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주단원 내의 갈등과 불협화음 다룬
영화 ‘마지막 사중주’, 가정모습과 유사
완벽하지 않아도 감동 주고받으면 성공

▲ 송승우 울산지방법원 부장판사

필자는 몇 년 전 미국 보스턴의 동생 집을 방문하고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마지막 사중주(원제 A Late Quartet)’라는 영화를 보게 되었다. 클래식 애호가가 아닌 필자가 이 영화를 흥미롭게 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이 영화는 오랜 시간 정상급 실력을 유지해 온 ‘푸가’라는 현악 사중주단의 이야기이다. 영화의 서두에 이 사중주단의 첼리스트로서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는 피터는 음대 강의 도중 제자들에게 베토벤의 현악 사중주곡 제14번에 관하여 “베토벤은 이 곡을 쉼 없이 연주하도록 지시하는데, 이는 연주자들이 중간에 튜닝을 다시 맞출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연주하는 동안 악기의 튜닝은 풀리고 하모니는 엉망이 된다. 그럼 어떻게 할 것인가? 연주를 그만둘 것인가? 아니면 모두가 불협화음이더라도 필사적으로 서로에게 맞추려고 노력해야 할까?”라고 화두를 던진다.

이후 영화는 피터가 파킨슨병을 앓게 되어 사중주단을 떠나려 하면서 단원들 사이에 잠복되어 있던 갈등이 분출되는 과정을 그려 나가는데, 단원들 사이의 갈등의 모습은 가정 내 구성원들 사이의 갈등과 매우 유사하다. ‘푸가’는 연주회를 앞두고 있고, 단원들 사이의 불협화음이 정점에 이른 상태에서 연주회는 무사히 열릴 수 있을까.

아쉽게도 비행기가 인천공항에 도착하여 마지막 결론 부분을 보지 못한 채 비행기에서 내리게 된 필자는 수소문 끝에 예술영화전용관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영화를 볼 수 있었다.

영화의 결말은 예상과 달랐고, 깊은 여운이 남았다. 마지막 장면 ‘푸가’는 연주회에서 앞서 언급되었던 베토벤의 현악 사중주곡 제14번을 연주하는데, 놀랍게도 피터가 연주 중간 자리에서 일어나며 연주를 그만둔다. 피터는 관객들에게 자신은 더 이상 다른 단원들의 연주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다면서 새로운 첼리스트를 소개하고, 새로운 첼리스트가 남은 연주를 계속해 나가며 영화는 끝난다.

작곡자인 베토벤이 쉼 없이 연주할 것을 지시한 곡임을 강조했던 피터가 중간에 연주를 그만둔 것이다. 필자는 비행기에서 내릴 때까지 삶이란 함께 하는 다른 이들과의 불협화음을 조율해 볼 여유도 없는, 그야말로 쉼 없이 갈등이 계속되는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 이 영화의 주제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결말을 알게 되자 영화 중간 피터가 제자들에게 파블로 카잘스와의 일화를 들려줄 때 나온 대사, “전체적으로 완벽한 연주가 아니더라도, 어느 한 부분이라도 감동을 주었을 때, 우리는 그 연주자에게 고마워해야 한다”라고 젊은 날의 피터를 격려해 준 카잘스의 말을 다시 곱씹어 보게 되었다.

부부생활이란 나와는 모든 것이 다른 배우자와 화음을 맞춰볼 여유도 없이 쉴 틈 없이 계속 흘러가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불협화음이 생길 수밖에 없고, 피터가 연주를 중단하듯 이혼의 결과에 이를 수도 있다. 하지만, 피터처럼 최선을 다해 상대방에게 맞춰보려는 노력을 다 했다면, 그만둘 수도 있는 것이고, 그만둔다고 인생 전부가 실패한 것은 아니다.

필자는 가사사건을 전담하는 판사로서 깊어가는 가을, 이혼 여부를 고민하는 이들이 이 영화를 보면서 삶의 의미에 관하여 생각해 볼 시간을 갖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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