김민서씨.

임규동기자 photolim@ksilbo.co.kr

김민서(48·울산시 남구 무거동)씨는 앞이 전혀 안보이는 시각장애인이다. 그가 앓은 병명은 망막색소변성증. 현대의학으로는 근본치료가 불가능하고 이식 또한 안된다. 망막세포가 손상되면서 서서히 시력을 잃게된다.

자신의 병을 알게된 건, 꽃다웠던 20대 중반이었다. 어렸을 땐 그저 남들보다 시력이 나쁜 정도인 줄 알았는데, 대학을 다닌 뒤부터는 부쩍 시야가 흐려졌다. 엄마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으나 ‘네 눈은 낫지 않는다’고, 아니 ‘점점 더 나빠져 종래는 한 줄기 빛조차 분간하지 못한다’고 차마 알려줄 수 없었다.

망막색소변성증에 시력 잃었지만

장애인탁구 시 대표선수로 맹활약

시낭송가·사회자로도 왕성한 활동

“도움 받은만큼 주변 장애인 돕고파”

처음에는 실감이 안났다. 불편하긴 했지만 사회활동을 하는데 큰 지장이 없었다. 그러나 30대를 지나면서 사정은 달라졌다. 예상대로 민서씨의 시야는 시시각각 좁혀졌고 어느 새 두꺼운 장막으로 완전히 뒤덮혔다.

아이러니하게도 민서씨는 그 암흑 속에서 거꾸로 희망을 봤다. 한 살 연하의 남편을 만난 것도 그 시절이다. 앞이 보이지 않는 그를 위해 남편은 언제나 손을 잡아줬고 행복한 결혼식도 치렀다. 건강한 아들도 낳았다. 민서씨의 머리 속엔 아직도 갓 태어난 아이의 얼굴이 각인돼 있다. 유일하게 기억하는 아들의 얼굴이다. 그 아들이 자라서 올해 중학생이 됐다.

“전 행복한 사람입니다. 선천적인 장애도 아니고, 사고로 한순간에 시각을 잃은 것도 아니예요. 장애에 적응할 수 있었던 시간이 충분했으니까요. 30년간 지켜 본 온갖 것들이 지금 생활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 몰라요. 이만하면, 감사한 것 아닌가요?”

물론 이처럼 긍정적인 마인드를 갖는데는 가족들의 영향이 크게 작용했다. 결혼 전에는, 단지 불편할 뿐 불가능은 없다는 가족의 가르침이 있었다. 결혼과 출산 이후에는 함께 할 가족이 있는 것만으로도 열심히 살아야 할 충분한 동기가 됐다.

그는 아들이 어린이집을 가게 된 이후 시각장애인복지관 등을 다니며 각종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우선 전국단위 장애인탁구대회에 참가해 단체전·개인전을 휩쓸었다. 시 대표 선수로 활약하며 ‘할 수 있다’는 마법같은 주문을 주변에 퍼트렸고 자신 또한 큰 용기를 얻었다.

욕심을 내 지난 2009년부터는 시낭송가로도 활동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작은 무대에서 시를 읽었지만, 요즘은 오영수문학관의 전담 시낭송가로 알려질 정도로 전문가가 됐다.

올 봄에는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의 사회를 보기도 했고, 다음 달엔 경기도 안양에서 열릴 난치병아동돕기운동본부 자선콘서트의 진행도 맡게된다. 민서씨는 한걸음 더 나아가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했던 전력을 살려 자작시를 낭송하는 날이 오기를 희망하고 있다.

“이렇게 되기까지 저를 도와준 사람들이 많아요. 받은만큼 돌려줘야 이치에 맞지요. 복지관 동료상담수업을 받은 뒤 저와 같은 장애인이 재활할 수 있도록 멘토-멘티사업에 참여하게 됐어요. 용기를 심어주고 세상으로 이끄는 일, 주변 장애인들에게 정말 중요한 일입니다. 자부심을 갖고 더 열심히 해야겠어요.”

홍영진기자 thinpizza@ks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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